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처음 맞붙은 12일 밤 생방송 TV토론. ‘대선 전초전’인 5·31지방선거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두 사람이 한 자리에 모인만큼 치열한 설전이 기대됐지만 큰 충돌은 없었다.   ·

    정 의장과 박 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 MBC방송국에서 진행된 ‘5·31지방선거 공직선거 당대표 정책 토론회’에서 마주 앉기는 했지만 5당 대표에게 발언기회가 분산되고 제한된 시간으로 ‘정면승부’를 펼치진 못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발언기회를 최대한 살려 ‘지방권력 교체론’에는 ‘중앙정부 심판론’으로 맞서는 등 곳곳에서 신경전을 펼쳤다. 


    ‘무능한 노무현 정권’ 비판으로 토론 시작하며 포문 연 박근혜
    정동영 “비리 물든 지방자치단체, 5·31당선자 전원 대상 특검 실시”


    포문을 박 대표가 먼저 열었다. 박 대표는 이날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하며 노무현 정부의 경제 실정을 부각시켰다. 박 대표는 토론 시작부터 “현 정권을 대통령과 국회 과반을 가지고도 국민들을 편안하게 해드리지 못하고 나라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드리지도 못했다”며 “이번 지방선거는 그 지역 발전을 이끌어 갈 일꾼을 뽑는 선거인 동시에 현 정권의 지난 3년을 평가하는 기회”라고 공격했다.

    박 대표는 이어 “한나라당은 지난 2년 동안 국민들이 더 편하고 안전하게 잘 살 있도록 민생정치에 당력을 집중해 왔다”며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국민 피부에 와 닿는 민생·생활공약에 중점을 뒀다”고 덧붙였다.

    정 의장은 즉각 ‘부패한 지방자치단체 심판’을 이번 지방선거 대표 공약으로 꼽으며 반격에 나섰다. 그는 “지방자치 역사가 11년이지만 고쳐야할 것이 많다”며 “정부 예산 절반을 지방자치단체가 집행하지만 세는 예산이 많다. 비리에 물든 지방자치단체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 이번 선거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많은 지방자치단체장이 한나라당 소속이라는 겨냥한 듯 “4년 전 뽑힌 기초단체장 250명 중 80명이 구속되거나 기소됐다”며 “이번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사람 전원을 대상으로 특검을 실시해 검증받는 것이 악순환 되풀이 하지 않는 길”이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정 의장은 민주노동당의 요구로 지난 4월 임시국회에서 직권상정 법안에 ‘끼워 넣어’ 통과시킨 주민소환법이 마치 열린당이 주도한 듯 “주민소환제 도입이 유효한 수단이 될 것”이라며 “독립감사관제도 입법화와 정보공개정권 확대도 6월 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도 했다.

    정동영 “경제 회복세, 체질 튼튼” vs 박근혜 “저성장으로 중산층 붕괴”

    둘은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에 대해서도 현격한 인식차를 드러냈다. 정 의장은 국가 경제가 회복세를 타고 있는 만큼 양극화 해소에 중점을 둔 반면 박 대표는 정부·여당이 반시장주의·정부만능주의로 저성장을 거듭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 의장은 “큰 틀에서 국가경제가 회복 되고 있고 체질도 튼튼해져 가고 있다”며 “국가가 부도난 IMF사태가 8년이 경과됐다. 다른 나라는 그 고통이 10년까지 갔던 만큼 국가 부도 사태는 터널의 끝자락”이라고 주장했다. 현 경제위기는 IMF사태를 불러온 한나라당 책임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연 7% 경제성장, 250만개 일자리 창출’ 공약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배럴당 30달러에서 70달러로 두 배가 오른 유가와 김대정 정부 시절 일어난 카드대란으로 390만명의 신용불량자를 인계 받았다”며 “이 같은 악조건에서 7%의 경제성장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대표의 경제상황 진단은 정반대였다. 박 대표는 “세계 경제는 30년 만에 호황을 느리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저성장으로 중산층이 붕괴되고 빈민층이 확대되고 있다”며 “우리 경제가 어려워진 이유는 정부·여당이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현 정권은 그동안 반시장주의와 정부만능주의에 빠져 3년간 시장경제를 무시하고 규제를 늘리며 세금을 올려 중앙정부를 키우는데 주력했다”며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기업이 하는 것인 만큼 기업이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규제를 혁파하고 세금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동영 “한나라당 행정도시건설 폐지법 제출해 놓고 있다”
    박근혜 “다 알면서 어거지 쓰고 있다. 행정도시폐지안 당론 아니다”


    정 의장과 박 대표의 신경전은 충남 공주·연기지역의 행복중심복합도시 문제에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특히 충청권에 공을 들여온 박 대표는 정 의장이 충청권 민심과 직결되는 행정도시건설을 한나라당이 반대한다고 공격하자 “어거지를 쓰는 경향이 있다”고 불쾌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정 의장은 일단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 국민중심당 심대평 공동대표에게 질문하는 형식으로 박 대표에 대한 우회적인 공격을 시도했다. 정 의장은 “심 대표는 국중당을 창당한 이유가 행정도시 건설을 차질 없이 하기 위해서라도 강조했는데 한나라당은 행정도시건설특별법 폐지 법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고 있다”며 이에 대한 심 대표의 의견을 물었다.

