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열지옥'으로 시작, 'K팝'으로 훈훈한 마무리폐영 이후 새만금 벗어나 전국 여행하며 휴식잼버리 위기를 '한국 전통문화' 알리는 기회로
  • ▲ 지난 3일 오후 전북 부안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야영지 내 잼버리 병원에서 온열질환자가 치료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 3일 오후 전북 부안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야영지 내 잼버리 병원에서 온열질환자가 치료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폭염 대책 미비와 관리 부실로 전 세계 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우여곡절 끝에 막을 내렸다.

    지난 1일 전북 부안군 새만금에서 개막한 세계잼버리는 그늘 한 점 없는 매립지에 캠프를 조성하면서 온열 질환자가 무더기로 발생하고 탈진 환자가 속출하는 등 시작부터 삐걱댔다.

    가뜩이나 부족한 화장실은 위생 상태가 심각해 대원들의 외면을 받았고, 천막으로 가린 여자 전용 샤워실에 한 남성 대원이 침입하는 범죄도 발생했다. 밤마다 물웅덩이에 서식하는 각종 벌레에 대원들의 온몸이 뜯기는 일은 다반사였다.

    이에 가장 많은 대원이 참여한 영국과 미국 스카우트 대표단이 조기퇴영을 결정, 새만금 현장을 떠나는 등 대회가 파행 국면으로 치달았다.

    결국 정부가 수습에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로 잼버리 비상대책반을 구성한 정부는 69억원의 잼버리 예비비 집행을 의결, 새만금 현장에 생수와 얼음을 대량 공급하고 화장실 등 부족한 기반 시설을 확충했다.

    이 와중에 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관통할 것이라는 예보로 정부와 세계스카우트연맹이 '야영장 철수'를 결정하면서 4만명에 이르는 150국 스카우트 대원들이 전국 8개 시·도에 마련된 숙소로 흩어지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이때 정부는 위기를 기회로 활용했다. 갑작스레 손님맞이에 나선 각 지자체와 공기업, 수도권 대학들은 저마다 유익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심신이 지친 대원들을 달랬다.

    경기도는 수원화성 등 전통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서울시는 경복궁과 국립중앙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등으로 대원들을 안내하며 한국의 전통문화를 소개했다. 충북 단양군은 천태종 총본산인 구인사에서 일본 스카우트 대원들에게 템플스테이를 경험시켜 높은 호응을 얻었다.

    동아방송예술대는 학교 특성을 살려 북마케도니아와 크로아티아에서 온 대원들을 위해 K팝·DJ 공연 등 '웰컴 파티'를 벌여 눈길을 끌기도.
  • ▲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2023 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 K팝 슈퍼라이브 공연을 앞두고 입장한 각국 스카우트 대원들이 공연을 기다리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 연합뉴스
    ▲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2023 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 K팝 슈퍼라이브 공연을 앞두고 입장한 각국 스카우트 대원들이 공연을 기다리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 연합뉴스
    걸그룹 총동원 콘서트로 '유종의 미' 거둬

    피날레는 지난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팝 슈퍼라이브 콘서트'가 장식했다.

    당초 새만금 야외무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이 공연은 온열 질환이 우려돼 전주월드컵경기장으로 장소를 변경했다가 태풍 '카눈'이 북상하면서 다시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장소가 바뀌었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공연은 성공적으로 열렸다. 공연을 위해 객석 3만7000석과 그라운드 좌석 6000석을 마련한 정부는 경찰 600명을 투입해 장내 질서를 유지하고, 소방 200명과 의료진 40명을 대기시키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연예기획사들의 협조로 국내외에서 인기가 높은 K팝 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뉴진스·아이브·있지·엔시티드림·마마무·몬스타엑스·셔누X형원·제로베이스원·더보이즈 등 19개 팀이 출연해 전 세계 스카우트 대원들의 흥을 돋웠다. 방탄소년단 측은 사전에 8억원 상당의 포토카드를 제공하며 힘을 보냈다.

    대원들은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가수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반짝반짝 빛나는 응원봉을 열심히 흔들며 공연을 만끽하는 모습을 보였다.

