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신문 12일자 여론면에 김영명 한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기고한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최근 독도 문제를 둘러싸고 우리나라 우익 인사들의 정체가 분명해졌다. 온국민이 일본의 도발행위에 분노할 때 이들은 일본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대표적인 수구 인사로 인정되는 조갑제씨는 일본과 적대시하는 것은 국가적 자살 행위라고 했고, ‘뉴라이트’ 지성을 대변한다는 안병직 뉴라이트재단 이사장은 ‘독도는 가만있으면 우리 땅인데 왜 일본과 말썽을 피우느냐’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이들은 사실 독도가 우리 땅이든 일본 땅이든 별 상관이 없고 더 중요한 것은 일본과의 관계를 좋게 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대표적인 일본 우익 신문인 '산케이'가 한국의 우익과 잘 교섭하면 일본에 유리해질 것이라고 주장하는 시론까지 실었겠는가? 자주외교를 천명한 노무현 정부는 실제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다가 일본이 도발해 오니 비교적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잘한 일이다. 오히려 모자란다고 비판하는 여론이 더 많은 듯도 싶은데, 우리 우익이라는 사람들은 도대체 왜 이럴까?

    원래 우익이란 자기 나라, 자기 겨레의 위대성을 내세우고 남에게 배타적이며 심지어 힘이 있으면 다른 나라 침략도 일삼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일본의 우익은 지극히 정상적인 우익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우익은 어떤가? 주권 수호를 위해 독도 경비대를 강화하자고 목청을 높이거나, 대마도(쓰시마)가 우리 것이라고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거나, 외국이 침략해 올 때 목숨 걸고 싸운 적이 있는가? 적어도 엘리트층에 든다는 사람 중에는 그런 우익이 한 사람도 없는 것 같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정확하게 거꾸로다. 안병직 교수는 일제 때의 근대화가 이후 한국 경제성장의 토대가 되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선도자다. 그 제자인 이영훈 교수는 군대위안부를 강제로 끌어갔다는 증거를 어느 (일본) 학자가 제시했느냐고 열을 올렸다. 식민지 시대에 경제 성장이 있었던 건 사실이고, 군대위안부가 모두 강제로 끌려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점을 ‘인정’하는 것과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그런 주장을 사명처럼 생각하고 있을까?

    한국의 우익이나 보수가 지닌 가장 중요한 가치나 노선은 사회경제 노선이나 외교 노선이나 그런 구체적인 것이 아니라, 그냥 ‘힘을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자기가 이미 가진 힘, 소위 기득권을 지키는 것이다. 그들은 안의 힘을 지키고자 밖의 힘에 기댄다. 이렇게 보면 그들이 보이는 모든 행동들이 이해된다.

    한국의 보수우익이 나라의 자주나 주권 수호를 위해 노력하거나 투쟁한 적이 있는가? 없다. 오히려 반대로 밖의 힘을 빌려 안의 민주화 투쟁을 억압해 왔다. 언제나 입을 열면 한-미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거나 일본과의 관계를 잘해야 한다거나 하는 말뿐이었다. 친일하던 사람들이 지배국이 바뀌자 친미로 재빨리 돌아섰을 뿐이다. 그러니 지금의 한국 우익들에게는 친일의 피가 짙게 흐르고 있다. 독도 문제에 대한 그들의 태도가 명백한 증거 중 하나다.

    또다른 우익의 대표격인 복거일씨는 한국어를 없애고 영어로 이를 대체하자고 했다. 이 또한 바깥 힘에 대한 무분별한 추종의 좋은 보기다. 한국의 우익이 진정으로 우익이기를 원한다면 이런 뼈에 사무친 사대주의를 극복하고 다른 나라의 여느 우익과 비슷한 생각과 행동을 보이기 바란다. 나라 주권과 자주성을 헌신짝처럼 여기고 사대주의를 맹신하는 한국의 우익이 정신 차려야 이 나라가 제대로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