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5 재보선 후폭풍이 열린우리당을 강타하고 있다. 재보선 직후인 26일부터 당장 당내에선 향후 정계개편 방향과 폭을 놓고 ‘백가쟁명’식 주장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일단 당 위기 수습을 위한 조기 전당대회 개최 여부다. 조기 전당대회를 요구하는 당내 의견은 내년 2월 예정인 전대를 앞당겨 당 정체성을 확립한 후에 외부세력연대에 나서자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일각에선 ‘당 간판을 내려야 한다’는 국민의 뜻이 이번 재보선을 통해 확연하게 나타났으니 범여권통합이란 명분으로 신당 창당 등 실질적인 정계개편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으로 맞서는 양상이다. 이에 덧붙여 지도부 책임론과 당 위기 극복의 세부적인 방법론 차원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 필요성 등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가중됐다.

    김근태 의장은 일단 이날 오전에 열린 긴급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어떤 변명도 앞세우지 않고 민심을 겸허하게 수용한다. 평화·번영 추구 세력의 대결집을 이뤄 국민에게 새로운 희망을 드리는 길을 찾겠다”면서 정계개편 추진을 사실상 공식화했다. 김 의장은 “당내 합의가 모아지는 대로 빠른 시일 내에 흩어진 전열을 재정비하고 새로운 희망의 길을 구체화하는 노력을 추진할 생각”이라고 했다. 사실상 정계개편 본격 추진과 조기 전대에 방점을 찍고 소속 의원들에게 ‘화두’를 던진 것이다.

    이와 관련, 초선의원들의 모임인 ‘처음처럼’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갖고 “재보선 결과를 지도부 잘못으로 돌리는 것은 여당으로서 책임있는 자세가 아니다”며 “내년 2월 전당대회를 늦어도 1월까지 앞당겨야 한다”면서 당의 근본적 변화를 촉구했다. 이들은 “전대는 정체성을 재확립하고 새롭고 폭넓은 세력 연대를 구축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면서 “비대위는 11월까지 전대 등 정치일정 준비를 차질없이 완료해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은 조기 전대를 통해 정체성을 재확립한 후 열린당 중심의 외부세력 연대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목희 전략기획위원장도 25일 선거 결과가 나온 직후 “재창당의 기조와 방향을 제시하고 구체적 실천계획을 마련해 정기국회 이후 추진하겠다"면서 ”재창당의 기조와 방향, 프로그램은 결국 현재의 지도부에서 마련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 지도부가 재창당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춘 후, 새로 들어설 지도부가 정계개편에 본격적인 박차를 가하자는 것으로 풀이된다. 재창당을 위한 조기 전대 개최에 힘이 실린 모양새다.  

    그러나 김 의장의 개성 ‘춤판’ 파문 등 지도부의 지도력 부재가 선거에서 여실히 드러난 데다가 정계개편을 본격 추진하기에는 이미 구심점이 무너졌으므로 조기 전대는 득이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질적인 정계개편 추진을 위한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의견인데, ‘열린당 간판으로는 안된다’는 것이 선거를 통해 분명히 나타난 상황에서 범여권 통합신당 추진을 노리는 실질적인 정계개편에 나서자는 것이다. 이른바 ‘헤쳐모여식’ 신당 창당론이다.

    전병헌 의원은 조기 전대 개최에 대해 “기득권에 집착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우려스럽다”며 “재창당은 호박에 줄을 긋는 것이고, 조기 전대는 호박껍질을 두껍게 하려는 것”이라면서 반대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전 의원은 “지금은 한나라당에 반대하고 열린당에 실망한 국민들을 한데 묶어서 새로운 집권 희망과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을 비롯한 지도부 책임론을 둘러싸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정계개편의 실질적 추진을 위해서라도 김 의장의 자진사퇴를 요구할 모습이지만, 초선 모임 ‘처음처럼’은 “재보선 결과를 지도부 잘못으로 돌리는 것은 여당으로서 책임있는 자세가 아니다”고 확실히 못박았다. 김 의장이 재보선 후폭풍의 논란의 중심에 선 모습이지만, 지도부 사퇴 이후 마땅한 인물도 없다는 점에서 책임론은 향후 정계개편 방향을 둘러싼 당내 논란을 대비한 ‘각 계파의 명분쌓기’ 차원에 그칠 공산이 클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재보선 후폭풍을 극복하려는 세부적인 방법을 놓고도 논란이 가중됐다.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 여부가 도마 위에 오른 모습인데, 당장 친노직계 그룹이 반발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통해 호남의 지지세를 확고히 다진 민주당이 여당 의원들을 상대로 한 ‘흔들기’가 본격화 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노 대통령의 탈당을 놓고 당내 논란이 불가피한 모습이다. 민주당은 ‘헤쳐모여식’ 정계개편을 언급하면서 노 대통령의 탈당을 전제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이에 맞서 강경․개혁진영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신기남 전 의장은 이날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장성민입니다’에 출연해 '헤쳐모여식' 신당 창당, 재창당 등 당내에서 제기된 정계개편 방향 등에 대해 “어렵다고 해서 과거로 돌아간다든지 민주당과 합당한다든지, 원칙없이 그저 정계개편 신당만 추진한다든지 이런 것은 안된다”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신 전 의장은 “우선 열린당의 창당이념을 똑바로 지켜나가는가 반성하고, 열린당이 주축이 돼 민주개혁세력 연대를 이뤄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열린당은 29일 당 비상대책위원회 등을 열어 조기 전당대회 개최 등을 포함한 위기 수습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29일 이후 어떤 식으로든 정계개편 방향 등의 윤곽은 드러나겠지만 어떤 결정이 나든 내홍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