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4일자에 실린 사설 <감사원이 정권의 '청부 감사'하는 곳인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가대하며 소개합니다.

    감사원이 11월에 40개 지자체의 건축 인·허가와 토지형질 변경 등을 감사하면서 서울시와 경기도를 포함하기로 했다. 감사원은 6월에 퇴임할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지사가 재임 중에 한 일을 훑어볼 계획이다. 주된 감사 대상은 이 시장이 성과로 꼽는 청계천·강북 뉴타운개발 사업과 손 지사가 내세우는 파주 산업단지 조성 등의 지역개발사업이 될 것이라고 한다. 행자부가 오는 9월 서울시를 감사하겠다고 했다가 ‘야 대선주자 표적감사’ 시비가 일자 “청계천사업은 보지 않겠다”고 물러난 게 불과 며칠 전 일이다. 이번엔 감사원이 행자부의 대타로 나선 모양이다.

    서울시·경기도 감사가 감사원의 법적 직무라고는 하지만 이를 결정한 시기와 과정이 영 석연치 않다. 요즘 열린우리당은 입만 열면 “한나라당의 부패한 지방권력을 교체하자”고 주장한다. 열린우리당은 지자체에 대해 국정조사만이 아니라 검찰 수사까지 요구하고 있다. 여당의 이 같은 대야 공세 디딤돌은 감사원이 지난 9일 발표한, 야당 소속 단체장들의 비리만을 모아놓은 듯한 ‘지자체 종합감사결과’다.

    감사원 계획대로 감사가 11월에 이뤄지면 결과는 내년 초에 나온다. 그러면 그 결과는 자동적으로 내년 상반기의 야당 대선후보 경선이나 내년 12월 대선에 직접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감사원은 이런 일정이 뻔히 내다보이는데도 그때가서 야당 대선주자들과 그 주변을 훑고 더듬어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더구나 감사원은 지난 10일 ‘11월 청계천사업 감사 예정’ 보도가 나오자 공식자료를 내고 “금년 중 청계천사업 등 서울시의 대형사업을 감사할 계획은 전혀 없다”고 했었다. 그 말을 불과 10여 일 만에 뒤집었다. 그것도 여당이 “지방권력 교체”를 선거구호라도 되는 듯 배경음악으로 깔고 있는 도중에 말이다. 이걸 ‘공교롭게도’나 ‘우연의 일치’라는 말로 덮을 수 있을까.

    감사원은 지난달 사학법 개정에 대해 사학이 강하게 반발하자 갑자기 사학재단을 전면 감사하겠다고 나서 정권의 청부감사를 떠맡은 감사원이란 논란을 불러왔다. 그런 감사원이 다시 대선 길목에서 야당 대선 주자를 감사하겠다고 나섰다. 이러고도 감사원이 어떻게 얼굴을 들고 헌법상 독립기관의 시늉을 낼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