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즈벨트 서거...샌프란시스코 유엔 창립 총회

    미국 애틀랜타 온천지 웜스프링스(Warm Springs)의 리틀 화이트하우스(Little White House)는 루즈벨트의 개인 별장, 뉴욕주지사 때 지은 작은 집은 그가 1932년 대통령이 되자 ‘리틀 화이트하우스’로 불렸다. 1945년 얄타회담후 3월부터 머물던 ‘환자’ 루즈벨트는 그날도 벽난로 앞에 앉아서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와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의지에서 굴러 떨어진다. 뇌출혈 돌연사, 63세. 얄타회담이 끝난 지 꼭 두 달 되는 4월12일이다. 
    즉시, 트루먼(Harry S. Truman, 1884~1972)이 부통령 취임 83일째 날 미국 대통령직을 승계한다. 
    그리고 2주일 후 4월25일 샌프란시스코, 루즈벨트의 마지막 작품 국제연합 유엔의 창설 총회가 열린다. 초대 사무총장은 루즈벨트가 얄타에서 지명한 앨저 히스, 소련 간첩이 주도하는 유엔탄생 행사엔 50개국이 초청되었다. 


  • ▲ 유엔 창설 사무총장 앨저 히스. 그는 소련 간첩이었다.(자료사진)
    ▲ 유엔 창설 사무총장 앨저 히스. 그는 소련 간첩이었다.(자료사진)
    ★“미국이 임정 승인 안하면 한반도에 소련 공산국가 들어선다”

    이승만은 유엔 창설총회에 참가할 임시정부 대표단 9명을 구성, 스태티니어스 미국무장관에게 회의 참가 초청장을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국무부가 ‘미승인단체’라며 거절하자 이승만은 “아르헨티나, 시리아, 레바논도 부적격인데 초청받은 사실”을 들어 거듭 독촉, 한국자료를 잔뜩 만들어 미국무부에 보내고 유엔 회원국들과 언론에 배포하였다. 거기에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카이로 한국독립‘ 선언에 ‘in due course’란 구절을 넣은 것은 미국이 소련을 전쟁에 끌어들여 한반도를 소련의 영향 아래 두기위해 한국독립을 늦추려 한 것 아니냐. 지금 중국과 시베리아의 한인공산주의자들은 한반도에 공산당정부를 세우려 준비하고 있다. 미국이 이를 방치하면 한반도는 일본이 물러간 뒤 소련 제국주의가 지배한다. 미국이 더 큰 곤경을 당하지 않으려거든 속히 임시정부를 승인하여 한국이 소련의 한반도 점령을 막을 수 있도록 유엔 회원국으로 반드시 참여시켜 달라“ (로버트 올리버 [이승만:신화속의 인물] 앞의 책)

    강대국들의 속셈을 꿰뜷는 통찰력과 예지력이 빛나는 이 글 내용은 해방 후의 한반도 정세를 미리 본 듯 그대로 적중하지 않았는가. 
    이승만은 루즈벨트의 무작정 유화정책은 소련의 제국주의 행동양식을 묵인하는 것이라고 맹비난하면서, 러일전쟁 때 ‘일본의 멍에’를 한국에 지워준 미국이 이번엔 ‘소련의 멍에’를 지워주는 배신행위를 반복해선 안 된다고 각성의 촉구와 분노를 거듭 거듭 표출한다. 

    이승만을 더욱 괴롭히는 것은 미국무부만이 아니라 ‘재미한족연합위원회’였다. 서북파와 한길수 등 그들은 이승만과 임시정부를 무시하고 유엔에 파견할 별도의 ‘민중대표단’을 구성하였고, 이승만 임정대표단이 참가하지 못할 것을 알고는 ”우리가 해외한인대표“라며 선전활동을 벌이는 것이었다. (신한민보, 1945.5.17.)

