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26일자 오피니언면 '동아광장'란에 서병훈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혹시 오해를 사지 않을까 몇 번이나 망설이다 이 글을 쓴다. 그동안 이런저런 지면을 통해 노무현 정권을 줄곧 비판하는 글을 써 왔지만 그렇다고 반대쪽 정당에 대해 특별히 호감을 가진 것은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사심 없이 글을 쓴다고 자신한다.

    이런 전제 위에서 손학규 전 경기지사에게 한마디 하고자 한다. 그가 잘되고 나라에도 도움이 되는 길을 찾고 싶기 때문이다.

    손 전 지사와는 학연, 지연 등 무엇으로도 엮일 일이 없다. 그가 대학에 몸을 담고 있을 때 좋은 추억을 공유한 것 정도가 그와 맺은 인연의 전부이다. 따뜻하고 점잖은 인품이었기에 후배들이 많이 따랐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가 정치인이 되고 나서는 따로 만난 적이 없지만, ‘대통령 후보’ 손 전 지사에 관한 신문 보도는 유심히 읽는다. 한나라당을 좀 더 개혁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도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즘 들어 왠지 아슬아슬한 느낌이 든다. 손학규 예비후보의 여론지지도가 5% 선에서 고착되고 한나라당 경선이 다가오면서 그의 정치적 선택이 세간의 관심을 끌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적지 않은 사람이 정치인 손학규의 ‘일탈’을 점치고 있다. 경선을 거부할 것이라든지, 심지어는 탈당해서 여권에 합류할 것이라는 전망이 속출한다.

    정치적 선택에 국민적 관심

    손 전 지사는 자신의 ‘본선 경쟁력’을 강조하고 싶어 한다. 경기지사를 하면서 이뤄 낸 성과를 생각하면 충분히 일리가 있다. 그런 손 전 지사로서는 한나라당 경선 규칙이 불합리하고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느 누가 남의 잔치를 빛내 줄 들러리 역할을 좋아하겠는가. ‘공직선거법’은 당내 경선에서 졌거나 경선 도중 포기한 사람은 대통령선거에 독자 출마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순리대로 한다면 그는 당내 경선을 통한 대통령의 꿈을 접어야 한다.

    상황이 이러니 “패배가 뻔한 길을 왜 가느냐. 정의롭지도 않은 경선규칙에 왜 얽매여야 하느냐”는 이야기에 솔깃할 것이다.

    그러나 국민은 그의 ‘이유 있는 항변’에 그다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당에서 처음 경선규칙을 만들었을 때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가 있었을 텐데 이제 와서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떳떳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민은 손 전 지사의 고민을 그의 5% 지지율과 연결해 본다. 가슴 아프겠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손 전 지사도 잘 알다시피, 소크라테스는 악법이 분명한데도 그 법에 따라 독배를 마셨다. 주변 사람이 탈옥을 권유했지만 단호히 거부했다. 그동안 그 법이 시행되는 것에 시비를 걸지 않다가 자기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린다고 새삼 불복종을 도모한다는 것은 시민으로서 도리에 어긋난다는 생각에서였다.

    호사가들은 손 전 지사가 범여권의 후보를 노려 탈당할 가능성도 이야기한다. 그를 아끼는 국민으로서는 이것이야말로 최악의 시나리오가 아닐 수 없다. 왜 한국 정치가 불신과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있는가. 무엇보다도 유력 정치인이 경선 결과에 불복하고 그것도 모자라 온갖 미사여구를 내걸어 적진에 투항한 결과, 사람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를 부정하고 훼손한 탓이 아닐까. 한국 민주주의를 병들게 했던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 뜻을 이루었던가. 역사는 결코 만만치 않은 것이다.

    당장 지더라도 경선룰 지켜야

    중국의 태산(泰山)은 그리 높은 산이 아니다. 주위가 나지막하니 높아 보일 뿐이다. 태산이 되는 법, 알고 보면 쉽다. 정도를 걷다 보면 당장은 손해를 볼 수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길이다. 때로는 돌아가는 길이 빠를 수도 있다. 원칙을 지켜 바른 길 가는 정치인을 외면할 우리 국민이 아니지 않은가.

    손학규 교수가 강단을 떠났지만, 지금도 정치학도들은 ‘정치란 사사로운 이익을 넘어 공의(公義)를 구현하는 행위’라고 배우고 있다. 그를 위한 염려, 나아가 한국 정치의 장래에 대한 충정을 헤아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