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6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가 쓴 '메신저의 목을 베는 황제'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일부 신문에 대한 적개심과 피해의식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노 대통령은 지난 4년 동안 그가 적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언론을 다루어 온 경험을 밑천으로 나름대로의 대응전략을 개발해서 23일 밤 신년연설에서 넌지시 선을 뵈었다.

    노 대통령은 사전에 배포한 연설 원고에서 "내일 아침 언론을 보면 오늘 보고 들은 것과는 사뭇 다른 기사가 나올 것"이라고 미리 경고해 뒀다. 그것은 일부 신문은 반드시 대통령인 자신의 말을 그들의 노선과 이해에 맞게 왜곡해서 보도한다는 주장의 점잖은 표현이다. 요약하면 그런 신문들의 보도를 믿지 말고 내 말만 믿으라는 주문이다. 노 대통령은 자기 정부의 실정(失政) 책임을 앞선 두 정부와 야당과 언론 탓으로 돌리는 내용으로 연설을 써 놓고는 보수언론의 "그건 책임 전가요"라는 비판을 예상하고 국민들에게 예방주사를 놓은 것이다. 기발한 아이디어다.

    노 대통령은 실제 연설에서 "부동산 신문들이 흔들어서 더 강력한 부동산 정책을 낼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부동산 신문'이라는 조어(造語)의 등장이다. 이것은 한동안 386들이 조중동을 "조폭 신문" "족벌 신문"이라고 멸칭(蔑稱)하던 것과 유사한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부동산 신문을 풀이하면 부동산으로 재미를 보는 신문, 서민을 위한 부동산 정책에 반대하는 신문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노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이런 사실 왜곡을 통해 집 없는 서민들의 좌절감과 분노의 물꼬를 그들이 사갈시(蛇蝎視)하는 보수신문으로 돌리려고 한다. 그들은 그것이 촌철살인적인 파괴력을 가진 용어라고 좋아할지 몰라도 속보이는 간계다.

    영국신문 데일리 미러는 2005년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카타르에 있는 아랍어방송 알자지라 건물을 폭격하겠다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계획을 포기시켰다고 보도한 바 있다. 아일랜드의 인터넷신문 아거스는 "부시, 아랍 전령 죽이라 명령"이라는 제목으로 이 보도를 전재했다. 알자지라는 오사마 빈 라덴의 영상 메시지와, 이라크 저항세력과의 팔루자 전투에서 죽은 미군과 이라크 군인들의 시체를 방영하여 미국의 분노를 사고 있었다. 전령(Messenger)을 죽인다는 말은 고대 페르시아의 고사(故事)에서 유래한다. 페르시아 황제들은 원정군이 전투에서 패하면 패전보고를 가지고 온 전령의 목을 베었다고 전한다. 실패 그 자체를 문제삼지 않고 실패의 소식을 전한 전령, 현대적 용어로는 실패를 보도한 언론을 탓하는 행위를 '페르시아 전령 증후군(Persian Messenger Syndrome)'이라고 한다.

    노 대통령은 신년연설에서 언론을 35번 거론하고 22번 비판했다고 한다(동아일보 1월 25일자 5면 기사).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언론과의 전쟁도 불사한다는 발언을 한 기록을 가진 노 대통령은 최근에 와서는 언론에 대한 공격의 강도를 높여 언론을 불량상품이라고 부르고, 기자들이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서" 기사를 조작하고 담합한다는 극언을 쏟아냈다. 실정(失政)을 보도하고 비판하는 언론에 대한 이런 공격은 '페르시아 전령 증후군'의 이름값을 할 발언들이다.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어쩌고 하는 발언에 대해서는 표현이 적절치 않았다는 유감 표명이 있었지만 문제는 대통령의 왜곡된 언론관이다.

    노 대통령이 외국의 기자실 운영 실태를 조사하라고 외교부와 국정홍보처에 지시한 것은 다행이다. 외교부와 국정홍보처가 정직하게 조사한 결과를 정직하게 보고한다면 노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1)정부 각 부처는 출입기자들의 취재에 최대한 협조한다. (2)공무원들은 대통령으로부터 기자들을 적대시하라는 지시를 받지 않는다. (3)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 주류 언론의 기자가 질문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4)사족(蛇足):한국에서는 기자들 간의 죽기살기식 경쟁, 대체언론과 시민단체들의 감시 때문에 담합은 꿈도 못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