    허수아비 국무장관을 제쳐놓고 유엔 창설을 총지휘하는 앨저 히스는 뒤늦은 답장에서 끝까지 소련의 이익을 대변한다. ”한국의 어떤 대표도 정부 승인을 받지 못한 것은 유엔에 한국이 참여할 모든 가능성을 배제한다“ 이 말은 ‘해외한인대표’를 자처하는 재미한족엽합위원회를 두고 조롱하는 최종 통보였다. 이승만이 전부터 [세계상황](World Affairs,1943년6월호)에서 지적한 바, ”미국무부가 다른 망명정부와 달리 유독 한국임시정부만을 승인하지 않는 이유가 소련의 이익을 지키려는 정책“이란 말 그대로 앨저 히스는 끝까지 소련사람처럼 단호했다.
  • ▲ 이승만에게 '얄타밀약'을 알려준 미국 언론인 고브로(왼쪽), 이승만의 절친 언론인 제이 제롬 윌리엄스.ⓒ뉴데일리DB
    ▲ 이승만에게 '얄타밀약'을 알려준 미국 언론인 고브로(왼쪽), 이승만의 절친 언론인 제이 제롬 윌리엄스.ⓒ뉴데일리DB
    ◆ 루즈벨트-처칠-스탈린의 ‘비밀협약‘ 폭로...미국도 영국도 발칵

    하나님이 보내셨을까...출구 없는 이승만 앞에 뜻밖의 ’귀한 손님‘이 나타났다.
    이승만의 유엔외교 캠프 모리스 호텔(Maurice Hotel)에 워싱턴의 한미협회 이사 윌리엄스(Jay Jerome Williams)가 낮선 미국 기자를 이승만에게 홍보전문가로 추천한다며 보냈는데, 이름은 에밀 고브로(E'mile Henri Gauvreau)이며 ’소련 공산당에서 전향한 사람‘이라고 소개하였다. 그는 이미 다양한 경력을 가진 뉴욕의 저명한 기자였다. (그동안 구베로(Gouvereau)로 알려진 이름은 복사과정의 착오, 바른 이름은 고브로(Gauvreau). 작가 복거일이 스스로 확인한 결과를 [월간조선] 2020년 1월호 ’현대사의 발굴‘에 발표함)

    이승만은 깜짝 놀랐다. 고브로가 석 달 전의 얄타 회담에 관한 ’비밀 정보‘를 알려주었다. “얄타에서 루즈벨트-처칠-스탈린이 한국을 일본과의 전쟁이 끝날 때까지 소련의 영향 아래 두며, 미국과 영국은 한국에 대해서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기로 했다”고 구체적인 설명을 하는 게 아닌가. 
    고브로가 취재했다는 극비정보는 즉각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승만이 오랜 기간 우려해왔던 ’강대국들의 한국 흥정 음모‘ 예상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고브로를 소개해준 이승만의 절친 미국언론인 제이 제롬 윌리엄스는 허스트(Hearst) 계열 통신사인 INS(International News Service)에서 평생 일하였고, 고브로는 허스트 계열 [뉴욕 데일리 미러]에서 여러 해 활동했으므로 두 사람은 이미 신뢰하는 사이였던 것으로 믿었고, 더구나 공산당을 떠난 고브로가 한국독립운동단체 간부 윌리엄스에게 한국 독립의 위기를 알려주고 윌리엄스가 그것을 한국 지도자 이승만에게 알려주어 3인이 비상대책에 돌입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 루즈벨트 대통령의 부음에 달려간 트루먼 부통령이 백악관에서 33대 대통령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오른쪽 부인과 딸.(자료사진)
    ▲ 루즈벨트 대통령의 부음에 달려간 트루먼 부통령이 백악관에서 33대 대통령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오른쪽 부인과 딸.(자료사진)
    ★이승만 작전 개시...언론에 제공...미 의회와 트루먼 대통령에 편지

