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강경론자'이자 '북핵통'…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 인터뷰"美, 한국 핵무장 용인 못해… 한국경제, 제재로 엄청난 희생 따라""미 핵잠수함 기항빈도·체류기간 늘리면 전략핵 '상시 배치' 효과""방위비, 일본 수준으로 높이는 대신 주한미군 무기 보유량 늘려야"
  • ▲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이 25일 경기도 성남 세종연구소에서 뉴데일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이 25일 경기도 성남 세종연구소에서 뉴데일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핵잠수함이 기항하는 빈도와 체류 기간을 늘려나간다면 미국 전략핵무기가 상시 배치된 것과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성진 기자
    6자회담 차석대표·외교부 북핵담당대사 등을 역임한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북핵통'이자 '대북 강경론자'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 6월 1일 이 이사장이 세종연구소 이사장으로 취임하자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그동안 세종연구소는 '친북'(親北)적이고 '좌경화'(左傾化) 됐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40년 전 세종연구소가 창설될 당시 목표로 했던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외교안보연구소'로 거듭나려면 개혁은 필수다. 2010년대부터 급격히 악화한 재정상황은 '재정자립'이라는 중차대한 숙제를 남겼다. 뼈를 깎는 고통스러운 개혁이라는 무거운 짐을 이 이사장이 지게 된 것이다.

    이 이사장은 25일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핵무장론, 한미원자력협정 조기 개정, '제2의 쿠바 미사일 위기'를 막을 방안,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상향을 통한 주한미군 화력의 대폭 강화, 중러북(북중러) 밀착 강화 등에 대한 의견을 가감 없이 밝혔다.

    대북 강경론자인 이 이사장은 국내에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핵무장론에 대해선 반대한다. 현실성이 없고 국익에도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기자가 만난 전직 국가정보원(국정원) 직원들에 따르면, 핵무장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북 강경파와 친북좌파 등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전자는 급속도로 고조되는 북핵위협 속에서 자체 핵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반면에, 후자는 자체 핵무장을 향후 주한미군 철수(撤收)를 이끌어내고 한미동맹을 '이간'(離間)하기 위한 포석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워싱턴선언'에 따라 창설된 '한미핵협의그룹'(NCG)은 미국 핵우산의 신뢰성을 높이는 데는 효과가 있으나, 핵무기 사용 결정은 어디까지나 미국이 내리는 것인 만큼 한계성이 있고 충분한 억제력이 될 수는 없다"는 이 이사장은 "핵잠수함이 기항하는 빈도와 체류 기간을 늘려나간다면 미국 전략핵무기가 상시 배치된 것과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제언했다.

    다음은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 ▲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이 25일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이 25일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한미 원자력협정'을 '미일 원자력협정' 수준으로 개정하려면 1980년대의 일본이 그랬듯이 한국이 핵무장을 추구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확신을 장기간에 걸쳐 미국에 불어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성진 기자
    - '핵무장론자' 혹은 '핵자강론자'들은 중국의 위협 때문에 언젠가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을 지지하는, 즉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의 자체 핵무장을 지지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핵무장론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한국이 경우에 따라 핵무장을 추진해야 할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핵무장은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조치에 따른 한국 기업과 경제의 엄청난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사안이다. 미국이 한국의 안보나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의 핵무장을 용인할지도 모른다는 주장은 대단히 자기중심적이고 편의주의적인 가정이다.

    이는 한국의 시각에서 볼 때 그럴싸한 가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나, 전 세계의 핵확산에 미칠 심각한 영향을 염두에 둬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가정이다. 미국의 특정 정치인이나 학자가 그런 개인적 의견을 말할 수는 있을 것이나 그것이 미국 정부의 정책으로 반영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만일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을 용인한다면 사우디, 이집트, 튀르키예(터키), 이란,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의 핵무장도 용인해야 할 것이며, 이는 미국이 감당할 수 없는 재앙적 상황이기 때문이다."

    - 2035년에 만료되는 '한미 원자력협정'을 '미일 원자력협정' 수준으로 조기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핵자강론의 연장선상에서 나오고 있다.

