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8일자 오피니언면 '태평로'에 이 신문 신효섭 논설위원이 쓴  '이 후보의 당개혁론이 걱정스러운 이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경선에서 이기자마자 ‘당 개혁론’부터 꺼내들었다. “당의 색깔과 기능을 재검토해야 한다” “정당이 비대한 것은 세계적으로 없는 일이다” “밖에서 보는 한나라당 이미지를 파악해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당 화합론도 나오지만 반대파에 대한 립서비스 성격이 짙어 보인다.

    한나라당은 분명히 달라져야 한다. ‘한나라당 공천장이 곧 특정 지역의 당선증’이라는 식의 강한 지역색이 가장 큰 문제다. ‘동교동 식구’들이 개인 역량과 관계없이 김대중 정당이란 프리미엄 하나로 눈 감고 헤엄쳐 다선(多選) 의원이 되던 시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 후보로선 대선전략 측면에서라도 지역적 지지 기반을 넓히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이다. 이 후보가 경선에서 한나라당 텃밭이라는 대구·경북에서 지고도 수도권에서 이겨 당선된 게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한나라당이 과거 공화당, 민정당 정권으로부터 물려받은 부정적 유산들도 떨쳐버려야 한다. 늙은 정당·권위주의·발전지상주의·차떼기 정당의 이미지가 그것이다. 한나라당 사람들이 여러 번 당 간판까지 바꿔 달았지만 이 묵은 때는 좀처럼 씻지 못했다. 이 후보로선 이렇게 흠집이 많은 한나라당이 짐으로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대통령 후보가 선거 때까지는 당의 무게중심이 되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그렇다 해도 이 후보는 당 총재가 아니라 대통령 후보에 당선돼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다. 그가 속해 있는 한나라당은 집권당이 될 수도 있다. 지금 이 후보가 한나라당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보느냐는 이 후보가 집권할 경우 당·정, 대(對)야, 대국회 관계를 미리 점쳐볼 수 있는 척도가 된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이 후보가 대통령 후보 데뷔 첫 1주일 무대에서 당 개혁 노래 한 곡만 틀어댄 것은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한나라당 안팎의 많은 사람들은 이를 ‘이제부터 당은 나에게 맞추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이 후보 캠프에선 “당 이미지가 부정적이므로 후보 지원 조직과 당 조직을 이원화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 후보 진영의 위·아래가 모두 당을 가볍게 여기고 아래로 보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은 이 정권 4년 동안 권력과 여당·야당·국회 관계가 비틀어질 대로 비틀어지는 걸 생생히 목격했다. 대통령은 “여당 평당원일 뿐”이라면서도 국민의 뜻과 반대로 가는 입법과 정책을 추진하는 데 여당을 하수인처럼 부렸다. 그러고서도 정치적 책임은 하나도 지지 않았다. 심지어 대통령은 자신을 당선시켜준 정당을 깨부쉈고, 그렇게 만들어진 당도 얼마 전 간판을 내렸다. 지난 4년 동안 대통령과 야당·국회 사이에 진지한 대화와 타협이 이뤄진 적도 없다. 이 정권이 민주주의의 기본인 정당정치의 명줄을 끊어버린 셈이다.

    국민들이 이런 4년을 보냈으니 이 후보와 참모들이 지금 한나라당을 다루는 모습만 보고서도 그들의 집권 후가 걱정되는 것이다. ‘이 후보가 집권하면 청와대는 여당을 찍어 누르려 하고, 여당은 청와대의 거수기 노릇만 하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이런 정권이라면 대야·대국회 관계도 원만하게 풀릴 리가 없다. 이 후보가 측근들 문제처럼 자신이 양보하고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덮어둔 채 당의 변혁만 강조하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이 후보는 당 개혁도 좋지만 먼저 자신이 집권하면 이 정권이 비틀어놓은 당·정, 대야, 대국회 관계를 정상화하리라는 확신을 국민과 정치권에 심어줘야 한다. 정당정치라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존중하고 준수할 것임을 국민과 한나라당, 정치권 앞에서 천명하라는 것이다. 그런 대통령 후보라야 국민에게 나라를 맡겨 달라고 말할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