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7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정치부 박두식 정당팀장이 쓴 '여당의 벼랑 끝 심리'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요즘 열린우리당 내부의 위기감은, 밖에서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어느 자리에서든 자연스럽게 “이대로 가면 망한다”는 말이 오가곤 한다. 한 발만 더 밀리면 벼랑 끝으로 떨어진다는 식의 위기감이 여당 전체에 번져 있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말하는 위기는 국정(國政)을 염두에 둔 말은 아니다. 그것은 수(數)의 위기다. 다름 아닌 여론조사상의 수치들이다. 지금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은 바닥이다. 여당이 더 심각하게 보는 것은 자신들의 대선후보 모두를 합쳐도 10%의 지지율에 못 미치는 상황이다. 이대로는 5월 지방선거는 물론, 2007년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견적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이미 선거 패배가 낯설지 않다. 2004년 4월 총선 이후, 각종 선거에서 연패했다. 여당이 말하는 위기는, 잇단 선거 패배가 결국 권력을 내놓게 되는 상황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출발한다.

    이에 대한 여권(與圈)의 해법은 ‘죽기 아니면 살기’ 식 대응이다. 얼마 전 한 중진 의원은 사석에서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매한가지라는 심정”이라고 했다. 재집권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라는 얘기다. 이를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5월 지방선거다. 여당에선 벌써부터 5월 지방선거에서 지면, “당이 존립하기 힘들 것”이란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여당 입장에서 5월 선거는 사활을 건 싸움인 셈이다.

    여기서 원칙을 따지고, 비판 여론에 귀기울여야 한다는 것은 여당 사람들에겐 한가한 얘기로 들릴 뿐이다. 현직 장관들의 지방선거 후보 차출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여당 관계자들의 속내는 “어쩔 수 없지 않으냐”, “그 정도 비판은 감수하겠다”는 쪽에 가깝다. 고건 전 총리나, 민주당과의 연대 문제도 그렇다. 열린우리당은 현 집권측이 ‘정치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2003년 가을 민주당을 뛰쳐나와 만든 정당이다. 당시 분위기는 다시는 서로 안 볼 것처럼 살벌했다. 그러나 불과 2년 3개월여 만에 열린우리당에선 민주당과의 선거 연대 문제가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떠오른 상태다. “정권 재창출보다 더 중요한 개혁은 없다”는 게 변신의 논리다.

    그렇다고 해서 열린우리당이 경쟁자인 한나라당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다. 여당 관계자들은 “저쪽이 잘한 게 아니라 우리가 못해서 자초한 위기”라고 한다. 제대로 된 정치 드라마나 이벤트만 만들 수 있다면 한나라당은 언제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정치에 관한 한 자신들이 한 수 위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당이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까지 몰린 까닭은 국정의 위기에서 비롯됐다. 열린우리당 스스로 ‘여당답지 않은 여당’ ‘무능 교만 무기력’ 때문에 위기를 맞았다고 말하고 있다. 정치 이벤트나 화장(化粧)바꾸기 같은 기교로 돌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득한 지금의 여당은 찬밥, 더운밥을 가릴 여유가 없어 보인다.

    최근 여당이 보여주는 5월 지방선거 올인(다 걸기)은 맛보기에 불과하다. 이들은 재집권의 전망이 보이지 않을 경우, 2007년 대선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판을 뒤흔들겠다고 할 가능성도 있다. 이들에겐 그렇게 할 수 있는 권력의 힘이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공멸할지 모른다는 위기 의식까지 있다. 여당의 벼랑 끝 심리는 점점 위험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