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음악극 '나를 찾아서'에서 '제이' 역으로 출연하는 배우 남명렬.ⓒ롯데문화재단
    ▲ 음악극 '나를 찾아서'에서 '제이' 역으로 출연하는 배우 남명렬.ⓒ롯데문화재단
    가부장제 속 전형적인 아버지부터 게이·마술사·성악교수·교황·갱스터 등 다채로운 매력의 캐릭터까지… 무대 위에서 마주한 배우 남명렬(63)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설득력 있게 풀어내며 관객에게 신뢰를 켜켜이 쌓아 올린다. 

    음악극 '나를 찾아서'에 출연하는 남명렬은 한층 단단하고 짙어진 눈빛으로 "사람들은 지나간 과거와 다가오지 않는 미래에 집착해서 불행을 자초할 때가 있다. 현재가 이어져서 과거가 되고 미래가 되기도 한다"며 "지금 나는 여기에서 어떤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관객에게 현재의 소중함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마지막 대사 의미와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중략)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매일유업이 2003년부터 진행한 '매일클래식'이 올해 20주년을 기념해 롯데문화재단과 손을 잡고 '시간과 공간'이라는 주제로 네 번의 공연을 펼친다. 첫 무대는 14일 오후 7시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나를 찾아서'다. 25분 정도 소요되는 동명의 연극과 55분의 연주가 어우러진 음악극으로, 작가이자 배우 임정은의 초연작이다.

    작품은 주인공 제이가 유년부터 중장년까지의 생의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해 성장하는 예술가의 삶을 보여준다. '제이'는 남명렬·신재열·윤희동 배우가 나눠 연기한다. 드라마 사이사이에는 클래시칸 앙상블이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중 '아리아', 모차르트 '디베르멘토', 이안 클라크 '오렌지빛 새벽', 드보르자크 '세레나데' 등을 들려준다.

    2000석이 넘는 클래식 전용홀에서 처음 연기하는 남명렬은 "이전에도 클래식과 협업한 경험이 있어서 이번 무대가 생소하지 않다. 연극과 음악회는 서로 다른 장르의 공연이지만 어떤 방식·형태든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건 늘 즐거운 일이다"고 밝혔다.
  • ▲ 음악극 '나를 찾아서'에서 '제이' 역으로 출연하는 배우 남명렬.ⓒ롯데문화재단
    ▲ 음악극 '나를 찾아서'에서 '제이' 역으로 출연하는 배우 남명렬.ⓒ롯데문화재단
    이어 "음악은 상징적인 언어이기 때문에 연극이란 구체적인 언어를 더해 전달하면 관객은 더 쉽게 공감하고 빨리 흡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삶의 전반을 고민할 수 있는 철학적인 주제를 음악과 함께 시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를 찾아서'에서 어른 제이는 파랑새를 쫓던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소유만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한 제이는 파랑새를 새장 안에 가둬 버린다. 청년의 성장통과 어른이 된 후 찾아온 상실감을 경험한 제이는 소유는 행복이 아니라 욕심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파랑새를 놓아준다.

    남명렬은 재독철학자 한병철의 책 '피로사회' 내용을 언급하며 "옛날은 타인에 의한 착취였다면 현대사회는 자신을 끝까지 몰아부치는 '자기 착취'가 있다.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성취하지 않으면 우울해지고 절망감이 커진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현재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내 자신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59년 4남매 중 둘째로 대전에서 태어난 남명렬은 부모님에게 실망을 안겨드리고 싶지 않았던 착하고 반듯한 모범생이었다. 충남대 임학과에 입학한 그는 대학교 1학년 때 연극반 동아리에 들어가면서 연기의 재미를 알게 됐다. 졸업 후 1985년 제약회사 영업부에 입사하며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영업일이 체질에 맞지 않았고, 1991년 연기가 하고 싶어 사직서를 냈다.

    "20대를 돌아보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주체적인 삶을 살지 않았던 것 같다. 더 이상 일을 못하겠다는 마음이 목까지 차올랐을 때 직장을 그만뒀다. 당시 33살이었는데 처음 스스로 선택한 결정이었고, 35살이 돼서야 서울에 올라왔다. '조금 더 일찍 배우를 했으면 지금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함도 있지만 어려움이 있었기에 연기와 삶을 깊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 생겼고, 지금의 제가 있는 거죠."

    남명렬은 1993년 서울 무대 데뷔작인 '불의 가면-권력의 형식'을 통해 본격적인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30년 넘게 140여 편에서 다양한 인물의 서사를 묵직하게 빚어낸 그는 다독가로 유명하며 '가장 지적인 배우' 중 한 명이다. "서재에 앉아 책을 읽을 때 가장 행복하다. 배우는 글에 대한 독해능력이 좋아야 한다. 새로운 연극을 할 때 대본을 보고 이해하는 게 먼저인데, 독서가 크게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