    이승만은 칼을 뽑았다. 
    우선 미국 최대의 신문네트워크를 자랑하는 보수계 언론재벌 허스트(William R. Hearst)에게 ’얄타의 밀약‘을 알려주는 편지를 쓴다.
    “한국이 비밀흥정의 희생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귀하는 아시겠지요. 이런 국제적 노예무역의 비밀이 탄로난 이상, 세계의 지도자들이 민주주의와 자유를 팔고있다는 것을 미국 국민들에게 인식시킬 사람은 귀하와 같은 언론 지도자입니다. 만일 미국 국민이 이일은 중단시키지 못하면 그 자녀들은 다음 15년 안에 제3차 세계대전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5월8일부터 [시카고 트리뷴 The Chicago Tribune],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 The San Francisco Examiner], [로스앤젤에스 이그재미너 The Los Angeles Examiner] 등 대형 언론사들은 일제히 대서특필하였다. 특히 허스트계 신문들은 가뜩이나 얄타회담 내용이 발표되지않아 조바심치던 중에 이승만의 폭로내용을 미국 전역의 언론망에 상세히 보도하는 것이었다. 
    한인동포 신문 중에는 [북미시보](The North American Times)의 보도내용이 눈길을 끌었다. "소련이 중국 공산당의 본거지인 연안에 한인공산당 임시정부를 조직해 두었고 앞으로 폴란드의 루블린(Lublin) 정부처럼 승인을 주장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이것은 이승만도 몇 번 주장하던 것인데, [북미시보]는 이승만이 본토에 조직한 한인동지회 기관지이다. 

    미국과 유엔이 뒤집어지고 영국과 소련까지 발칵, 이승만의 폭로작전은 대박을 터트렸다.동시에 이승만은 친분 있는 미국 상하원 지도자들과 백악관 트루먼 대통령에 장문의 친서를 지급으로 보냈다.
    상원의원 조지(Walter F.George), 브루스터(Owen Brewester), 하원의원 호프만(Clare E. Hoffman)에게 얄타밀약을 알려주고 “한국이 소련의 지배아래 넘어가지 않도록 개입해 줄 것”을 촉구하고 유엔 가입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하느님과 미국인의 정의의 이름으로 3천만 기독교 한국국민이 러시아인들에게 팔려가는 이 위급한 순간에 의회지도자인 당신이 그들을 구원하는 무엇인가를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이승만은 트루먼 대통령에게는 이렇게 썼다. 
    “카이로선언에 위배되는 얄타의 밀약이 최근에 밝혀져 대통령께서 크게 놀라셨을 줄 압니다. 나도 매우 놀랐습니다. 각하는 미국의 비밀외교로 한국이 희생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사실을 떠올리실 줄 믿습니다. 1905년 한국을 일본에 팔아버린 비밀협정은 20년 동안이나 비밀에 부쳤지요. 다행히 얄타 밀약은 이번 유엔 회의 중에 밝혀졌습니다.
    우리는 각하가 이 상황에 개입하시기를 호소합니다. 
    왜냐하면, 각하의 직접개입만이 과거 미국이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고 3천만의 한국인이 또 다시 노예로 전락하는 것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이승만의 5월15일자 친서)

    미 국무장관 대리 그루(Joseph Grew)가 극동국장 대리 록하트(Frank P. Lockhart)이름으로 이승만에게 ’사실무근‘이란 답장을 보내고 이어 6월8일 “얄타에서 어떠한 비밀협정도 맺지 않았다”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한국임시정부의 대표성을 인정하지 못한다“고 또 못을 박았다.

    영국의회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처칠은 의원들의 질문에 ”약간의 일반적인 이해가 성립되었지만 비밀 협약은 아무 것도 체결되지 않았다“ 답하고 6월7일 공식성명을 발표하였다.
    소련의 5월24일자 공산당 기관지는 ’밀약‘을 부인하며 ”정신 나간 사람의 황당한 주장’이라 반박하였다. 스탈린 정부 차원의 논평은 없었다. 


