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일자 오피니언면 ‘중앙시평’에 윤평중 한신대 교수(사회철학 전공)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 여러분의 사색과 토론을 권하며 소개합니다]

     

      

     

    '황우석교수 사태'는 한국 사회의 거울이다.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황 교수팀의 윤리위반 여부를 비롯한 논쟁점들은 국가생명윤리위원회가 공식 조사에 들어갔기 때문에 금명간 정돈의 계기를 맞을 것이다.

     

     

    정작 흥미로운 것은 황 교수팀의 연구윤리 문제로 시작됐던 작은 논란이 순식간에 국익과 민족주의, 그리고 언론자유의 문제로까지 커졌다는 사실에 있다. 황 교수 사태가 엄청난 폭발성을 가졌던 핵심에는 최근 몇 년간 세계 생명과학계의 스타로 떠오름으로써 '국민적 영웅'이 된 황 교수를 우리나라 방송인 MBC PD수첩이 '폄훼'한 데 대한 '대중의 분노'가 자리하고 있다.

     

     

    외국 생명공학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던 황 교수팀의 연구 성과는 우리의 자존심을 한껏 고양시켰다. 배아줄기세포연구 분야에서 세계에서 제일 앞서감으로써 노벨상을 '예약'했다는 평가도 대중을 흥분시켰다. 난치병 치료의 서광이 열렸고 천문학적 부가가치가 예상된다는 기대감이 언론과 정부에 의해 빠르게 확대 재생산된 것이다.

     

     

    그러나 황 교수팀의 전문적 연구가 과학의 경계를 넘어 급속히 정치화되고 문화적 상징의 차원으로 비약한 저간의 사정도 들여다보아야 한다. 황우석신드롬에는 그의 팀이 이룩한 객관적 연구 성과 외에, 정치와 언론이 대중의 감수성을 자극해 탄생한 합작품이었던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한국적 대중사회가 과학영웅으로서의 황 교수를 애국심과 인도주의의 코드에 입각해 생산하고 소비한 것이다. 이 신드롬에 긍정적 측면도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지만, 동시에 이는 한국인의 성감대가 최고주의와 일등주의에 고착돼 있다는 사실도 입증한다.

     

     

    우리는 세계 최초, 동양 최대 등의 상징에 환호한다. 노벨상에 대한 전 국민적 기대가 집단적 비원(悲願)의 지경에 있는 것도 비슷한 예다. 지난번 노벨 문학상이 만약 한국 작가에게 주어졌다면 그 문인은 즉각 국민적 예술영웅으로 승격됐을 것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최고와 일등을 염원하면서 강렬한 인정욕구에 불타 있는 것일까.

     

     

    그 답은 고난에 찬 한국 현대사에 있다. 망국과 식민지, 분단과 전쟁의 폐허로부터 일어나 반세기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했지만 약소국 콤플렉스로부터 아직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크고 강한 것, 최초와 최고에 대한 집착은 언뜻 보면 우월의식인 것 같지만 기실 열등감의 현현에 지나지 않는다.

     

     

    난치병 환자들의 간절한 희망과 한국 과학자의 세계적 성취, 그리고 임박한 것으로 묘사된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그 누가 부정하고 비판할 수 있겠는가. 애국심에 호소하고 경제성장을 담보하는 데다 보편적 인류애의 요소까지 갖추었으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었다. MBC 보도에 대한 대중의 극렬한 반감은 이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바로 이 부분들이황우석신드롬이 감추고 있는 우리 사회의 아픈 진실이기도 하다. 이미 드러난 사실을 맹목적 민족주의가 덮을 수도 없으며, 경제효과를 동반한 인도주의적 치료 가능성도 지금 단계에서는 매우 불확실할 뿐이기 때문이다.

     

     

    엄청난 논란이 보여주는 것처럼 황 교수팀의 연구가 과연 축복이 될지, 재앙이 될지는 아직 불확정적이다. 이는 부인하기 어려운 객관적 사실이다. 그러나 위대한 과학의 개척자들이 전인미답의 영역을 헤쳐나감으로써 인류에 크게 기여한 것도 맞다.

     

     

    우리 모두는 이미 대중이면서 또한 공중이다. 유행 추종적이며 감성적인 대중도 균형감각과 성찰적 주체성을 갖는 공중으로 상승해 갈 수 있다. 차츰 황 교수 사태의 복합성을 인지해 가는 공론화의 과정이 이를 입증한다. 대중과 공중 사이의 긴장 관계는 우리 사회의 역동성과 건강성의 징표다. 황우석신드롬은 그러한 대중과 공중의 건강한 긴장 관계 속에서만 비로소 축복으로 부활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