• 조선일보 19일 사설 '죽어버린 법치(法治), 이 후유증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요즘 거리에서 매일 밤을 새우고 있는 서울경찰청 제3기동대장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촛불 시위로 얻은 것은 여론 수렴의 중요성이고, 잃은 것은 법치(法治)"라고 했다. 기동대장은 부하인 젊은 전경들이 매일 밤 자기 또래 또는 그 아래인 시위대에 떠밀리고 조롱당하면서도 상부로부터 "차라리 맞으라"는 지시밖에 받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겪으며 이 시국(時局)의 본질을 꿰뚫어 보게 된 듯하다.

    정부는 뒤늦게나마 여론 수렴의 중요성을 깨닫고 미국과 쇠고기 추가 협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한 번 무너진 법치는 쉽게 다시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은 사망 선고를 당했다. 이 법은 시위대의 시위할 자유와 다른 국민의 안전과 사회 기능을 함께 보호하기 위한 규범이다. 촛불시위대가 도로 점거를 시작한 지난달 24일 이후 이 법은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휴지 조각만도 못하게 됐다.

    전경이 시위 여학생의 머리를 발로 찬 동영상이 퍼진 이후 경찰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법 질서를 지킬 의지까지 완전히 잃어버렸다. 이제 경찰은 시위대의 도로 점거에 "제발 하지 말아달라"고 애원을 한다. 그러면 시위대는 "너희들이나 도로 점거를 하지 말라"고 한다. 지쳐 앉아 쉬는 경찰관의 머리를 지나가던 사람이 무턱대고 때린다. 그래도 지휘관은 맞은 경찰을 말린다. 경찰 저지선 앞에서 시위대가 "놀아줘, 놀아줘" 하면서 조롱을 하고 경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시위 뒤 차량 통행이 재개된 후 교통경찰이 무단 횡단하는 사람에게 호루라기를 불자 "불지 마, 내 말 안 들려"라는 호통이 돌아온다. 촛불 시위에 나온 중학생이 경찰관에게 100원짜리 동전을 던지며 "야, 이 거지 놈아"라고 놀린다.

    촛불 시위를 자신들이 주도했다고 선전해온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며칠 전부터 광우병만이 아니라 공기업 민영화, 교육 개혁, 공영방송 개혁, 수돗물 관리 민영화, 대운하 반대로 이슈를 옮겨가며 집회를 벌여 도심을 자기들의 운동장으로 계속 사용하고 있다. 법을 법으로 보지 않는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는 그들에게 법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절절이 깨닫도록 만들 나라의 법 집행 주체가 사라져 버렸다.

    이제 경찰의 본부인 경찰청도 전경 버스를 몇 겹이나 둘러서 시위대를 막기에 급급하다. 경찰은 그 뒤에 숨어서 시위대가 물러가 주기만 기다린다. 시위대는 경찰버스 바퀴 바람을 빼고 침을 뱉은 후 가버린다. 검찰은 법 질서 회복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전국 검사장 회의를 열려다가 취소했다. "공안 정국 조성한다"는 비난을 받을까 무서워서였다고 한다.

    지금 민주노총과 화물연대가 아무렇지도 않게 법을 어기고 파업을 하는 것은 이 정부가 법을 지킬 능력과 의지를 상실했다는 사실을 간파한 때문이다. 민주노총이 "노동자가 광우병 걸리면 노동력을 상실한다"는 웃지 못할 이유로 파업을 하면서 오늘은 1번 타자 자동차, 내일은 2번 타자 철도 하는 식으로 '야구 파업'을 하는 것도 노동법을 대놓고 조롱하는 것이다. 현대자동차 노조원들이 쇠고기 파업을 부결시켰는데도 민주노총이 가결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도 이제 법이나 규정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법치를 지켜야 할 책임자는 대통령이다. 그러나 지금 대통령의 권위와 지지도로 무너진 법치를 다시 세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 국회는 임기를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한 것이 국회 개원에 관한 국회법을 어기는 것이었다. 언론은 경찰의 폭력 진압사건에만 초점을 맞추고 법치의 무력화와 실종에 대해선 입을 닫고 있다. 광우병도 아닌 사람을 광우병으로 죽은 것처럼 방송해 이 파동을 만든 TV는 하루도 빠짐없이 시위사태를 예찬, 선동하고 있다.

    법치가 언제든지 이렇게 무력화될 수 있다는 인식은 나라와 국민에게 긴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서울경찰청 제3기동대장은 시위에 참가하는 시민들을 향해 "공공 질서 유지는 사회간접자본이라는 인식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법치는 도로, 철도, 항만, 통신 등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중요한 사회간접자본이다. 법치가 무너진 땅 위에는 아무것도 세울 수 없다.

    법치가 사라진 땅은 늑대들과 이리떼들의 싸움터다. 세계의 어느 정신 나간 사업가가 그런 땅 위에 공장을 세우겠다고 나서겠으며, 중학생들이 국가 공권력의 신경세포라 할 경찰관들을 향해 "야, 이 거지 놈아" 하고 야유하는 나라에 어떻게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꽃필 수 있겠는가. 시위대가 매일 밤 누리고 있는 의사 표현의 자유도 법치의 방파제가 무너지면 함께 휩쓸려 갈 수밖에 없다. 피해자는 결국 법이 지켜져야만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착하고 약한 국민이다. 이 상황을 수습하고 붕괴된 법치를 다시 세울 수 있는 수단은 이 '착하고 약하기만 한 국민의 힘'밖에 남지 않았다. 이제는 이 시민들이 법을 세우러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