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508명 증언 '2023 北 인권보고서'… 주민 출신 성분에 따라 직장 배치매달 또아리 수익금 납부하는 탈북민 "장사하는 게 직장 다니는 것보다 낫다"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 대원에게 제공되는 식사는 보리밥·된장·소금미역국열악한 식사와 강도 높은 노동… 건설현장 투입 한 달 만에 허약 상태로 귀가 조치
  • ▲ 북한에서 인권 유린이 자행되는 노동단련대 모습. ⓒ갈렙선교회 유튜브 영상 화면
    ▲ 북한에서 인권 유린이 자행되는 노동단련대 모습. ⓒ갈렙선교회 유튜브 영상 화면
    편집자주

    정부가 2017년부터 비공개로 작성해온 북한인권보고서를 처음 공개했다. 2016년 북한인권법이 채택된 후 정부는 2018년부터 해마다 북한인권보고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굴욕적인 친북(親北)행보로 일관했던 문재인정부는 북한의 거센 반발과 탈북민 신상 보호를 이유로 북한인권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았다. 

    반면 윤석열정부는 북한의 열악한 인권 실태를 널리 알리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보고서 공개를 결정했다. 김정은정권에서 고통 받는 북한주민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보고서는 총 450쪽 분량이다. 2017년 이후 탈북한 북한이탈주민 508명이 증언한 수많은 인권침해 사례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시민적·정치적 권리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 △취약계층 △특별사안(정치범수용소·국군포로·납북자·이산가족) 등 4개 부문으로 구성됐다. 세계 최악의 인권 사각지대 북한의 현실을 충실히 담아냈다는 평이다. 

    본지는 유엔의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출범 10년, 북한인권결의 채택 20년을 맞아 처참한 북한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 ▲ 'KBS 스페셜'에 등장한 20대 북한 꽃제비 여성의 모습. ⓒKBS 방송 화면
    ▲ 'KBS 스페셜'에 등장한 20대 북한 꽃제비 여성의 모습. ⓒKBS 방송 화면
    [근로권]

    사회권 규약에서 국가는 자유롭게 선택하거나 수락한 노동에 의해 생계를 영위할 권리 등을 보호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명시했으며, 모든 사람이 공정한 임금과 차별 없는 동등한 보수 등을 향유할 권리를 갖는다고 했다.

    북한에서 모든 사람은 17세부터 연로보장자와 전업주부인 '부양자', 질병 등으로 노동 능력이 상실된 경우 등을 제외하고는 직장에 배치돼야 한다. 이를 '직장 배치'라고 하는데 주민의 출신성분이 가장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 공통된 진술이었고, 인맥과 뇌물을 이용해 기피 대상 직장에 배치되는 것을 피하거나 원하는 곳에 배치되도록 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리배치'는 농장이나 광산 등 힘든 분야 또는 기피지역에 노동력을 공급할 목적으로 직장 배치 대상자를 집단적으로 배치하는 것을 말한다. 고급중학교·기능공학교·중등학원 등의 졸업자를 대상으로 한 무리배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졸업생을 지역의 협동농장 청년작업반에 집단으로 배치했다는 사례가 있었고, 졸업과 동시에 군수공장에 무리배치됐다는 진술도 있다.

    북한의 행정처벌법은 노동 의무 불이행 행위를 '무직건달' '무단결근'으로 나누고 있다. 무직건달 행위는 합당한 이유 없이 무직으로 지내는 것이며, 무단결근 행위는 소속된 직장에 정당한 사유 없이 출근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데, 무직과 결근은 모두 단속과 처벌의 대상이다.

    무직과 결근 단속은 보통 거주지나 직장에 상주하는 담당 안전원이 주로 하지만, 무직자를 집중적으로 단속하는 '상무'라는 연합조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직장에 출근하지 않는지, 문의 명단을 인민반장이 작성해 지역 담당 안전원 등에 보고하고, 이를 토대로 단속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무직으로 단속되면 행정처벌법으로 처벌되는데, 노동교양처벌 3개월 이하 또는 3개월 이상 6개월 미만이다.