  • ▲ 이승만을 도와준 월터 조지 상원의원(왼쪽)과 언론재벌 허스트.(자료사진)
    ▲ 이승만을 도와준 월터 조지 상원의원(왼쪽)과 언론재벌 허스트.(자료사진)
    ★“사실이 아니라면 3개국 정상들이 ‘공식 부인 공동성명’을 발표하라“

    이승만은 유엔총회가 끝나고서도 굴복하지 않았다. 이렇게 폭로전을 벌이는데도 얄타회담 3개국은 진상을 발표하지도 않는다. 이런 판에 포츠담회담까지 열리고보니 백전노장 이승만의 불안과 한국의 운명에 대한 긴박한 노심초사는 폭발 직전이다. 

    이승만은 포츠담회담(7.17 개막)에 참석중인 트루먼 대통령에게 7월18일 특별전보를 친다. 
    “여기 증거가 있는 밀약설이 진정 사실이 아니라면, 포츠담에 모인 3개국 정상들이 한국에 관한 비밀협약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부인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라. 나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당신들의 주장을 믿지 못하겠다.
    #소련 정부는 불길하게도 아직 침묵을 지킨다. 소련 대사에게 해명을 요구했으나 답이 없다.
    #처칠 총리는 얄타의 많은 논의사항을 밝힐 수 없다고 한다. 그는 그 속에 한국문제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번 포츠담회담에서도 세 수뇌가 한국의 정치적 주권과 영토적 통합에 악영향을 주는 어떤 비밀협약이나 합의도 거부할 것을 보장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해야 하며, 임시정부를 승인해주면 종전후 귀국 1년이내 총선거를 실시하여 연합국과 같은 민주국을 설립하겠다.”

    바로 이것이다. 이승만이 가장 걱정하는 전체주의 공산독재자 스탈린의 입에서 아무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 무슨 말인들 신뢰성 여부와는 별개로 스탈린이 국제적으로 ‘공식 부인’ 하는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이승만이었다. 전쟁이후 한반도의 운명, 히틀러는 자살(4.30)했고 일본의 패망도 눈앞이다. 얄타에 이어 포츠담까지 강대국들의 손아귀에 쥐어진 3천만의 생명, “주여, 한민족을 구하소서” 걸으면서도 기도하는 70세 지도자 이승만의 절박한 위기감을 그 누가 알겠으랴!

    또 다시 이승만은 사면초가, 미국 정부만이 아니라 한인동포단체도 밀약폭로를 비난한다. 
    이승만의 오랜 동지 국제정치학자 정한경(鄭翰景,1890 ~ 1985)이 심상치 않은 사태가 걱정되어 안타깝게 말문을 열었다.
    “박사님은 아무런 증거도 없이 너무 큰 일을 저지르셨습니다. 실제로 근거 없는 것으로 밝혀진다면 그 결과가 두렵지 않으십니까?”
    깊은 생각에 빠진 이승만은 고개를 끄덕인다. 맞는 말이다.
    “그렇소. 정박사 말대로 나는 증거가 없소. 그것은 오직 나의 관찰에 따른 신념일 따름이오. 한국을 위하여 내가 틀렸기를 바라오. 만일 비밀협약이 없다면 그 결과에 대하여 나는 기꺼이 모든 책임을 지려하오. 
    그러나 사실이든 거짓이든 지금 우리나라가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므로 그것을 지금 터뜨릴 필요가 있는 것이오. 내가 바라는 것은 얄타 협정에 서명한 국가 수뇌들이 그 밀약을 공식적으로 부인해달라는 것이오. 그것보다 더 나를 기쁘게 할 일은 없소.”
    (정한경 [이승만:예언자이자 정치가](Syngman Rhee: Prophet and Statesman), 한미협회, 1946)

    이승만의 눈은 보통사람과 다르다. 보통사람은 ‘증거 유무’부터 따지고 걱정하지만, 이승만은 ‘사실이든 거짓이든’ 관계없이 ‘한국에 대한 밀약’이란 이슈를 터뜨려야할 절호의 기회 ‘지금’이란 ‘때’를 보고 지체 없이 ‘국제적 핵폭탄’을 적시 만루홈런 치듯 때렸다. 

