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8일자 오피니언면 '포럼'란에 경북대 윤순갑 교수(정치학 전공)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올 정기국회가 내일로 100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대연정과 도청정국 속에서 시작된 정기국회였지만, ‘몸싸움 활극’을 연 출했던 지난해의 정기국회 때와는 다르게 제법 품격(?)을 유지했었다는 것이 다소 이르긴 하지만 시중의 대체적인 평가이다.

    올 정기국회가 이처럼 순항한 데는 ‘여소야대’로 변화된 정치 지형 속에서 어느 일방의 독주도 허용하지 않는 역학구도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4·3 0 재보선 이후 과반의석의 붕괴로 무리한 입법 추진이나 원내 운영을 자제할 수밖에 없었고, 제1야당인 한나라당 역시 수권정당 으로서 ‘무조건 반대’로만 임할 수 없었던 것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번 정기국회는 이처럼 전례없이 격조높은(?) 국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처리한 법안은 고작 76건이고 남아있는 법안이 무려 2300건에 달하는 무능국회였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11월 들어 당 지지율 40%대의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최근 한나라당의 이상한 양태이다. 지지율 20%대의 열린우리당을 더블스코어로 앞서고 있는 현재의 한나라당에 대해 야당인지 여당인지 묻고 싶다.

    여전히 원내 제1당을 고수하고 있기는 하지만 4·30 재보선과 10 ·26 재선거를 거치면서 여권에 등을 돌린 민심의 현주소에 움찔하고 있는 열린우리당은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지금의 한나라당은 이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집권당(?)의 흉내를 내기 전에 현재를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대화와 타협을 추구하는 야당의 역할에 보다 충실해야 하지 않는가. 

    이미 지적했듯이, 이번 정기국회는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 어느 쪽도 단독으로 국회를 끌고 갈 수 없는 역학구도 속에서 진행됐다. 이는 한나라당 쪽에서도 노력만 했다면 얼마든지 자당(自黨)의 정책과 비전을 국회를 통해서 펼쳐 보일 수 있었다는 얘기이다. 이러한 환경은 한나라당의 월등한 정당 지지율로도 확인이 가능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한나라당이 이번 정기국회 쟁점법안이었던 ‘금융산업 구조조정에 관한 법’ ‘사립학교법’ ‘비정규직 관련 법’ 등에서 여권이 던진 이슈를 쫓아다니기에 바빴으며, 최근의 ‘검·경 수사권 조정’을 핵심으로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뚜렷한 당의 입장을 유보한 채 침묵으로 일관하는 이유를 묻고 싶다.

    또,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됐거나 다뤄졌던 이슈 가운데 한나라 당의 출품 품목을 보면서 한나라당이 정녕 정책정당인지 묻고 싶다. 그런 가운데서 시중의 이목을 끌었던 것이 내년도 ‘예산삭 감안’과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과세 대상’이다. 

    당초 한나라당은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에서 8조9000억원을 삭감하겠다고 공언했다가 7조8000억원, 4조원으로 후퇴하는 모습에 당 안팎으로부터 비판이 쏟아지자 다시 9조원대의 원안으로 회귀하는 촌극(寸劇)을 연출했다. 종부세 과세 대상에 대해서도 정부 ·여당안을 수용하는 태도에서 다시 “9억원에서 6억원으로 조정하면 수용 가능하다”고 입장을 선회하는가 하면, 급기야는 감세안을 여당의 종부세 처리방안과 맞바꾸는 이른바 ‘빅딜’을 제안했다가 여당의 반발을 사는 등 고소(苦笑)를 금치 못하게 했다 .

    그간의 양태로 봐서 지금의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권의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40%대의 지지율에 도취된 듯 하다. 현 정권이 추진해 온 사이비 개혁정책에서 기인된 정신적·육체적 피로 때문에 심신 탈진 상태에 빠져 있는 국민들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은 이것을 치유할 구체적 정책과 비전이다. 한나라당은 여기에 진실되게 응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한나라당에 구태와 수구의 이미지를 개혁적 보수로 덧칠하는 행위를 언제 멈출 것인지를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