    노동자는 직장에 수익금을 내며 출근하지 않는 상태로 사적 경제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직장에 출근하면서 개인적 활동을 하기도 했다. 소속 직장에 매달 30위안의 수익금을 납부하며 생활용품을 골목 등에서 '또아리' 장사를 했다는 북한이탈주민은 "장사하는 것이 직장에 다니는 것보다 나았다"고 진술했다. 

    이외에 국영상점의 자리를 받아서 개인이 물건을 판매하고, 이익의 일부를 납부하는 '위탁자' 일을 했다는 사례와, 고리대금업에 해당하는 '속도돈'을 빌려 주고 이자를 받아서 생활했다는 진술도 있었다.

    북한 사회주의노동법에서 생활비의 기본 형태는 도급지불제와 정액지불제이고, 생활비의 추가적 형태를 가급금제와 상금제로 정하고 있다. 하지만 기관이나 기업소 등에 출근했던 경험이 있는 노동자들은 생활비의 등급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2017년 양강도의 소학교 교원은 한 달 생활비로 1800원을 받았다고 한다. 이는 계란을 두 알 정도 살 수 있는 금액인데, 이마저 매달 지급된 것이 아니라 3년 근무하는 동안 3~4차례만 받았다고 진술했다. 2018년 군인민병원에서 근무했던 노동자는 규정대로 월 1600원을 매달 현금으로 받았지만, 지급하지 않아도 달라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적은 금액이었다고 한다.

    작업현장에서는 안전교육, 안전시설 설치·보수, 안전장비 지급, 노동안전원 등의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2018년 평양시의 대외건설자양성사업소에 근무하면서 주요 건축 공사에 참여했다는 한 근로자는 "안전벨트는 모두에게 제공됐는데 안전모는 공용으로 사용했고, 개수가 부족해 모두 착용하지 못했다"며 "안전화·작업복·장갑도 제공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안전교육과 당국의 지도감독도 미흡한 것으로 파악됐는데, 안전감독이 비교적 잘 이뤄진 것으로 보이는 사업장에서도 필요한 경우에만 감독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 ▲ 북한에선 주민의 출신 성분에 따라 직장이 배치된다. ⓒ연합뉴스
    ▲ 북한에선 주민의 출신 성분에 따라 직장이 배치된다. ⓒ연합뉴스
    북한은 사회주의 제도가 확립된 상황이라면 노동계약, 단체계약, 노동분쟁, 직맹단체 감독권 같은 문제들이 노동법에서 없어지게 되는 것이 필연적이라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령에 의해 보장되고 있는 근로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북한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유다. 

    북한 당국은 자본종속이 사라진 것으로 선언됨에 따라 당국에 고용의 의무가 부과되고 근로자 간의 법률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돌격대는 대규모 건설을 짧은 시간 내에 완료하기 위해 지역과 기업소 등의 할당인원이 건설에 투입되는 조직을 의미한다. 조직의 운영을 군대식으로 하기 때문에 연대-대대-중대-소대 등의 명칭을 쓰고 있다. 

    돌격대가 하는 일은 댐·아파트·도로 등의 건설이 주를 이룬다. 맡은 임무는 '속도전'으로 짧은 시간에 완료하도록 하기 때문에 작업시간이 매우 긴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이탈주민 대부분은 "공사 완료를 위한 매일의 작업량이 정해져 있었으며, 매일 과도한 달성량으로 취침시간을 5시간 미만으로 줄여 할당된 작업량을 마무리해야 했다"고 진술했다. 