    "'핵무장에 한 걸음 다가서기 위해 일본 수준의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 용인을 미국으로부터 받아내야 한다'는 논리는 자가당착적인 모순의 논리다. 한국이 독자핵무장의 꿈을 티끌만큼이라도 품고 있는 한 미국이 그것을 용인할 가능성은 없다. 그것이 가능해지려면 1980년대의 일본이 그랬듯이 한국이 핵무장을 추구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확신을 장기간에 걸쳐 미국에 불어넣어야 한다."

    - 핵문제를 미국에만 의존할 경우에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터키(튀르키예)가 겪었던 희생을 반복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시 미국은 소련이 쿠바에 설치한 미사일 기지를 철수하면 쿠바를 무력으로 침공하지 않을 것이고터키와 이탈리아에 배치한 주피터 미사일도 철수하겠다고 약속했다. 터키는 이 주피터 미사일 철수가 완료된 사실을 소련대사관의 정보 유출로 그다음 해에서야 알게 됐다.

    "핵무기는 기본적으로 방어와 위협을 위한 무기이며, 동반자살을 각오하지 않는 한 실제로 사용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한발의 핵무기라도 먼저 사용하면 보복 핵공격으로 가해국 또한 핵공격을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핵무기 사용을 수차 공언하면서도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것은 그러한 보복의 두려움 때문이다.

    북한이 1980년대부터 핵무기 개발에 열을 올린 이유는 한반도 전쟁 재발 시 핵위협을 통해 미군의 개입을 막으면서 재래식 무기로 한국군을 제압해 '적화통일'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한국이 북한을 압도할 만한 막대한 재래식 군사력과 대량보복 능력을 보유하면서 북한의 핵위협에 굴복하지 않는다면 북한이 대남 핵위협을 통해 얻을 것은 없다. 물론 한국이 미국과의 긴밀한 동맹관계와 핵우산을 유지하는 것은 기본적 전제조건이다."

    -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터키의 사례는 북핵 위기의 당사국인 한국이 미중 간 '빅딜'과정에서 배제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워싱턴선언’에 따라 창설된 '한미핵협의그룹'(NCG)이 핵위기 시 미국의 일방주의적 결정과정을 억제할 수 있는 기제로서 충분하다고 보는가?

    "NCG가 미국 핵우산의 신뢰성을 높이는 데는 효과가 있으나, 핵무기 사용 결정은 어디까지나 미국이 내리는 것인 만큼 한계성이 있고 충분한 억제력이 될 수는 없다. 그보다는 당시 한미 정상간에 합의된 미국 핵잠수함의 정례적 한국 기항 결정이 훨씬 핵억제력의 가시적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아마 북한도 NCG보다는 핵잠수함 기항을 더 두려워하고 있을 것으로 본다. 핵잠수함이 기항하는 빈도와 체류 기간을 늘려나간다면 미국 전략핵무기가 상시 배치된 것과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핵잠수함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을 전수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도 핵잠수함을 보유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한국의 핵잠수함 보유 필요성에 기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군사강국들이 핵잠수함을 보유하는 목적은 둘 중 하나다. 첫째는 대량의 핵무기를 적재하고 대양 깊은 곳에 장기간 숨어서 유사시 적국에 대한 핵공격 명령을 기다리는 해저 핵무기 저장소의 역할이고, 둘째는 대양이나 북극해 등에서 장기간 발각되지 않고 항행하면서 원거리 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목적이다. 미국, 러시아, 프랑스 등의 핵잠수함 용도는 전자의 것이고, 호주의 핵잠수함 보유 계획은 후자가 목적이다.

    한국은 그 어느 것도 해당 사항이 없다. 한국 해군이 남중국해나 인도양에서 중국 해군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몰라도, 비좁은 한반도 해역에서 핵잠수함을 운용하는 것은 북한을 폭격하기 위해 장거리 전략폭격기를 구입하는 것만큼이나 부적절한 선택으로 보인다. 수중에 장기 체류하면서 북한 잠수함을 감시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단지 원시적 수준의 북한 잠수함을 감시하기 위해 그 비싼 핵추진 잠수함을 보유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요즘은 디젤 잠수함도 한 달 동안 계속 잠행이 가능하므로 차라리 다량의 첨단 디젤 잠수함을 보유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 선택일 것이다."
  • ▲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이 25일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이 25일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방위비 분담금은 미국이 내야 할 돈을 우리가 분담하는 게 아니다"라며 "일본처럼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대부분 부담하되 주한미군의 화력을 대폭 증강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성진 기자
    - 그런데 미국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할 수도 있는데 윤석열 정부의 외교가 '바이든 일변도'로 흐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의 외교정책은 정권의 향배와 관계없이 상당한 수준의 외교적 동질성과 연속성을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미국 대선이 시작도 안 된 시점에 벌써부터 정책적 조정을 염두에 둘 필요는 없어 보인다. 가장 중요한 건 어느 당의 어느 후보가 당선되건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핵심 인맥을 파악하고 대화채널을 사전에 확보하는 일이다. 과거에도 한국 외교부는 그런 방식으로 미국 대선에 대비해 왔다.

