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26일자 오피니언면 '오늘과 내일'에 이 신문 홍찬식 논설위원이 쓴 '이념은 없었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흔히 보수와 진보의 대결로 불리고 있지만 정말 그런 것인지 회의가 든다. 선거 내내 진보 진영에서는 “서민과 저소득층이 왜 가진 자들의 정당인 한나라당을 지지하느냐”는 볼멘소리를 했다. “국민이 노망이 들었다”는 여권 수뇌부의 돌출 발언은 그런 상실감의 표출이었다. 하지만 이명박 당선자가 기록한 48.7%의 높은 득표율은 서민층 지지가 없었다면 나올 수 없는 수치였다.

    해외 이론에서 태동한 한국 좌파

    진보 진영의 계산 실패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아직까지 한국의 서민들에게는 유럽처럼 보수와 진보의 팽팽한 긴장 구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유럽 사회가 오랜 역사적 경험을 거쳐 보수와 진보로 나뉜 반면에 우리는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수와 진보 사이에 이념의 폭이 그리 넓지 않다. 조금만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중도가 되고 조금 더 가면 보수로 바뀌는 정도다. 진보 간판을 내건다고 해서 서민 계층이 소속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저소득층이 언제든 지지 정당을 바꿀 수 있는 이유다. 한국의 이념 구도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해 대결 구도로 몰아간 것은 보수보다는 진보 쪽이었다.

    사실 우리에게 좌파 사상은 자생적인 게 아니라 해외에서 수입된 것이다. 그 뿌리를 찾으려면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일본에 유학 갔던 지식인들이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품에 안고 돌아왔다. 식민지 시절 많은 지식인이 좌파 사상에 이끌린 것은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었다.

    일제강점기 우리의 교육열은 요즘 못지않게 뜨거웠다. 일본 유학 붐이 크게 일었다. 해마다 고급 인력이 양산되고 있는데도 식민지 젊은이들에겐 권력 중심부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었다. 기껏 올라간다고 해도 하급 관리나 교사가 되는 게 고작이었다.

    권력 욕구를 거세당한 지식인들 앞에는 사회 변혁을 꿈꾸거나 허무주의에 몸을 의탁하는 두 가지 선택의 길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해외의 좌파 이론은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손쉽게 현실에 적용하려 했다.

    하지만 식민지 시절에도 유학을 갈 수 있는 계층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었다. 생활 형편 자체가 서민과 달랐다. 이들은 낯선 삶 속으로 파고들기보다는 선명성 경쟁과 거대 담론으로 치우쳤다. 이렇게 출발한 좌파 사상은 광복 이후 좌우 대립 속에서 한껏 극단주의로 치달은 뒤 반공 정권 속에서 사실상 소멸되고 말았다.

    1960, 70년대 좌파 사상은 숨 쉴 수 있는 공간조차 없었다. 이때에도 수입 이론에 매달린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오늘날 양대 좌파 계열인 민중민주주의와 민족해방주의는 하나는 서구 이론을, 다른 하나는 북한 이론을 들여온 것이다. 386 같은 상대적으로 혜택 받은 지식인들에 의해 주도되는 현상 역시 반복됐다.

    이번 대선에도 평등 분배 행복 같은 진보 진영의 ‘아름다운 구호’들이 예외 없이 등장했으나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실패했다. 이런 진보의 가치는 소중한 것들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서민들 피부에 와 닿는 실질적인 삶이다. 정치가들이 그들의 생활 속에 뛰어들어 몸으로 고통을 이해하지 않고 지지를 얻어 내는 일은 이제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이번 선거를 지배한 것은 이념이 아니라 생활이었다.

    사소한 삶이 먼저다

    단재 신채호는 ‘어떤 주의(主義)가 조선에 들어오면 조선의 주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의의 조선이 된다’고 개탄했다. 이념적 성향이 강했던 참여정부의 실패 원인도 이 말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외국 이론을 떠나 우리 여건에 맞는 해법은 없는 것인지 그 답을 찾아내는 일은 진보 진영뿐 아니라 보수 진영에도 중대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를 알기 위해 정치인들은 민생 속으로 더욱 가깝고 깊이 다가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