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7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문창극 주필이 쓴 '그들도 재산이 늘었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고위 공직자들의 평균재산은 10억원 정도이고 그들 중 26%는 1년 동안 재산을 1억원이나 늘린 것으로 집계됐다. 서민들에게는 엄청나게 많은 재산이며 수입이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면 정부 고위직에 올라가려면 적어도 20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하고 그들이 우리 사회의 엘리트들이라는 점을 참작한다면 그들의 재산이 이 정도라 하여 "서민들은 허탈하다"는 식으로만 나갈 수는 없다. 어느 사회든 엘리트는 그만한 대우를 받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우수한 사람들이 공직으로 나서려 할 것이다. 공직자니까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희생만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들도 자녀를 교육시켜야 하고 노후도 준비해야 한다. 그러니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증식하지 않은 한 재산이 많다고 비난할 일은 못 된다. 지금같이 '누구 재산은 얼마'식으로 줄을 세우는 것이 제도의 본뜻은 아니었다. 자칫하다가는 공직자에 대한 불신과 잘못된 평등주의만 확산시킬 위험이 크다. 그런 점에서 지금 같은 방식의 재산공개는 문제가 있다.

    그런 중에 특별히 눈길이 가는 곳은 정치인들의 재산변동이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사람들이 정치를 하는 경향으로 보면 정치인들의 재산이 많은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현정권의 사람들은 다르다. 과거 운동권이나 재야에 있었기 때문에 재산을 모을 형편이 못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도 정부나 국회에 들어와 최소한 몇 천만원씩은 재산이 늘었다. 나는 이들의 재산이 늘어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들도 월급을 받고 살아 보니 돈이 모인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몇 년 가면 그들도 재산가가 될 것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가진 자에 대해 품었던 막연한 반감도 없어졌으면 좋겠다.

    문제는 자신들의 재산은 늘어났는데도 입에서는 언제나 가진 자들에 대한 공격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우리 사회가 '가진 자 20%, 못 가진 자 80%'로 나뉘어 있는 양극화 사회라며 그 책임을 20%에게 떠넘기고 있다. 우리나라 가구당 빚이 평균 3000만원이니 한 해에 몇 천만원의 재산이 늘어났다면 분명히 이들도 20% 안에 들었을 것이다. 자신도 20% 안에 있으면서 '잘사는 20%가 문제'라고 말하니 결국은 '나는 빼고' 다른 사람들이 문제라는 말밖에는 안 된다.

    정치인의 노선과 재산의 관계는 참으로 묘하다. 특히 부자 정치인들이 가난한 사람을 위해 앞장선다고 할 때 정말 그럴 수 있을까하는 의문도 생긴다. 미 공화당은 부자 정당이라니까 그렇다 치고 진보적인 민주당에도 부자들이 몰려 있다. 루스벨트, 록펠러, 케네디, 고어 등 모두가 엄청난 부자들이다. 지난 대선 때 민주당의 케리 후보도 수억 달러의 재산가다. 그는 500만 달러가 넘는 저택만 네 채이고 호화 요트까지 가진 인물이다. 개인생활은 최고급으로 하면서 도시빈민 근로자를 대변한다니 어찌 보면 모순이다. 몸은 부자이고 마음만 가난한 사람들일까. 그런 점에서 무슨 구호를 외치든 정치의 귀족주의 또는 엘리트주의는 불가피한 것인지 모른다. 그렇다고 "재산을 다 팔아 나눠준 뒤에 정치를 하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개인재산이라는 게 팔아 보아야 한계가 있다. 이 정권 담당자들에게도 "양극화를 걱정한다면 당신들의 늘어난 재산부터 팔아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올바른 방향의 정책을 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부자 정치인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듯이 부자가 아니면서 부자 정당을 지지할 수도 있다. 미 공화당원들 중에 이런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자신도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는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정부의 보조금 타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스스로 독립해 생활하려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이 많기 때문에 공화당의 세력이 커지는 것이다.

    정치인들을 단순히 재산규모로만 판단할 수는 없다. 그의 재산이 어떻든 그의 주장의 진정성이 더 중요하다. 가난한 자를 대변한다면서 가난한 자의 이름을 팔아 자신의 안락이나 권력을 늘린다면 이는 죄악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 말대로 "선거는 선수들끼리 국민을 속이는 게임"에 불과한 짓일 것이다. 양극화의 주장이 그런 죄악을 저지르는 일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