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건국사 (74)
인천 상륙에 성공한 맥아더는 연합군에 명령을 내린다. “즉각 서울을 점령하고 남으로 전진을 계속하라” 제10군단은 경인가도를 동진(東進)하여 수도 서울을 조속히 탈환해야 하며, 적의 보급선을 차단하고, 낙동강 전선에서 북진하는 워커 사령관의 제8군과 합류하도록
이승만 건국사 (73)
맥아더는 약속을 지켰다. 이승만과의 약속을!“대한민국이 공격을 받는다면 미국 캘리포니아가 공격받은 것처럼 달려와 지켜주겠다“ 맥아더는 이 약속을 두 번이나 했다.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건국선포식에 참석하여 ’안보‘를 걱정하는 73세 노대통령 이승만을
이승만 건국사 (72)
“우리는 전 세계 우방들에게 분명히 밝혀두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어떤 나라든지 이 전쟁을 중재하기 위한 계획이나 제안을 내놓기 원할 경우, 반드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한국정부에 제시해야 된다는 점이다...(중략)...우리의 우방들이 이 전쟁에 참여해서 우
이승만 건국사 (71)
“38선이 사라졌다!” 이승만은 무릎을 쳤다.해방순간 난데없이 한반도의 허리를 끊은 38선, 미국이 긋고 소련이 봉쇄한 국경 아닌 국경! 이승만은 해방3년간 38선을 해소하는 방안에 골몰, 이런저런 대책을 내놓았다. 소련의 공산화 ‘꼼수’ 미-소공동위원회 협상이 예상대
이승만 건국사 (70)
1950년 6월25일 일요일 아침, 이승만 대통령은 경복궁 경회루로 나갔다. 비가 올 듯 잔뜩 흐린 하늘 아래 일렁이는 연못 물결에 낚시대를 드리운 그는 눈을 감는다. 이승만의 낚시질은 반은 명상, 반은 기도였다. “주여, 이 나라를 구하소서. 적의 공습이 임
이승만 건국사 (69)
6.25는 ‘한국전쟁’이 아니다. 한반도에서 전쟁했다고 다 ‘한국전쟁’인가. 일본이 침략한 청일전쟁도 러일전쟁도 한반도에서 싸웠지만 ‘한국전쟁’이 아니듯이, 소련이 침략한 6.25가 한반도에서 전쟁을 벌였다고 ‘한국전쟁’일 수가 없다. 그것은 처음부터
이승만 건국사 (68)
스탈린과 김일성이 ‘6.25 침략’을 감행하기 꼭 1년 전, 1949년 6월26일 경교장에서 백범 김구(白凡 金九)가 암살된다.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하고 건국이후 건국을 부정하며 죽기직전까지 ‘남북협상’을 외치던 김구는 ‘임정집권’이란 집념을 버리지 못한 채 그것 때문
다큐 두 번째 이야기 <이승만의 독립외교 33년> 개봉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독립운동 발자취를 연구해 특별 제작한 다큐멘터리 '이승만의 독립외교 33년'이 12일 개봉했다. 이는 지난해 9월 개봉한 '이승만의 하와이 30년'에 이어 두 번째 작품이다. 건국이념보급회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
이승만 건국사 (67)
어떻게 다시 세운 나라인가. 고종의 ‘매국’(賣國)부터 이승만의 ‘복국’(復國)까지 참 멀고도 먼 여정이다. 그 나라는 29세 이승만이 옥중에서 쓴 책 [독립정신]에서 설계한 그대로 치열한 독립운동을 하여 마침내 반세기 만에 젊은 날의 꿈을 실현한 자유민주공화국이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