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을 보름 앞두고 정치세력간의 이합집산이 봇물을 이루며 대선구도가 3자 구도로 재편되고 있다. 심대평 국민중심당 후보는 “사즉생의 신념으로 중심에 서겠다”고 했으나, 내년 총선에 이회창 후보를 간판으로 충청당을 재건하겠다는 ‘총선용 알박기’로 후보 사퇴를 했다.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는 2007년 대선의 유일한 뉴 페이스(new face)였으나 그가 그 동안 국정 실패 세력이라며 사퇴를 요구한 대상인 정동영 후보와의 중도·진보 단일화를 통해 대역전의 발판 마련에 올인하고 있다.

    정치인은 정치적 상황과 여건에 따라 진로를 변경할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뚜렷한 대의명분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과거의 길과 다르면 거기에 합당한 설명이 있어야 하고 잘못이 있었다면 사죄해서 국민적 동의를 거쳐야 한다.

    현대중공업 회장인 5선의 무소속 정몽준 의원은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며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그는 "국가적 운명을 좌우할 중차대한 선택의 기로에서 무소속인 제가 무책임하게 중립지대에 안주할 수는 없다"고 이명박 후보 지지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그동안 정 의원의 행적을 떠올리면 그의 말에 진정성을 찾아 보기는 어렵다. 정 의원이 진정 나라를 걱정했다면 지난 5년간의 노무현 정권 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으며, 국가발전을 위해 어떠한 정치 활동을 했는지 묻고 싶다.

    또한 정 의원은 “실패한 20년의 정치실험을 마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5년 전 자신의 정치노선과는 거리가 먼 노무현과 후보 단일화를 했다. 그는 결국 좌파 정권을 10년 연장하는데 주단을 깔아준 혁혁한 공로자인 셈이었다.

    그의 주장대로 노무현 정권이 ‘실패’였다면 그 자신이 실패한 정권 탄생에 원죄가 있는 만큼 그에 합당한 사죄와 반성을 했어야 했다. 2002년 대선 당시 정 의원은 ‘노무현-정몽준 공동정권’ 등의 물밑 협상결렬로 오락가락한 행보를 벌여 많은 국민은 실망과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도 한나라당 입당 성명서 한 장으로 처참한 5년 실패를 호도하려 하고 있다.

    벌써부터 일각에서는 정 의원의 한나라당 입당이 차기 당권의 향배나 국무총리 보장설 같은 밀실거래의 흔적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명박 후보가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와 정 의원을 경쟁시켜 ‘디바이드 앤드 룰’(divide & rule·분할통치)을 통해 당 장악력을 높이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정 의원의 한나라당 행에 대해 "정 의원이 입당하고 같이 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일단 언급했다. 그러나 측근들은 “정 의원은 총리만 보고 오지 않았을 테고 결국 차기 대권을 보고 왔을 것이다. 현대 재벌 대통령에, 현대 재벌 총리, 현대 재벌 공화국을 만들겠다는 것이냐”며 발언 수위를 높이며, 잠재적 대권주자로서 경쟁구도가 성립된 것에 불편한 심기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동안 경선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당의 외연확대와 이명박·박근혜 캠프간의 화합과 결속을 위해 앞장서온 강재섭 대표는 “진심으로 환영한다. 국민이 정권교체를 원하는 시점에 아무런 조건 없이 모두 힘을 합치게 돼 기쁘다”면서 정 의원에게 꽃다발을 안겼지만, 그의 흉중에도 복잡 미묘한 심경이 교차했을 것이다.

    차기 대선구도의 한 축으로 웅지(雄志)를 품고 있는 강 대표에게도 정 의원의 입당은 ‘굴러온 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표, 강재섭 대표, 정몽준 의원 간에 전개될 ‘후삼국지’와 3인간의 경쟁과 협력이 화음을 연출할지, 마찰음을 낼지도 대선 이후의 한나라당을 관전하는 포인트가 될 것이다.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한 후보단일화, 합종연횡 움직임은 역대 대선 때마다 일종의 ‘통과의례’ 성격으로 대선판을 달궈왔다. 정 의원의 한나라당 입당은 범여권과 진보·좌파세력들이 정동영 후보로 결집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한나라당이 재벌비호당으로 낙인찍히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정 의원의 입당이 나경원 대변인의 논평대로 천군만마로 확인될지, 필기단마로 끝나게 될지 여부는 전적으로 정 의원이 향후 과거 자신의 선택에 대한 진정성 있는 반성의 토대위에서 시작된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