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 선정 연극…"영웅 아닌 인간적 모습 부각"
  • ▲ 연극 '언덕의 바리' 쇼케이스 공연 장면.ⓒ한국문화예술위원회
    ▲ 연극 '언덕의 바리' 쇼케이스 공연 장면.ⓒ한국문화예술위원회
    "둘을 죽인다고 독립이 되냐구? 모르지. 그치만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2015년 개봉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암살'에 나오는 안옥윤(전지현)의 대사다. '전지현이 연기한 안옥윤의 실제 모델은 남자현(1872~1933)으로, '암살'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윤희순(1860~1935), 조신성(1873~1953), 김마리아(1892~1944), 정정화(1900~1991)…암울했던 시절을 지나 광복을 꿈꾸며 자신을 희생했던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있었지만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잘 알지 못한다. 일제강점기 여성들은 무장투쟁, 계몽운동, 자금지원, 만세운동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역사적 시련 속에서 외면받아온 두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이 무대 위에 펼쳐진다. 임신한 몸으로 평안남도 일본 경찰국 청사에 폭탄을 투척한 안경신(1888~미상), 독립운동을 하다 북한에서 미국 간첩 협의로 숙청당한 앨리스 현(한국 이름 현미옥,1903~1956)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6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개막한 연극 '언덕의 바리'는 '여자폭탄범 안경신'의 드러나지 않은 삶에 주목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3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 선정작으로, 우리나라 '바리데기' 신화와 안경신의 생애를 꿈과 현실을 오가는 여정으로 재구성했다.
  • ▲ 연극 '언덕의 바리' 김정 연출과 연극 '아들에게'의 김수희 연출.ⓒ한국문화예술위원회
    ▲ 연극 '언덕의 바리' 김정 연출과 연극 '아들에게'의 김수희 연출.ⓒ한국문화예술위원회
    평남 대동에서 태어난 안경신은 1920년 8월 3일 밤 평남도청과 평양부청 등에 폭탄을 투척하여 평남도청 제3부인 평남경찰부 건물을 파괴했다. 당시 임신한 상태임에도 거사를 주도했으며, 출산 직후인 1921년 3월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출소 이후의 행방은 묘연하며,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언덕의 바리'는 고연옥 작가와 젊은 연극인 집단 '프로젝트 내친김에' 김정 연출이 '처의 감각', '손님들', '인간이든 신이든'에 이어 네 번째 호흡을 맞춘 작업으로, 극단 동이 새롭게 참여했다. 1999년 창단한 극단 동은 배우의 신체움직임을 중심언어로 사용하는 작품을 공연해왔다.

    김정 연출은 "독립운동가를 다루는 것이 지금 시대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고민을 많이 했다"며 "그들의 정의로운 모습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이름 없이 사라진 독립운동가도 삶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안경신은 적국에 대한 타격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장님이 된 아들과 함께 세상 속으로 사라진 인물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역사 속 박제된 이미지기 아니라 지금 우리들의 할머니, 노인의 모습으로 한국 사회에 녹아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밝혔다.
  • ▲ 연극 '아들에게(부제 : 미옥 앨리스 현)' 이미지.ⓒ한국문화예술위원회
    ▲ 연극 '아들에게(부제 : 미옥 앨리스 현)' 이미지.ⓒ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연극 '아들에게(부제 : 미옥 앨리스 현)'가 오는 13일부터 21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독립운동가 현순(1880~1986) 목사의 맏딸이자 하와이 출생 제1호 한국인으로, 중국·러시아·미국을 오가며 독립운동과 공산주의 운동을 했던 현미옥(앨리스 현)의 이야기를 다룬다. 

    김수희 연출은 "초고는 '미옥, 앨리스 현'이었다. 자신의 길을 가길 원했고 이상을 쫓아 월북한 전문직의 여성이었지만 가정과 사랑에 있어서는 늘 서툴렀고 실수투성이였던 그녀가 자신을 항변한다면 누구에게 가장 먼저 하고 싶을까 생각하며 '아들에게'라고 고쳐 짓게 됐다"고 설명했다.

    앨리스 현은 '한국판 마타하리', 김일성의 정적인 '박헌영의 첫 애인'으로 불리며 소설의 통속적 여주인공 이미지로 소비돼 왔다. 6·25 당시 중위 신분으로 맥아더 극동사령관 비서로 근무했으며 두 번의 임신과 출산, 이혼 과정을 겪었다. 박헌영과 월북한 뒤 미국 간첩이라는 혐의를 받고 북한에서 총살당하는 비운을 맞았다.

    작품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현미옥을 박기자라 인물이 인터뷰를 하는 형태로 극을 이끌어나간다. 박기자의 눈을 통해 들여다보는 미옥의 삶은 인물이 처한 시대뿐 아니라 세대와 성별을 넘어 다양한 이들과의 이해와 공존을 생각해 보게 만든다. 

    김 연출은 "국가보안법 제도 아래 아직도 남북 분단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상황에서 미국 시민권자로 사회주의에 심취해 독립운동을 하다 북한을 택한 사실이 매력적이었다"며 "영웅적인 이념이나 가치관을 보여주기 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협력하고 연대하면서 조금씩 성장해 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전했다.

    '2023 창작산실 올해의신작'은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홈페이지, 인터파크 등에서 예매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