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와대가 또 언론을 맹비난했다.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실 이승형 행정관은 18일 '청와대 브리핑'에 글을 올려 "조선일보는 '대선용 신문'"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비난했다.

    '이 신문이 남북정상회담설에 안달복달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 행정관은 조선일보의 남북정상회담 관련 보도를 "대선용 신문의 대선용 공격"이라고 강변했다. 그는 "이미 청와대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입장을 밝혀왔다. 정상회담의 문은 열려있다. 그러나 상대가 있는 문제이고 현재 논의되고 있는 것은 없다"며 "여전히 색깔론이나 위기조장론과 같은 소아적이고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남북문제를 보고 있으니 걱정이다"고 참견했다.

    이 행정관은 "(조선일보 보도는) 야당과 보조 맞추는 동일한 주장"이라며 "대선용 신문의 한계"라고 자신만의 주장을 늘어놓았다. 그는 조선일보가 남북정상회담'설(說)' 보도에 집착하는 이유로 두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지금의 대선 판도를 흔들지도 모를 어떠한 시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고, 둘째는 "냉전 시대의 논리로 남북 관계를 바라보는 조선일보의 대결적 시각을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참으로 정치적이다. 이런 의도야 말로 ‘대선용’이다. 이러니 이 신문을 가리켜 ‘정치언론’이라 부르는 것이다"며 "과연 이번 ‘설’ 보도는 과거 대통령 선거 때마다 편파보도로 국민들의 불신을 자초했던 ‘대선용 신문’의 모범답안답다"고도 비난했다. 글은 "조풍(朝風)아, 불테면 불어라. 우리는 끄떡없다"고 비꼬았다.

    <다음은 이승형 행정관의 글 전문>

    이 신문이 남북정상회담 설(說)에 안달복달하는 이유
    대선판도 흔들릴라…대선용 신문의 대선용 공격

    조선일보 1월 15일자는 ‘남북정상회담’ 관련 보도로 가득 채워졌다. 정확히 말하면 ‘남북정상회담 설(說)’ 관련 보도다. 1면 스트레이트 기사에 4면에는 해설 박스기사를 실었고, 그것도 모자라 칼럼에다 사설까지 곁들였다. 설(說)만으로 설을 푸는 능력은 이 신문답게 탁월하다.

    “남북정상회담 고집은 국정실패 덮으려는 것” “꼬리 무는 南北정상회담說…‘특사 임박’ 관측도” “北風아, 불 테면 불어라” “이 정권이 南北 정상회담에 안달복달하는 이유” 등 제목도 다채롭다. 이 신문은 다음날에도 “남북정상회담 찬성하면 ‘평화세력’, 반대땐 ‘反 평화세력’으로 몰아” “남북정상회담…정파적 목적 땐 실패할 것” 등 소위 전문가들의 견해를 기사화했다. 지난해 12월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소개한 데 이어 한 대학 교수의 기고를 싣는 객관적인 균형 감각(?)도 잊지 않았다.

    이쯤 되면 보도 내용은 둘째 치고, 이 신문이 남북정상회담 이야기로 연일 지면을 도배한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야당과 보조 맞추는 동일한 주장…대선용 신문의 한계
    <조선일보>의 ‘설’ 보도는 크게 두 가지로 읽힌다.

    첫째, 지금의 대선 판도를 흔들지도 모를 어떠한 시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한나라당은 1월 14일 “남북정상회담은 대권 창출을 위한 음모 회담이요, 북핵 용인 회담이 될 뿐”이라고 주장했다. 다음날 이 신문의 김대중 고문은 “노 정권은 정상회담으로 노리는 것이 많다. 우선 남북정상회담으로 정권 말기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싶을 것이다…한반도의 안정과 통일을 크게 선전함으로써 선거를 반전(反轉)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만하다”라고 맞장구쳤다.

    야당 주장의 동어반복 내지는 동어확대다. 한나라당 당보인가. 이 신문은 야당처럼 남북정상회담이 정치용이요, 대선용이라고 흥분한다. 그러니 실체도 없는 ‘설’을 기정사실화하고 대서특필하는 어이없는 일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는 어떤 변수든 현 대선 판도를 깰 가능성이 있으면 (어떤 기준에서 이런 판단이 나오는지 불분명하지만) 그 싹수부터 잘라야 한다는 강박에서 비롯된 것이다. 앞으로 정부는 국민들에게 정상회담이라는 사안에 대해 입도 벙긋할 생각도 말라는 시위 같기도 하다.

