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신문 3일자 사설 '보기 민망한 부시-이명박 면담 논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주한 미국 대사관이 어제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며,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면담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오는 14~17일 미국을 방문하는 이 후보가 부시 대통령을 만나기로 확정됐다는 지난달 28일 한나라당의 공식 발표를 정면으로 부인한 것이다. 면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일을 미리 떠벌린 셈이 된 한나라당과 이 후보 쪽이 크게 망신스럽게 됐다.

    부시-이명박 면담 계획에 대해선 한나라당의 발표 때부터 성사 가능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선을 앞둔 시기도 적절하지 않거니와, 공식 외교라인 아닌 사적인 통로로 면담을 추진하는 등 과정 역시 상식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발표 직후 미국 국무부와 백악관이 곧바로 ‘재검토’에 나서기로 하는 등 반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미국내의 이런 기류는 한-미 관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 등 일각에서 면담 불발을 정부나 범여권의 대미 압박 탓으로 돌리려는 것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책임 떠넘기기다. 안팎으로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한 자신을 먼저 탓할 일이다.

    애초 이런 면담을 추진한 발상 자체도 문제다. 의도가 어떻든 대선을 불과 두 달 앞두고 특정 정당의 대선 후보가 미국 대통령과 만나려 한다면, 미국의 힘을 선거에 이용하려 한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과거 군사정권이나 3당 합당 때의 여당 후보들은 정치적 정통성의 부족을 미국의 지지로 메우고자 기를 쓰고 미국 대통령을 만나려 했다. 이 후보가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 사진이 선거에 꼭 필요할 정도로 궁박한 상황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 후보의 외교적 역량을 드러내보이고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였다고 하더라도, 이번 면담은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 북핵 6자 회담과 북-미 관계 정상화에 적극적인 자세로 돌아서면서 한반도 주변 정세는 말 그대로 큰 변화를 겪고 있다. 내년 미국 대선 이후엔 힘을 앞세운 미국의 일방외교도 큰 수정을 요구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이 국내에서나 통하는 낡은 구도로 대외관계에 접근하다간 자칫 흐름을 좇지 못해 발이 엉킬 수도 있는 상황이다. 섣불리 차별성을 드러내려 하기보다는 차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충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