    「무엇이나 때가 있다....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구약성경 ‘전도서’ 3장)

    항상 기도하는 개신교 신앙인 이승만의 눈은 언제나 이 ‘때’를 놓치지 않았다.
    약육강식의 패권주의 도박판에 올려진 한국의 생명, 얄타회담에서도 포츠담회담에서도 일본식민지 한국문제는 정식 의제로 오르지도 못한다. 어느 도둑이 언제 훔쳐갈지 모르는 막판 투기놀음이 한창인 이때, 가장 유력한 ‘강도’는 구한말 ‘고종을 얼리고 뺨쳐 먹은 러시아 황제’보다 더 무서운 공산당 제왕 스탈린이다. 상하이 임정 대통령으로서 당했던 레닌의 공세에 맞서 발표한 ‘공산당의 당부당’이란 반공논문에서 갈파하였듯이 이승만은 스탈린의 국제공산주의 수법을 미리 막지않으면 안된다. 그 ‘때’가 보이자 소련의 야욕을 세계의 하늘에 펼쳐 보이며 ‘고립무원의 한국’을 국제이슈로 쏘아올린 것이었다. 세계지도에서 사라졌던 나라 ‘한국 독립’ 네 글자가 미사일처럼 솟구쳐 미-영-소의 바둑판을 강타한다.

  • ▲ 세계를 상대로 싸우는 고독한 투사 69세 이승만ⓒ연세대이승만연구원
    ▲ 세계를 상대로 싸우는 고독한 투사 69세 이승만ⓒ연세대이승만연구원
    ★이승만에 붙잡힌 미국과 소련...38선이 남쪽만이라도 살려주다

    유엔창설을 위해 스탈린을 ‘친구’로 끌어안고 이땅저땅 달라는 대로 다 주었던 루즈벨트는 유엔의 꿈을 이루고 죽었다. 그러나 애초부터 ‘소련의 이익’을 앞세워 대한민국 임시정부 승인을 거부하며 미국무부의 친소정책과 유엔을 틀어쥔 소련간첩 앨저 히스는 살아있다. 
    새로 대통령이 된 트루먼도 루즈벨트의 유산을 이어받아 한반도를 소련에 넘길 것인가.
    ‘얄타 밀약설’을 무기 삼아 미국과 소련을 향하여 외롭게 분투하는 이승만의 몸부림은 강대국들이 외면하는 ‘한국 독립’의 생명을 살리려는 마지막 단말마의 비명 그것이었다.

    이승만을 연구하여 연재소설을 쓴 작가 복거일(卜鋸一, 1946~)은 말한다.
    “그 폭로는 오직 우남(雩南:이승만)만이 할 수 있는 모험이었다....멸망한 나라로서는 세상사람들로부터 잊혀지는 것이 가장 두려운 운명이다. 잊혀지지 않아야, 언젠가는 부활이라는 희망을 지닐 수 있다. 우남은 조국이 잊혀지는 것을 막기위해 평생 진력했다. 얄타밀약을 공개적으로 거론함으로써, 그는 미국 시민들과 관료들과 정치가들이 ‘Korea’를 결코 잊지 못하도록 만들었다.”(복거일 [프란체스카] 북앤피플, 2018)
    복거일은 그 성과로 두 가지를 꼽는다. 첫째, 미국정부가 밀약이 없다고 확인해 준 것. 둘째, 소련이 슬그머니 한반도를 장악할 위험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그 성과가 실질적으로 작용한 모습은 ‘38선 획정’ 과정에서 드러났다고 주장한다.
    즉, 미국 정부가 무관심했던 한반도를 이승만의 문제제기로 ‘Korea’를 떠올려 38선을 그었다는 것. 다시 말하면 소련이 다 집어삼키려는 찰나에 ‘남한 반토막’이라도 미국이 구해냈다는 지적이다. 결국 그때 이승만이 그러지 않았으면 남한까지도 동유럽처럼 스탈린의 ‘공산 식민지’가 되었으리라는 진단이다. 필자도 이에 전적으로 동감하면서 그 현장 포츠담(Potsdam)으로 달려가 보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