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9일자 오피니언면 '조선데스크'에 이 신문 김낭기 인천취재본부장이 쓴 '다시 생각해 보는 사형제도'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 30일로 '실질적인 사형(死刑) 폐지국가'가 됐다. 살인과 같은 범죄에 대해 법률상 사형제도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지난 10년간 사형 집행을 한 번도 하지 않아 사실상 폐지된 것이나 다름없는 나라를 말한다. 국제 민간 인권운동단체인 '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가 붙여주는 이름이다. 우리나라는 김영삼 정부 때인 1997년 12월 30일 사형수 23명의 형을 집행한 게 마지막이다. 현재 58명의 사형수가 수감돼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인 지난 10년간 사형 집행이 없었던 것은 좌파적 성향이 강했던 정권의 특성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좌파는 범죄 그 자체보다 범죄의 배경과 원인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살인죄를 저지른 사람보다 살인을 저지르게 된 가난이나 불평등, 사회적 차별 등이 더 큰 문제라고 본다. 그래서 범죄자에 대한 응징보다 사회·경제적 비리와 부조리의 해결을 우선시하게 된다.

    사형 폐지운동에 앞장서온 종교·시민·인권단체는 이제 사형제 폐지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법 조문에 남아 있는 사형제 규정만 정리하면 명실상부한 사형제 없는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사회에서 사형제 존폐문제는 일단락된 것으로 봐야 할까.

    최근 흉악한 살인사건이 연달아 터지면서 인터넷 댓글에 드러난 분노의 목소리를 보면 결코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전 프로야구 선수의 4모녀 살해사건이나 경기도 안양의 초등학생 2명 살해사건과 관련한 인터넷 댓글에는 네티즌들의 분노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극형에 처하라는 주장들이다. 이런 일이 처음 벌어지는 것도 아니다. 21명을 살해한 유영철 사건 등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다.

    이런 목소리는 '어떻게 인간으로서 저럴 수가 있나' 하는 분노감에서 순간적으로 나온 감정의 발로일 수도 있다. 이성보다는 감정에 따른 즉흥적 반응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건 부적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 담긴 인간으로서의 원초적 감정 또한 무시할 수만도 없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감정 말이다. 보통사람들은 대개 마음속에 이런 응보(應報)의 감정을 갖고 있다. 이것이 사형제도가 생겨난 배경이기도 하다.

    사형제 폐지론자들은 인권의 신성함과 존엄성, 오판(誤判) 가능성, 정치적 악용 가능성 등을 이유로 든다. 특히 중요한 이유로 범죄 예방효과가 없다는 점을 꼽는다. 이에 대해 사형제 찬성론자는 사법제도 개선 노력과 과학수사 기법의 개발로 오판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고, 정치적 악용은 독재 정권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반박한다. 범죄 예방효과가 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이유로 인간의 응보의 감정을 내세운다. 사형 폐지론자가 대안으로 내세우는 종신형은 이런 점에서 사형과 같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형제가 인류의 탄생과 함께 생겨났듯 그 존폐 논란도 인류가 생존하는 한 계속될 것이다. 그만큼 결론내기가 쉽지 않은 문제다. 그럼에도 말 그대로 '극악무도한' 살인사건을 볼 때면 한번쯤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과연 사형제는 없어져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