    과거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대해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증액을 요구하고 주한미군 감축을 시도했던 사례가 있으나, 이는 당시 한국 문재인 정부의 친북·친중·반미 일변도 정책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설사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윤석열 정부의 한미동맹 중시 및 강화 정책에 충분히 만족하고 좋은 밀월관계를 열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안보 무임승차론'을 주장하며 한국에 대한 대대적 방위비 증액을 요구해온 트럼프가 재집권한다면 한미동맹에 대한 비판론이 불거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대비한 가상적인 얘기이기는 하나, 이젠 한국도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자 군사대국으로 성장한 만큼 일본처럼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거의 전액 부담하고 그 대신 주한미군의 화력을 대폭 증강하도록 요구하는 방식으로 발상의 대전환을 할 때가 됐다고 본다. 미일 주둔군지위협정에도 명시돼 있듯이 주일미군의 주된 주둔 목적은 일본의 방위가 아니라 유사시 주한미군에 대한 후방지원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1996년부터 건설비, 노무비, 공공요금을 포함한 주일미군 현지비용 전액(100%)을 심사를 거쳐 부담하고 있다.

    그러나 주한미군은 오직 한국의 방어를 위해 주둔하는 군대임에도 불구하고 국민과 한국 정부는 '방위비 분담금을 한 푼이라도 깎는 것이 애국'이라는 개도국 시대의 그릇된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은 100%, 우리는 약 50% 이하의 방위비 분담금을 부담했던 이유는 우리가 가난한 개도국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이 무려 27년 전부터 적용해 온 방위비 부담방식을 이젠 한국도 받아들일 때가 됐다. 설사 정부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가 내야 할 돈은 내야 한다. 정부의 용기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가 그런 용기를 발휘해 주기를 기대한다."

    -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 협정'의 영문 명칭은 '주한미군지위(SOFA)협정 제5조(시설과 구역 -경비와 유지)에 관한 특별 조치 협정'이다. 사실은 방위비가 아니라 경비와 유지비용이라는 지적이 있다.

    "미군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당연히 미국이 낸다. 원래 미국에 있어야 할 부대를 한국으로 이전 배치함으로써 추가되는 비용, 즉 추가 경비를 한국과 미국이 분담하는 것이 방위비 분담이다. 방위비 분담 대상은 주한미군 기지건설비, 한국 내 수송비용, 주한미군 기지에서 일하는 한국인의 인건비가 전부다. 공공요금은 방위비 분담 대상이 아니나 일본의 경우는 이것까지 모두 일본 정부가 부담하고 있다.

    과거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한미군 훈련 비용까지 한국이 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주한미군 훈련비용은 방위비 분담 대상이 아니다. 미군이 미국에 주둔한다고 해도 어차피 들어가는 비용이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의 월급과 무기 구입비, 훈련비용은 당연히 미국이 부담해야 한다."

    - 방위비(미군을 한국에 주둔시키는 데 따른 추가 경비) 부담을 일본 수준으로 높인다면 우리도 얻는 것이 확실해야 하지 않은가?