    심 대표의 입을 빌어 박 대표를 공격하려 했지만 심 대표는 “행정도시 건설에 대해서는 한나라당과 열린당 모두 할 말이 없다”며 “한나라당은 행정도시법 폐지안을 국회에 계류 중이고 열린당은 선거때만 되면 재미 보려고 행정도시를 들고 나온다”고 양당을 모두 싸잡아 비판했다.

    정 의장은 이어 직접 박 대표를 공격했다. 그는 “박 대표가 행정도시법에 대한 국회 본회의 표결에서 기권했다는 보도를 봤고 한나라당 의원 70%도 반대하는 상황이었다”며 “대전에 가서 행정도시법 폐지안 철회를 소속 의원들에게 건의하겠다고 했는데 충청권에서만 얘기하고 중앙에서는 말한 바가 없다”고 비난했다.

    그러자 박 대표는 “다 알면서 어기지를 쓰는 경향이 있다”며 “한나라당은 협상을 한 후 여야 합의를 통해 행정도시법을 국회통과 시켰다”고 쏘아 붙였다. 그는 “한나라당 안에서 반대하는 분들도 있어 당론으로 찬성 입장을 확실히 했고 그 후 예산 등 행정도시 건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책도 확실하게 했다”며 “선거 때가 되니까 열린당이 충청도에 가서 폐지안이 한나라당 당론인 것처럼 악용하고 있다”고 강력 비판했다.

    그는 이어 “행정도시법 폐지안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국회의원은 소신에 따라 법안을 낼 수 있다”면서 “그러나 이미 행정도시법은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결정을 받았기 때문에 폐지안은 소용이 없다”고 반박했다.

    민주·민노·국중 '지지세력만이라도 확실히 잡자'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치열한 대결로 5·31지방선거전에서 빛을 덜 받고 있는 군소정당들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자신들 지지세력 공략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군소정당의 이 같은 선거 전략은 12일 밤 진행된 ‘5·31지방선거 공직선거 당대표 정책토론회’에서도 나타났다.

    서울 여의도 MBC방송국에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민주당 한화갑 대표,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 국민중심당 심대평 공동대표는 각각 ‘호남권’ ‘노동자’ ‘충청권’을 겨냥한 발언들을 쏟아냈다.

    ▲‘노동자표만 결집돼도…’ 민노당 = 노동자들이 정당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민노당 문성현 대표는 노사관계나 비정규직 문제 등 노동자와 관련된 질문에 적극 나서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 대표는 노사관계 때문에 공장이 해외로 이주하고 있다는 민주당 한화갑 대표의 지적에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다. 노사관계 때문이 아니고 하청 가격 때문이다”고 즉각 반박했다.

    그는 대기업 노동자의 양보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열린당 정동영 의장의 질문에는 “우리 계산으로 대기업 노동자 임금이 100만원가량 많은 것으로 나온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채용할 때 연간 100조원이 더 들어간다”며 “양보할 수는 있으나 100조원이나 되는 돈은 노동자가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경영 흑자는 노동자보다 자본가가 더 많이 가져간다”며 “불로소득에 대한 세금 부과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비정규직 문제는 노조가 제대로 운영돼야 안정된다”며 “현재 발생하는 노사 분규는 비정규직 중심이고 자동차·조선 등 노사관계가 안정돼 있는 곳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충청부터 잡자’ 국민중심당 = 충청권을 대표하는 정당이 되겠다는 목표로 창당된 국민중심당 심대평 공동대표는 지방자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충청지역정당이 되겠다는 의사를 감추지 않았다. 심 대표는 “이번 지방선거는 무능하고 잘못된 국가운영의 틀을 바꾸는 기회로 지방자치를 소생시켜 창의와 자발적 노력으로 응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행정도시에 기대하고 있는 충청민심을 반영한 것이다. 그는 “행정도시 건설에 대해서는 열린당도 한나라당도 할 말이 없다”며 “국중당만이 행정도시 건설을 지켜낼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행정도시건설은 수도권 과밀화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되고 국가 균형발전 차원에서 별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출발한 국가정책”이라며 “충청권의 중심인 국중당이 지켜내겠다”고 다짐했다.

    ▲‘DJ비판 못 참는다’ 민주당 = 민주당은 역시 호남의 정신적 지주인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화갑 대표는 열린당 정동영 의장이 지금의 경제 위기를 김대중 정부 때 발생한 ‘카드대란’ 때문이라고 진단하자 “현재의 어떤 문제가 단군 때 벌어진 일이라고 가만히 두겠느냐”며 언성을 높였다. 정 의장이 현재의 경제 위기를 김 전 대통령의 탓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에 저질러진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 문제를 해결할 책임은 현직 대통령에게 있다”며 “해결하지 못했다면 대통령답지 못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IMF사태는 한나라당 집권 때 벌어졌지만 민주당이 다음 정권을 잡은 후 극복하지 않았느냐”며 “역설적으로 그런 과제를 한나라당이 줬기 때문에 IMF를 최단기간에 해결했다는 업적을 낳은 것”이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