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2일자 오피니언면에 소설가 복거일씨가 쓴 시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현대는 정치에 압도된 시대다. 어떤 곳의 어떤 일에서든 늘 정치적 논리가 판을 움직인다. 이런 사정은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오지만, 늘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근대 이전에는 대중이 정치에 관심도 작았고 참여할 길도 없었다. 대중이 참정권을 갖게 된 뒤에야, 정치가들이 대중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동원했고, 사회의 정치화 과정이 시작되었다. 대중이 정치적으로 동원되면, 정치적 열정을 품게 된다. 사람들은 흔히 정치적 열정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 맞서므로, 정치적 열정은 필연적으로 정치적 증오를 낳는다.

    정치적 증오는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품게 되는 증오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증오는 사람의 생존에 가치가 있기 때문에 진화 과정에서 유지되었다. 그것은 개인이 그의 삶을 위협하는 존재와 맞서도록 돕는다. 정치적 증오는 다르다. 그것은 어떤 개인이 인식한 직접적 위협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적 성찰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그것은 개인이 당장 생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고, 실은 거의 언제나 해롭다. 달리 말하면, ‘증오를 위한 증오’다. 그래서 자유주의 사상가 쥘리앵 방다(Julien Benda)는 만들어진 증오로 짓눌린 현대를 “정치적 증오의 지적 조직”을 이룬 시대로 규정했다.

    근년 우리 사회에선 정치적 증오가 갑작스럽게 커졌다. 대중 매체의 발전, 인터넷의 등장, 이념적 편차의 확대, 증오 집단들의 증가와 같은 요인들이 이내 떠오른다. 그러나 결정적 요인은 자신들의 정치적 자산을 쉽게 늘리려는 정치가들이 정치적 증오를 부추겼다는 사실일 터이다.

    박 대표 향한 정치적 증오 우리 모두를 위협할지도… 

    요즈음 정국이 해방 바로 뒤의 정국과 같다는 얘기가 자주 들린다. 해방은 정치가 실질적으로 배제되었던 우리 사회를 단숨에 정치화된 사회로 만들었다. 이념적 편차가 무척 컸으므로, 좌우익의 싸움은 정치적 증오를 동력으로 삼은 결사적 싸움이었다. 그래서 명망이 높은 정치가들이 암살되었고, 정치적 증오는 더욱 커졌다.

    그래도 해방 바로 뒤에는 대중을 동원하는 데 큰 제약이 있었다. 교통과 통신이 적고 느려서, 선동의 효과도 작았다. 라디오도 없는 세상에서 선동적 정치가들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은 다르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 대한 테러는 이런 사정을 충격적으로 일깨워주었다. 왜 60년 전 그 끔찍한 사건들을 낳았던 정치적 증오가 갑자기 그 자리에 나타난 것일까? 그동안 우리는 정치적 증오를 폭력으로 드러내는 모습들을 자주 보지 않았던가?

    자신들을 위해서라도, 우리 정치가들은 정치적 증오를 부추기는 일을 삼가야 한다. 개인들이 일상 생활에서 품게 되는 자연스러운 증오와 달리, 인위적으로 제조된 지적 증오는 그것의 대상이 된 사람들이 풀 길이 없다. 실은 증오를 품은 사람들 스스로도 풀 수 없다. 지적 증오는 처음에는 소수의 특정 인물들을 향하지만, 조만간 모두를 위협한다. 소련의 ‘굴락’에서 나치 독일의 ‘처형수용소’를 거쳐 중국의 ‘문화 혁명’에 이르기까지, 지적 증오는 많은 제물들을 삼켰고, 아직도 곳곳에서 배가 고프다.

    예이츠는 ‘딸을 위한 기도(A Prayer for My Daughter)’에서 “증오로 숨이 막히는 것은 모든 악운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했다. 그리고 증오들 가운데 “지적 증오가 가장 나쁘다”고 일렀다. 폭풍우 치는 밤에 잠든 어린 딸을 위해 기도하면서 한 얘기들이다. 우리 딸들이 증오로 덮인 세상에서 위태롭게 살지 않도록, 우리는 정치적 증오를 부추기는 일의 위험을 깊이 성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