    "당연하다. 예를 들어 주한미군이 F-35 전투기나 아파치 헬기 등 우리에게 필요한 고가 무기들의 보유량을 늘리도록 요구하면 된다. 그러면 우리가 추가로 부담하는 방위비보다 오히려 무기구입에서 절감되는 비용이 더 클 수가 있다. 주한미군 전투병력은 3천 명밖에 안 되고 나머지는 대부분 행정병력이다. 주한미군 전투병력의 규모와 무장을 좀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협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방위비 분담금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미군시설 건설비다. 우리가 비용을 분담하다 보니 설계와 발주, 건설업체 선정까지 모두 미군 측이 한다. 방위비를 100% 부담하는 일본은 '턴키 방식'으로 한다. 즉, 미군이 어떤 시설이 필요하다고 요청하면 일본 정부는 그 시설의 타당성 여하를 검토하고, 일본 정부가 해당 시설을 지어주기로 결정하면 100% 완공한 뒤 미군에 넘겨준다. 한국이 '방위비'를 일본 수준으로 분담하면 용역과 건설사 등을 모두 한국 정부가 결정할 수 있게 된다."
  • ▲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25일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25일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거의 없다'는 생각에 옛날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그동안 중국이 대북 영향력을 가진 척했을 뿐"이라며 "중공의 불법적 국내정치 개입에 대한 철저한 감시와 더불어 지방선거권 폐지 등 제도적 개선이 조속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아울러 중국 공산당이 주도하는 정치공세와 가짜뉴스에 대한 국민 각자의 현명한 판단과 경계심이 중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서성진 기자

    - '중국이 러북 협력에 동참하면 한국은 주한미군의 대만 분쟁 개입에 동의할 것이라는 신호를 줘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다.

    "만일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우리 정부가 원하건 원치 않건 주한미군이 대만전쟁에 관여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거리상 주한미군이 직접 대만전쟁에 개입될 수는 없고, 주한 미국 공군과 아파치 부대 등 일부 지상 전투부대가 오키나와 주둔 미군으로 이동배치된 이후 주일미군의 일원으로 개입하게 될 전망이다. 한국 정부가 주한미군의 오키나와 이동배치에 필적할 만한 직접적 군사지원을 대만에 제공하지 않는 한 이를 막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것이 중러북 3각협력에 대한 견제수단이 될 수는 없다."

    - 북한의 대남 위협과 중국의 대만 위협이 동시에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있다. 미국이 대만에 파병한 틈을 타서 6.25 남침 당시와 마찬가지로 북한이 또다시 남침을 감행한다는 시나리오에 대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미군의 전력 분산을 위해 북한의 대남 군사행동을 부추길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중국에 대한 의구심과 경계심이 매우 강한 북한이 중국의 요구를 액면 그대로 수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설사 북한이 중국의 요구에 부응해 대남 군사행동을 취하더라도, 전면전이나 지상군의 직접적 충돌을 야기하지 않는 포격, 미사일 공격 등 제한적인 원격작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유엔 제재로 경제난, 식량난, 에너지난에 시달리는 북한이 대규모 군사적 행동을 감내할 여력이 없고, 중국이나 러시아가 북한에 군수지원을 제공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미사일 방어망의 대대적 확충과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대한 철저한 보복능력의 구비가 필요하다."

    - 최근 러시아와 북한이 급속히 밀착하고 있다. 러·북 군사협력이 중·러·북(북중러) 3각 공조로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큰 것으로 보인다.

    "중러북 삼각공조는 새로운 변수가 아니고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이는 냉전시대에 시작된 후, 냉전종식 이후로도 옐친 러시아 대통령 집권기를 제외하고 항상 유지돼 온 상수(常數)였다. 단지 사람들이 그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을 뿐이다. 중러북 공조는 북한 핵문제와 북핵 6자회담에서 항상 유지됐고, 유엔 안보리에서의 북핵문제 토의나 천안함사건 논의 때도 변함없이 유지됐다. 이는 최근의 한미일 3자 안보협력 강화로 초래된 부산물도 아니고 최근의 러북 군사협력으로 인해 새삼스럽게 생겨난 일도 아니다."

    - 일각에서는 러북 밀착으로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약화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나온다.

    "'중국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거의 없다'는 생각에 옛날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그동안 중국이 대북 영향력을 가진 척했을 뿐이다. 북한은 중국의 영향력을 배제하고자 늘 혈안이었다. 북한은 6.25 전쟁(한국전) 때부터 중공군에 크게 의존했지만, 6.25 전쟁이 끝나자마자 친중 세력인 '연안파'를 완전히 숙청했다. 당시 북한군은 완전히 괴멸됐고 중공군 수십만 명 이상이 북한에 주둔하고 있을 때였다. 이러한 김일성의 정책을 김정은이 그대로 승계했다. 김정은이 고모부이자 친중파의 거두인 장성택을 처형한 것은 단순히 북한 내부적인 갈등 때문만이 아니다. 중국의 영향력을 제거한다는 의미도 있었을 것이다."

