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 4자 대결구도로 치러졌던 1987년 대선결과는 각 후보들이 36.6%-28%-27%-8.1%의 득표율을 획득함으로써 ‘1강 2중 1약’ 구도를 이뤘다. 2007년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있는 현재 대선주자들의 지지율은 조사기관별 차이는 있지만, 평균 이명박 44-6%, 정동영 16-8%, 이회창 14-6%, 문국현 6-7%로 5년 전과 똑같은 '1강 2중 1약' 구도이다.

    대선구도가 20년 전으로 회귀한 희한한 현상을 목도하면서 역사는 과연 되풀이 되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을 품어본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대선과 총선의 시차도 5년 전과 마찬가지로 4개월로 같다. 88년 4월 총선 결과는 여소야대였다. 국회는 국정감사 부활을 기치로 '야대(野大)'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당시 노태우 정부가 국정을 제대로 이끌어갈 수 없을 정도의 ‘물 정부’로 만들었다.

    노태우 정부는 88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도 국운융창의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임금은 과도하게 올랐고 노사분규는 늘었다. 외국에서는 한국에 대해 점점 불안을 느꼈고, 국내적으로는 기업이 앞을 내다보고 사업을 꾸려 나갈 수 없게 됐다. 노대통령은 정권은 잡았지만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할 수 있는 원내 의석수가 모자랐다. 극기야 민정-민주-공화 3당이 합당하는 ‘정계개편’으로 정국을 돌파할 수 밖에 없었다.

    대선을 목전에 두고 신당이 검찰의 BBK 수사에 불복하며 검사 3인에 대해 탄핵소추를 발의했고 ‘이명박 특검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신당은 대선 이후 총선을 겨냥해 정략적으로 탄핵소추라는 초법적·위헌적 조치에 매달리고 있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도 대선 직후 1월 창당을 공식 발표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내년 4월 총선은 그야말로 ‘1여(與) 다야(野)구도’나 ‘신(新)4자구도’로 사생결단 나게 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대선을 꼭 6일 남겨둔 현 상황에서 40% 중반대의 지지율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명박 후보가 '12월19일 이후' 시나리오와 '포스트 대선' 관련 발언의 자제를 주문한 것은 시의적절했다고 본다. 앞선자의 겸손함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12월 19일 이후부터 2월 25일 대통령 취임, 4월 9일 총선으로 이어지는 숨가뿐 정치일정은 여유가 없다. 당연히 선거대책위원회와 당을 책임지고 이끌고 나가는 강재섭 대표는 ‘대선과 대선 이후’를 함께 준비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힘 있는 집권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선에서 앞도적인 표차이로 승리해야 한다. 물론 호남지역에서 2자릿수 득표가 이뤄진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현재 한나라당 정당 지지도는 50%를 넘고 있다. 과연 이명박 후보가 한나라당 정당지지도 만큼의 득표율을 돌파할 수 있을까. 세인들의 관심이 여기에 쏠리고 있다. 만약 이 후보가 국민의 과반 지지를 받는 대통령이 된다면 87년 직선제 이후 전무후무한 신기원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강재섭 대표는 경선과정에서 한 때 분당위기까지 갔던 당을 화합시켜 지금까지 잘 이끌고 왔다. 그러나 남은 6일 동안 헌정사적 과제를 하나 더 해결해야 한다. 바로 과반 당선 대통령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래야만 후보를 둘러싼 BBK문제, 각종 도덕성 문제 등의 논란을 일거에 불식시키고 정통성 있는 대통령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먼저 제 세력들과의 연대와 외연확대를 통해 지열별로 막판 선거 운동을 독려해서 득표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충청권에서 이회창 후보와의 표차이를 최대한 벌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수도권의 득표율 제고와 15%선인 부동층의 밴드왜건(승자편승) 효과까지 이끌어 내는 전략을 펴야한다.

    강재섭 대표는 내년 총선의 병마권까지 쥐고 있는 총사령관이다. '총선땐 대선과 다른 당 찍을수도' 있다는 여론조사가 43%나 되는 것도 내년 총선 판도를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일단 보수정권의 소프트랜딩을 위한 첩경은 대선 압승(과반 당선)과 총선 승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