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0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KBS 강동순 감사가 KBS 시절을 고백한 책 ‘KBS와 권력’ 속의 KBS는 말 그대로 복마전이고 요지경이다. 33년간 KBS에 몸담아 온 강 감사는 ‘정권과 줄닿은’ 정연주 사장이 2003년 4월 취임사에서 ‘올바른 시대정신’을 들먹이며 들어선 이후 KBS의 조직과 인사와 프로그램을 주물러가며 그가 생각하는 ‘시대정신’이 무엇인가를 이념적으로 편향되고 정치적으로 불공정한 방송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강 감사는 정 사장이 주도한 대표적 프로그램으로 ‘인물현대사’ ‘미디어 포커스’ ‘시사투나잇’ 등을 꼽았다. 모두가 편향 프로그램의 대표선수 격이다. 특히 ‘시사투나잇’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전재희 의원의 누드 패러디처럼 상식을 벗어난 야당에 대한 방송테러 내용 등으로 “160여 차례나 KBS 심의팀 지적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고도 온전할 만큼 목숨 줄이 동아줄 같은 프로다.

    들으면 들을수록 가관이다. 강 감사는 “지난해 방영된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은 노무현 대통령이 원작 소설을 즐겨 읽었다는 이야기가 나온 직후 긴급 기획됐다”고 속사정을 털어놨다. 군사독재 시절에도 없던 일이다. 임금이 물고기가 맛있다고 했더니 개천에서 물고기의 씨가 마를 정도로 잡아 갖다 바쳤다는 봉건 전제군주시대에나 벌어질 일이 국민의 시청료와 세금으로 운영되는 KBS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날 14시간 30분 생방송을 하며 가결 전후의 국회 본회의장 영상을 수없이 반복해 틀었다”는 정권 홍위병 KBS의 탄핵전후 사정은 물릴 정도로 들은 이야기다.

    강동순 감사는 “정 사장 취임 후 팀장 이상 179명 중에 중용된 노조간부 출신이 33명으로 18.4%를 차지한다”고 했다. 방송은 정권 입맛에 맞춰가면서도 회사 내 세력기반을 다지는 데 인사를 요령껏 이용했다는 말이다. 그는 이회창 후보 선거캠페인에 참여했던 개그맨을 방송에서 볼 수 없게 된 것을 “정권 코드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방송에서 배제당한 사례”로 들었다. 강 감사는 정 사장이 주도한 KBS 편파방송의 근원이 사장 선임방식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민주적 절차로 포장돼 있지만 실제론 권력 입맛에 맞는 사람을 뽑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민도 알고 정권도 아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