    - 북한이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된 것이 결국 중국에는 이득이었던 것 같다.

    "지난 30년간 북핵 문제를 협상하면서 한미일이 내심 중국의 역할을 크게 기대한 면이 있었다. 바로 '북한이 핵무장하면 중국에도 부담될 것이므로 중국이 결정적 순간에 나서서 북한의 핵무장을 막을 것이다'라는 기대였다. 그러나 결국 지나고 나서 보니 중국은 북한의 핵무장을 막으려는 시도를 한 적이 전혀 없었다. '중국은 북한의 핵무장이 중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구나, 우리가 잘못 판단했구나' 하고 깨닫게 됐다. 중국은 지난 30년간 북한의 핵개발에 영향력을 행사할 시도를 하지 않았고, 설사 시도했더라도 성공하지 못했을 거로 생각한다."

    - '북한의 비핵화'라는 용어를 쓰는 윤석열 정부와 달리, 미국은 계속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용어를 쓰는 이유가 궁금하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에 6자회담 결과로 채택된 9.19 공동성명에 북한과 중국이 주장하던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용어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잘못된 명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항상 '북한의 비핵화', '북한의 핵 포기', '북한의 핵 폐기'라고 돼 있었다.  9.19 공동성명이 북한의 비핵화를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개념으로 변질시켰다. 북한과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 개념에 주한미군 철수까지 포함시켜 주장하고 있다."

    - 그런 졸속합의를 한 배경이 무엇이었나?

    "노무현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북한과 핵합의를 빨리 이뤄야 한다'는 일념 때문에 북한이 주장하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명칭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를 빨리 합의하고 남북정상회담과 대북 원조에 총력을 기울이기 위해 설익은 합의를 한 것이다. 그때 받아들인 용어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행되지도 않을 합의를 하는 바람에 명분만 잃게 됐다."

    -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에 체결한 '9.19 남북군사합의'를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즉각 파기하는 것이 마땅하다. 9.19 남북군사합의는 1991년의 '남북비핵화공동선언'과 더불어 북한이 이미 오래전 파기한 합의를 한국만 홀로 준수하는 상황이다. 9.19 남북군사합의는 한국이 비교우위를 갖는 군사적 수단들을 모두 동결하고 북한에만 행동의 자유를 부여한 원천적 불평등 합의다. 그럼에도 불구 북한조차도 지키지 않는 합의를 한국 홀로 지킨다는 건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되기 어렵다."
  • ▲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이 25일 경기도 성남 세종연구소에서 뉴데일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세종연구소 개혁의 목표로
    ▲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이 25일 경기도 성남 세종연구소에서 뉴데일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세종연구소 개혁의 목표로 "침체된 연구기능과 대외활동 정상화"와 심각한 재정난 해결을 꼽으며 세종연구소를 40년 전 창설 당시 목표였던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외교안보연구소'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서성진 기자
    -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먼저 방한을 언급했다.

    "'검토하겠다'는 건 수락이 아니라 단지 중립적(neutral)인 표현일 뿐이다. 타국 정상이 초청하면 갈 수 있든 없든 답변은 항상 '검토하겠다'고 하는 것이 관례다. 김정은의 초청에 푸틴이 '검토하겠다'고 한 것과 마찬가지다. 정상들은 관례상 상대국을 교차 방문하게 돼 있다. 한국 대통령이 그동안 여러 번 중국을 방문했지만, 시진핑 주석은 2014년 7월을 마지막으로 방한하지 않았으므로 당연히 시진핑이 방한할 차례다. 시진핑이 방한하지 않는 것은 외교적으로 매우 큰 결례이자, 한국을 경시하는 태도다."

    - 시진핑의 방한이 우리의 국익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시진핑이 방한을 결정하려면 먼저 한국으로부터 상당한 양보를 받아내려고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반도체 공급망 통제와 관련해 뭔가 '대가'(代價)를 요구할 수도 있다. 시진핑이 안 오면 우리 대통령도 중국에 안 가면 된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을 계기로 한중 정상이 제3국에서 만날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 시진핑은 방한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방한할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세팅에서 시진핑이 스스로 방한할 때를 기다려야 한다. 정중히 초청은 하되 매달리면 안 된다. 우리가 굳이 불리한 조건을 감수하고까지 시진핑의 방한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는 건 외교 전략상 좋지 않다."

