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우리당이 17일 오전으로 사실상 공식 일정을 마감하고 스스로 당 간판을 내렸다.

    이날 오전 서울 영등포 중앙당사에서 열린 마지막 확대간부회의에선 정세균 의장을 비롯한 당 지도부는 일렬로 서서 머리를 숙였다. “국민 성원에 보답하지 못하고 당의 간판을 내리게 된 것에 대해서 죄송하다”고 했다.

    열린당은 18일 합당 전당대회를 끝으로, 대통합민주신당에 합당된다. ‘100년 정당을 만들겠다’며 지난 2003년 11월 창당한 열린당이 4년여만에 스스로 당 간판을 내린 것이다. 

    이날 회의는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착잡한 표정 일색이었다.

    정세균 의장은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고 했다. 정 의장은 이어 “제가 마지막 당 의장으로 기록된다는 것이 제 정치인생에서 결코 잊지 못할 아픔이 될 것 같다”고도 했다. 정 의장은 그러면서 “지금 이 시점에서 국민에게 우리는 용서를 구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며 “국민에 신뢰를 드리지 못한 것을 뼈저리게 반성한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또 “열린당의 모든 허물은 철저하게 버리고 신당에 갈 것”이라며 “그동안의 과오로 인한 국민들의 실망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떤 일리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했다.

    장영달 원내대표도 착잡함을 쏟아냈다. 장 원내대표는 “저 역시 오늘 6개월 18일 짧은 원내대표 임무를 마감한다”면서 “어떻게 보면 개인적으로 참기 어려운 수모의 세월이었다. 영광은 없고 수모와 험난한 시간들이 계속되는 6개월 18일이었다”고 했다. 장 원내대표는 “민주신당에 가면 헌신적으로 노력하겠다”며 “국민 여러분들께서 용서하시고 저희들의 반성을 받아주시기 바란다. 저희들 열심히 거듭 태어나는 심정으로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열린당은 47명의 의원으로 지난 2003년 창당, 17대 총선 때 탄핵 열풍으로 150여석이 넘은 원내 과반의석을 차지했다. 이후, 소속 의원들의 ‘엑소더스’가 이어지면서 58석의 ‘초라한 몰골’로 오늘을 맞이했다. 지난 4년여동안 당 의장이 10여차례 바뀌는가하면, 각종 선거만 치렀다하면 연전연패, 이도 모자라 당내 노선투쟁이 일면서 당 내분은 극으로 치닫는 등의 숱한 화제를 뿌리기도 했었다.

    일단 이날 마지막 회의에서 ‘대국민 사과’ 형식을 빌어 지난 4년여의 기간에 대한 과오를 반성했지만, 앞으로의 행보가 마냥 순탄치만은 않은 모습이다.

    당장 18일로 예정된 합당 전당대회가 당 사수를 외치는 강경파들로 인해 자칫 무력충돌의 조짐까지 일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합당의 대상인 민주신당 내부 ‘비노(非盧)’ 인사들을 중심으로 “자기반성없는 열린당의 무임승차는 대통합의 큰 걸림돌”이라면서 열린당에 선(先) 반성을 요구하고 있어, 이래저래 ‘미운오리’ 신세가 돼 버렸다.

    이와 관련, 정 의장은 이날 회의에서 민주신당 내부의 이같은 움직임을 힐난했다. 정 의장은 “한심스럽다”면서 “제 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의 티만 가지고 시비를 거는 것과 다름 아니다. 더 험한 말을 하고 싶지만 자제하겠다”고 불편한 심경을 여과없이 표출했다. 정 의장은 “과거에 열린당에 몸담고 있을 때 어떻게 잘못해서 당이 이렇게 어려움에 처했는지 스스로 반성해야 될 사람들이 적반하장으로 엉뚱한 얘기를 하는 것에 대해서 정말 어불성설이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장 원내대표도 “열린당을 어렵게 만든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일부 의원들이 신당에 가서도 똑같이 절제없고 정도없는 언행으로 자칫 신당도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있는 언행들을 일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 원내대표는 그러면서 “지난날 열린당에서 마음대로 멋대로 언행을 했던 풍습을 그대로 가져가서 거기서 똑같은 행동을 하고 나서면 민주신당은 불가피하게 대정화운동을 거쳐 나가지 않으면 안 될 부분이 있다”며 엄중히 지적했다.

    착잡함 속에서 스스로 당 간판을 내리고 지난 4년여간에 대한 과오를 머리숙여 반성하고는 있지만, 이들이 이날 반성한 과거 열린당의 과오가 향후 민주신당 내부에서도 그대로 재현될 조짐이 불가피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