    작업시간이 10시간을 넘기는 것은 보통이었고, 하루 15시간 이상 작업에 투입되는 경우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돌격대의 식사와 숙소 등 근무환경은 소속된 대원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에서 돌격대원에게 제공되는 식사는 보리밥·된장·소금미역국이 전부였다고 한다. 들어간 지 1개월만 지나면 허약 상태가 돼 귀가 조치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진술이 있다. 안전사고도 많이 발생했지만 돌격대 내에서의 치료는 충분하지 않았다.

    파견 노동자 선발은 업무에 적합한 능력을 가진 인력을 뽑기보다 '결격사유'를 가진 사람을 걸러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해외 파견자 선발에서 제외되는 공통적 사항은 중요 시설에서 군복무를 한 자, 가족 중 중앙당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있는 경우, 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된 친척이 있거나 탈북한 친척이 있는 경우, 행방불명된 가족이 있는 경우, 가족 중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이 있는 경우, 가족 중 해외 파견자가 있는 경우 등이다.

    해외 파견자를 대상으로 한 소지품 등 검열도 수시로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보위원의 검열 목적은 주로 스마트폰 소지 및 사용 여부다. 파견 기간 중 일주일에 2~3차례씩 소지품 검열을 받았다는 경우가 있었고, 전체 인원을 대상으로 한 검열 시 노동자들을 모두 내보낸 상태에서 보위원 단독으로 해서 불만이 많았다는 진술도 있었다. 

    의사 등 개별 활동을 하는 경우에도 검열을 받아야 했다고 하는데, 보위원이 집으로 찾아와 편지·컴퓨터 등을 모두 꺼내 놓도록 한 뒤 검열했다는 사례가 있다.

    해외 파견자 통제는 여권 회수, 외출금지, 외부 정보 접촉 금지, 휴대전화·스마트폰 제한 및 금지, 생활총화 등으로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파견 노동자는 단독으로 외출이 허용되지 않아 숙소와 작업장 이외의 장소에 자유롭게 갈 수 없었으며, 현지인을 접촉하는 것도 엄격하게 통제됐다. 

    휴일에 외출이 가능한 경우에도 3~4명이 조를 이뤄야 했다. 외출 시 거주증을 조장에게만 주거나, 외출일지를 쓰도록 했다는 사례도 있었다. 식당 근무 노동자가 외국인과 대화한 것이 드러나 비판서를 쓰도록 했다는 사례도 있었다.
  • ▲ 문수정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 사무차장. ⓒ한변 제공
    ▲ 문수정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 사무차장. ⓒ한변 제공
    문수정 한변 사무차장 "북한 공무원, 뇌물 위해 사적 경제활동 묵인"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한변)은 자유민주주의 바탕 하에 법치주의를 수호하고 북한 인권을 개선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실천한다는 시대적 사명을 수행하고 있는 단체다.

    문수정 한변 사무차장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폭압적인 북한정권에 세뇌 당한 주민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문 사무차장은 "북한주민들은 당에서 지정해 주는 직업을 거부할 생각 자체를 못하고 있는데, 거부할 경우 반동분자로 몰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 사무차장은 '일부 주민들이 사적 경제활동을 하면서 지정된 직장에 상납금을 바치는 기형적인 경제활동을 당이 인지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북한 공무원들은 뇌물을 요구하고 그 액수는 당에서 장려하는 경제체제로는 절대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서로 잘 안다"고 전했다. 

    이어 문 사무차장은 "북한정권과 공무원은 그들의 사욕을 위해 이 같은 경제활동을 묵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 사무차장은 "현재 북한의 경제체제가 상당히 피상적인 형태가 됐는데 굉장히 구조가 부조리하다"고 꼬집기도 했다.

    문 사무차장은 북한에서 파견한 해외노동자의 비법적인 노동행태와 관련해서도 "까다로운 심사 조건을 통과해 해외로 파견되더라도 그들이 벌어 들인 대부분의 수익금은 김정은정권을 위해 쓰인다"며 "정작 피땀 흘려 고생하는 파견 노동자들이 가져가는 몫은 상당히 적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