    참으로 정치적이다. 이런 의도야 말로 ‘대선용’이다. 이러니 이 신문을 가리켜 ‘정치언론’이라 부르는 것이다. 과연 이번 ‘설’ 보도는 과거 대통령 선거 때마다 편파보도로 국민들의 불신을 자초했던 ‘대선용 신문’의 모범답안답다.

    여전히 냉전 시대에 갇혀 있는 신문
    둘째, ‘설’ 보도는 냉전 시대의 논리로 남북 관계를 바라보는 조선일보의 대결적 시각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김 고문은 칼럼에서 “노무현 정권과 좌파세력이 이 회담에 목을 매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혹은 “그렇다면 북핵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 용처(用處)는 한국과 남쪽의 대선이다”라고 확언한다. 정상회담에다 좌파, 우파를 갖다 붙이는 ‘색깔론’이나 핵무기가 한국에 사용될 것이라는 섬뜻한 ‘위기조장론’ 모두 이 신문의 일관된 논조여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건 이 칼럼이 주장하는 것이 과연 남북 화해인지, 남북 대결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설마 한반도 내에서 갈등이나 대립 구도를 원하는 건 아닐 터인데 칼럼 내용은 자꾸 그렇게만 읽히니 염려스럽다.

    이미 청와대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입장을 밝혀왔다. “정상회담의 문은 열려있다. 그러나 상대가 있는 문제이고 현재 논의되고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한반도 평화정착이라는 중대과제가 좌파, 우파 차원의 문제가 아님을 알고 있다. 또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대화가 최선책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색깔론이나 위기조장론과 같은 소아적이고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남북문제를 보고 있으니 걱정이다. 과연 원하는 게 무엇인가. 대북 포용정책이 없었던 시대, 남북 대결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뜻인가.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자는 말인가. 과거가 그리운가.

    조풍(朝風)아, 불테면 불어라
    그런데 정작 더 큰 문제는 ‘설’을 갖고 흥분하는 데 있지 않다. 앞으로 1년 내내 어떤 정부 정책이나 대통령의 제안이 나와도 “정치적 목적이 있다” “선심성 정책이 아니냐” 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설’을 갖고도 이토록 안달복달하는데 실제 발표되는 정책이나 제안에는 오죽하랴. 이미 대통령의 개헌 제안이 그랬고, 엊그제 보건복지부의 복지정책이 그랬다. 대통령이 정책적 발언을 하면 선심용이라고 하고, 정치적 발언을 하면 대선용이라고 한다. 이래도 비판, 저래도 비판. 정치도 하지 말고, 정책도 만들지 말라는 것인가.

    조선일보는 대선용이라 공격하며 스스로 ‘대선용 신문’임을 노골적으로 과시하고 있다.

    이 신문은 역대 대선마다 항상 편파보도 논란에 휩싸였다. 1997년 대선 당시 특정 후보에 유리한 보도를 내보낸 직후 조선일보 노동조합의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67%(134명)는 “조선일보가 특정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한다는 인상을 주었다”고 답했다. 1998년 5월 언론노조 등 3단체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불공정한 신문사로 중앙일보(40.8%)와 조선일보(30.3%)를 들었다.

    자사 기자들도, 타사 기자들도, 국민들도 불공정하다고 본 것이다. 2002년 대선은 굳이 말 할 것도 없다. 자사 기자들도 편향적이라는 신문에 무엇을 바라겠는가.

    김 고문은 칼럼에서 “‘북풍’이 과거 한국의 선거에 영향을 미쳤지만 이제 그 효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과거 독재 정권의 북풍공작에 일조했던 게 조선일보 아니던가. 남을 비판하기 이전에 자신을 먼저 되돌아보라. 그런 점에서 그의 칼럼 마지막 부분을 패러디해서 권고하고자 한다.

    ‘'조풍’(朝風)이 과거 한국의 선거에 영향을 미쳤지만 이제 그 효력이 떨어지고 있다. 국민들도 이제 조선일보의 대선용 편파보도에 혹(惑)할 단계는 지났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오히려 우리는 이렇게 외칠 수 있어야 한다. “조풍(朝風)아 불 테면 불어라. 우리는 끄덕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