    수일 만에 급조된 야외 무대였으나, 화려한 조명에 각종 특수효과가 더해진 무대는 청소년 대원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는 평가다.

    폐영식과 K팝 콘서트를 끝으로 새만금 잼버리 일정을 모두 마친 대원들은 12일부터 개별 일정을 소화 중이다.

    일부 대원들은 바로 귀국길에 올랐으나 상당수 대원들이 한국에 남아 문화체험과 관광 등으로 여행을 즐길 계획을 밝혔다.

    이에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12일 새만금 잼버리 비상대책반 회의석상에서 "인천국제공항에 출국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많은 대원이 있으나, 일부 대원은 잼버리 이후 프로그램을 진행한 뒤 출국할 예정"이라며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 지시에 따라 오늘 이후 진행되는 숙식·교통·문화체험·관광도 최대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각 부처와 지자체는 항상 잼버리 대원의 안전과 건강을 제1원칙으로 하면서 숙박·급식·이동·체험·출국 등 모든 과정에서 대원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기관장들이 직접 꼼꼼히 챙기고, 행정안전부·여성가족부·조직위 등은 당분간 상황 기능을 유지하면서 남아있는 잼버리 대원들의 편의를 제공하고 관련 부처나 지자체와 협조 필요 사항을 조율해 달라"고 당부했다.
  • ▲ 지난 12일 경북 경주시 골굴사에서 독일 잼버리 대원들이 선무도 수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 12일 경북 경주시 골굴사에서 독일 잼버리 대원들이 선무도 수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찰·해수욕장·놀이공원 방문… 뒤늦게 한국에 매료

    각국에서 모인 스카우드 대원들은 새만금에서의 '악몽'을 뒤로 하고 한국의 곳곳을 여행하며 본격적인 여름휴가에 나선 모습이다.

    지난 12일 부산의 한국해양대 기숙사로 숙소를 옮긴 스웨덴 잼버리 대원 890여 명은 광안리해수욕장을 찾아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이들은 오는 15일까지 유엔기념관과 용두산공원, 감천문화마을, 범어사, 금정산 등을 둘러보며 부산 곳곳을 탐방할 예정이다.

    영국 대원 600여 명도 지난 12일 강원 춘천시에 도착해 구곡폭포와 애니메이션 박물관 등을 구경했다. 이후 레고랜드를 방문해 놀이기구를 타고 물놀이 등을 즐겼다.

    대만 대원들은 각각 조를 나눠 부산과 경북 경주, 전남 순천을 여행 중이다.

    독일 대원들은 지난 12일 경북 경주시로 내려가 불국사와 골굴사에서 템플스테이 체험을 하고 있다.

    네덜란드 대원 230여 명은 13일 경기도 용인시 한국민속촌을 방문해 한국의 전통문화를 체험 중이고, 요르단 대원 38명은 경기도 남양주시 홍유릉과 독립운동가 이석영 선생의 뜻을 기린 '리멤버 1910'을 방문해 한국의 전통 가옥과 역사를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크라이나 대원 24명은 향후 일주일가량 더 머물며 경기도국제교육원이 마련한 '문화 오디세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예정이다. 이들은 오는 19일까지 서울 경복궁과 인사동, 수원화성 등을 차례로 방문하고, 평택 한국 관광고등학교도 찾아 한국 학생들을 만날 계획이다.

    아일랜드, 몰타, 폴란드 등 7개국에서 모인 510여 명의 대원들은 전북으로 내려가 전주 한옥마을, 부안 채석강, 임실 치즈테마파크, 군산 선유도 등 주요 관광지에서 사흘간 여행을 즐길 예정이다.

    체코와 루마니아 대원 100여명은 세계문화유산도시 안동에서 병산서원, 하회마을, 월영교를 둘러보고, 하회별신굿 탈놀이를 관람할 계획이다.
  • ▲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원들이 12일 동안의 여정을 끝내고 순차적으로 본국으로 출국하기 시작한 12일 오전 이학재 인천국제공항 사장이 대원들에게 선물을 전달하고 환송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원들이 12일 동안의 여정을 끝내고 순차적으로 본국으로 출국하기 시작한 12일 오전 이학재 인천국제공항 사장이 대원들에게 선물을 전달하고 환송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