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6일 사설 '노무현 정권이 한미연합사 해체에 성공한 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미 국방장관이 2012년 4월 17일에 한미연합사를 해체하기로 24일 합의했다. 그날 전시 작전통제권도 한국에 이양된다. 세계에서 가장 신속하고 효율적이며 강력한 전쟁 억지 체제가 사라지고, 한반도의 운명이 이유 없이 실험대에 오르는 날이 바로 그날이다. 작년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연합사 해체 원칙이 합의됐을 때 천용택 전 국방장관은 “대통령이 끝내 일을 저질렀다”고 했다. 지금 그 외에 다른 말을 찾을 수가 없다.

    90이 넘은 국군 원로, 역대 국방장관들, 역대 외교장관들, 역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들, 역대 경찰청장들, 학군장교 출신들, 예비역 군인들이 “북이 핵실험을 한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읍소하듯 매달렸지만 이 정권은 기어이 외면했다. 이 정권의 첫 국방장관과 첫 외교장관, 첫 주미대사, 첫 청와대 국방보좌관까지 힘들게 입을 열어 “안 된다”는 충정을 밝혔어도 소용없었다. 국회 국방위원회가 통과시킨 반대 결의안도 깔아뭉갰다. 국민 3명 중 2명(66%·작년 9월 한국갤럽 여론조사)이 반대해도 이 정권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군 원로들에 대해선 “별 달고 거들먹거린다”고 비난했고, 국민에 대해선 “미국 엉덩이 뒤에 숨었다” “사시나무 떨듯 와들와들 떤다”고 경멸했다.

    지금 대한민국 안보는 두 개의 도전에 처해 있다. 하나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북한발 위기다. 이 정권의 김장수 국방장관도 “북의 핵실험은 6·25 후 가장 심각한 안보 위협”이라고 인정했다. 가장 위험할 때 가장 확실한 안보 체제를없애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한미연합사가 전쟁을 막아온 것은 무엇보다 유사시에 한반도에 투입될 거대한 미국의 증원군 때문이었다. 천 전 국방장관은 그 가치를 1300조원으로 계산했다. 연합사가 없어지면 이 증원군의 존재가 불확실해질 것이란 우려에 대해 이 정권은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증원군을 확약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번 회담 공동발표문에 증원군에 대해선 한마디도 없었다. 각종 연합작전계획도 모두 사라지게 됐다. 북한 유사시 우리가 미국의 힘을 활용할 수 있는 통로가 다 막힐 수도 있다.

    또 다른 도전은 미국의 세계전략 변화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전 세계의 미군을 경량화·기동군화해 새로운 형태의 전쟁에 대처하는 전략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미 주한미군은 감축되고 있고, 언제든지 한반도 밖으로 이동할 수 있는 편제로 바뀌고 있다. 미국이 전작권 이양에 적극 나서는 것은 이런 전략 변화도 원인이다. 전작권까지 이양되면 주한미군은 더 감축될 수도 있다. 이를 막고 지연시켜도 모자랄 판에 이 정권은 ‘자주’라는 낡은 깃발을 들고 먼저 나서서 한미연합사 해체를 시위 구호처럼 외쳤다.

    한·미 국방장관 회담 후 청와대는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자기들끼리는 박수치고 환호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권의 이 시위 성공으로 국민은 수백조원의 안보 부담을 지고서도 안심하고 살 수 없는 대가를 치러야 하게 됐다.

    물은 엎질러졌다. 한·미 연합방위의 상징성은 파괴됐고, 김정일이 오판할 확률은 무에서 유가 됐다. 안보의 기축이 흔들렸다. 이제는 누가 되든 다음 정권이 군사 전략을 정치가 아닌 안보 문제로 되돌려 놓고, 처음부터 다시 정돈하고 안정시키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