    - 우리 정부가 연내 개최를 목표로 하는 한일중 정상회의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한일중 정상회의가 재개된다고 해서 정책적으로나 전략적으로나 큰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재개시키기 위해 매달릴 일도 아니다. 더욱이 한일중 정상회의는 시진핑 주석이 참석하는 회의가 아니다. 한일중 정상회의는 중요한 전략적 문제가 아닌, 경제, 교육, 환경 등 분야에서 실무적인 협력을 하는 자리다. 그런데 우리와 일본은 각각 대통령과 총리 등 정상이 참석하는데, 중국은 주석(시진핑)이 안 나오고 실권 없는 총리가 나온다. 중국은 강대국들과 합의할 때는 주석이 참여하지만, 아세안 회의와 같은 격이 낮은 회의에는 총리가 참석해왔다."

    - 내년에는 대만 총통선거, 한국 총선, 미국 대선이 있다. 중국공산당(중공)이 자유민주주의 진영을 대상으로 정치공작을 대폭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공산당은 미국, 일본, 캐나다, 호주 등 자유민주진영 여러 나라의 국내 정치에 불법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악명이 높으며, 동아시아의 패권 장악과 제국주의적 팽창을 추구하는 중국의 최우선 장악 대상국 중 하나인 한국의 국내 정치에는 한층 광범위하고 노골적인 개입을 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한 정치공작의 상당 부분은 한국 내 중국유학생, 공자학원, 10만명에 이르는 지방선거권 보유 중국인 등을 매개로 이뤄질 개연성이 크므로, 이들의 불법적 국내정치 개입에 대한 철저한 감시와 더불어 지방선거권 폐지 등 제도적 개선이 조속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아울러 중공이 주도하는 정치공세와 가짜뉴스에 대한 국민 각자의 현명한 판단과 경계심이 중요해 보인다."

    - 마지막으로 세종연구소 개혁 방안이 궁금하다. 그동안 세종연구소는 '친북'적이고 '좌경화'됐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전임 문정인 전 이사장이 사임 직전에 맺은 '최장 90년 부동산 임대계약 특혜 의혹', '알박기 의혹' 등 그동안 논란이 많았다.

    "첫 번째 목표는 연구기능과 대외활동이 침체된 세종연구소를 정상화하는 것이다. 세종연구소를 정상화해서 40년 전 창설 당시 목표였던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외교안보연구소'로 육성하겠다. 두 번째 목표는 심각한 재정난을 해결하는 것이다. 연구소는 2010년대부터 급격히 악화한 재정난을 해소하기 위해 연구소 유휴 부지를 민간기업에 임대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여기에 상가건물이 들어오려면 감독관청인 외교부의 허가, 그리고 성남시의 토지등급 상향 조정이 필요했다. 외교부도 승인을 거부했고, 성남시도 수락이 불가하다고 통보해옴에 따라 해당 토지임대 계약은 자동 폐기됐다. 연구소 직원들과 이사회와의 협의를 통해 재정자립을 이루도록 노력하겠다."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1956년 충북 진천에서 출생해 경기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9년 외교부에 입부했다. 청와대 외교비서관실, 통일비서관실, 주미국 대사관 정무과장, KEDO-북한 경수로협상 대표, 북미1과장, 청와대 NSC 정책조정실장, 북미국 심의관, KEDO 뉴욕사무국 정책국장, 외교부 북핵외교기획단장, 6자회담 차석대표, 북핵담당대사, 차관보, 주말레이시아 대사, 주이탈리아 대사 등을 역임했다.

    <베트남, 잊혀진 전쟁의 상흔>(2003), <북한핵, 새로운 게임의 법칙>(2004 서울, 2005 동경), <게임의 종말(부제: 북핵 협상 20년의 허상과 진실)>(2010 서울, 2015 동경), <북핵 30년의 허상과 진실>(2018), <대한민국의 위험한 선택>(2019) 등 저서를 출간한 바 있다. 주프랑스 대사관에 근무하던 1985년 희곡 '심판(審判)'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