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대통합민주신당(통합신당)에 둥지틀기가 쉽지 않다. 범여권의 대권 경쟁에 뛰어들면 1위를 차지할 것이란 여론조사를 믿고 지난해 3월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8월 통합신당에 합류해 대권에 도전했지만 쓴맛을 본 손 전 지사.

    당 기반이 없는 탓에 경선에 패한 손 전 지사는 대선 기간에 정동영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서며 서서히 당 기반구축에 나섰다. 당내 누구보다 정 후보 지원 유세에 열심히 뛰었다는 평을 들었다. 통합신당에 정착하려는 손 전 지사 나름의 전략이었던 셈이다. 

    그 덕에 대선 참패 뒤 당내에서는 수도권 초·재선 의원 그룹을 중심으로 당 간판을 손 전 지사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노무현 정권 책임론에서 자유롭고 이념적 좌표 또한 통합신당이 가려는 중도·개혁방향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4월 총선, 특히 수도권에서의 선전을 위해선 손 전 지사가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 '손학규 추대론'을 내세우는 의원들의 논리다. 대선 참패 직후 '친노그룹 2선 후퇴' 등의 책임론이 제기되면서 '손학규 추대론'은 힘을 받는 듯 했다. 3일 당 쇄신위원회가 내놓은 '쇄신안'도 사실상 '손학규 추대론'에 무게를 실은 것이다. 

    하지만 '손학규 추대론'이 탄력을 받자 점차 '반 손학규' 세력도 급증하면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손학규 추대론'에 제동을 건 인사들은 정대철 상임고문을 비롯, 김한길 염동연 천정배 최재천 의원과 추미애 전 의원 등이다. 김덕규 의원 등 일부 중진 의원들도 가세했다. 여기에 '노무현 정부 책임론'으로 코너로 몰려 잠잠했던 친노 그룹 마저 '합의추대'를 주장하면서도 "당 정체성과 비전에 맞는 사람"이란 단서를 달아 태클을 걸었다. '손학규 추대론'이 우세하면서도 수도권 일부 초·재선 의원을 제외한 모든 계파에서 손 전 지사를 견제하고 있는 양상이다. 

    이처럼 손 전 지사 견제 세력이 증가하는 이유는 그가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점 때문이란 분석이 높게 제기된다. 당 일각에서는 "원대 1,2당 대표가 모두 한나라당이나 다름없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친노 그룹 수장인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합의추대'에 손을 들면서도 '정체성'을 단서로 내거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전 총리는 경선 당시에도 손 전 지사의 정체성을 문제 삼은 바 있다. 총선에서 살아남으려면 손 전 지사를 새 얼굴로 내세워야 한다는 논리에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막상 한나라당 출신인 그를 당 대표로 받아들이기가 꺼림찍하다는 것이다. 친노 그룹의 한 관계자는 '손 전 지사 외에 다른 길이 있느냐'는 질문에 한숨을 내쉬면서도 "그래도 그건…"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손 전 지사가 통합신당에 발을 담갔지만 그의 정체성은 다르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합의추대' 공감대가 큰 상황임에도 경선파가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는 것 역시 손 전 지사의 무혈입성에 대한 반감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설사 손 전 지사가 당권을 잡는다 해도 호락호락 물러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정 상임고문은 3일 기자간담회에서 '합의추대 대상으로 거론되는 분은 (당 대표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다른 사람은 못 한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라며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손 전 지사는 답답하다. 경선 당시 손 전 지사 선대위 대변인을 맡았던 우상호 의원은 이런 기류에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 의원은 "대선 후보로 나왔던 사람인데 창피하게 당 대표 맡으려고 안달복달할 이유가 있느냐"고도 했다. 손 전 지사는 요즘 당 공식행사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언론접촉도 피하고 있다. 자신을 둘러싼 지금의 당 상황에 계속 함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손 전 지사가 이 같은 난제를 해결하고 통합신당에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