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총리, 29일 대국민 담화문… 양곡법 거부권 尹에 요청"안 그래도 과잉생산, 쌀값불안 반복… 농업 파탄으로 몰아""연간 1조원 재정부담, 이 돈이면 농촌 인재 5만 명 양성""양곡법은 시장 원리 거스르는 포퓰리즘, 지난 정부도 반대"
  • ▲ 한덕수 국무총리가 29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 한덕수 국무총리가 29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쌀 시장격리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단독으로 통과시킨 가운데, 한덕수 국무총리가 29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건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 총리는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우리 국민이 쌀을 얼마나 소비하느냐와 상관없이 농민이 초과생산한 쌀을 정부가 다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라고 지적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이 수요 대비 3~5% 초과생산되거나 쌀값이 전년도보다 5~8% 이상 하락할 경우 정부가 의무적으로 쌀을 매입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의무매입으로 농업재정이 낭비되고 수요량을 초과하는 쌀이 생산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30년 쌀의 초과생산량이 63만t에 이르고, 이를 정부가 사들이는 데 약 1조4000억원의 재정이 소요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특히 2030년까지 매년 1조원이 넘는 재정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 총리는 "쌀은 우리 국민의 주식이며, 농업과 농촌경제의 핵심이다. 정말 농업을 살리는 길이라면 10조원도, 20조원도 충분히 쓸 수 있다"며 "그러나 이런 식은 안 된다. 안 그래도 지금 우리 쌀산업은 과잉생산과 쌀값 불안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총리는 특히 이 같은 개정안이 시장의 수급 조절 기능을 마비시킨다며 "쌀 가격을 안정시키고 농민을 보호하겠다는 명분과는 달리, 개정안은 더더욱 우리 농업을 파탄으로 몰 것"이라고 우려했다.

    "개정안으로 인해 연간 1조원 이상의 재정부담이 생긴다"고 설명한 한 총리는 "이 돈이면 300개의 첨단 스마트팜을 조성하고, 청년 벤처농업인 3000명을 양성할 수 있다. 농촌의 미래를 이끌 인재 5만 명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 총리는 "농업경쟁력 강화와 청년농업인 육성에 써야 할 재원을 남아도는 쌀 매입에 쏟아부으면 농촌의 혁신은 더욱 멀어진다"며 "과잉생산된 쌀을 정부 창고에 수년간 보관하다가 5분의 1, 1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으로 주정용이나 사료용으로 처분하는 것은 혈세의 낭비"라고 개탄했다. 

    한 총리는 그러면서 "시장원리를 거스르는 '포퓰리즘 정책'은 결코 성장할 수 없다. 이번 개정안은 지난 정부에서도 그런 이유로 이미 반대했던 법안"이라며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는 식으로 다시 추진하는 것은 혈세를 내는 국민들에게 도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한 해결책으로 한 총리는 ▲쌀 소비수요 확대 ▲고품질 쌀 생산체계 강화 ▲밀·콩 등의 작물 재배 농민에게 직불금 지원 ▲가루쌀산업 활성화 등을 제시했다.

    "실패가 예정된 길로 정부는 차마 갈 수 없다"고 전제한 한 총리는 "이에 정부는 우리 쌀산업의 발전과 농업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양곡관리법 개정안 재의' 요구를 대통령께 건의하고자 한다"고 공언했다.

    한편 한 총리는 대국민 담화에 앞서 집권여당인 국민의힘과 당·정 협의회를 통해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관련한 논의를 진행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서 "쌀이 그렇지 않아도 과잉생산 상태인데, 이 법안이 시행되면 쌀 생산량은 더욱 더 늘어날 것"이라며 "헌법상 마지막 남아있는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 드릴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이하는 한 총리의 대국민 담화문 전문이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난 3월 23일 국회에서 처리한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번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우리 국민이 쌀을 얼마나 소비하느냐와 상관없이
    농민이 초과 생산한 쌀은 정부가 다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매수 법"입니다.

    이런 법은 농민을 위해서도 
    농업발전을 위해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동안 정부는 
    이번 개정안과 관련하여,
    문제점과 부작용이 많다고 국회에 지속적으로 설명하였고,  
    법안 처리를 재고해 주십사, 간곡히 요청해 왔습니다.

    이번 법안은 
    농업계에서도 많은 전문가들이
    쌀 산업과 농업의 자생력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한농연, 쌀전업농연합회 등 농업인 단체들도, 
    법안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회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일방적으로 처리되었다는 점을
    저는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

    쌀은 우리 국민의 주식이며, 
    농업과 농촌경제의 핵심입니다.

    정말 농업을 살리는 길이라면, 
    10조원도, 20조원도 충분히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식은 안 됩니다.

    안 그래도 지금의 우리 쌀산업은 
    과잉생산과 쌀값 불안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산업을 더욱 위기로 몰 것으로 우려됩니다.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고, 
    금일 당정 협의를 한 결과, 
    이번 법안의 폐해를 국민들께 알리고,
    국회에 재의요구를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이에, 오늘 저는 이 자리를 빌어 
    국민들께 이번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소상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문제가 많은 법률안에 대한 행정부의 재의요구는 
    올바른 국정을 위해 헌법이 보장한 절차입니다.

    첫째, 개정안은 시장의 수급 조절 기능을 마비시킵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들에게 돌아갑니다. 

    지금도 정부는 
    반복되는 생산과잉으로 가격이 폭락할 때, 
    남는 쌀을 사들이는 ‘쌀 시장격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조치는
    시장이 제 역할을 못하는 긴급한 상황에 한해, 
    최소한의 수준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쌀이 남아도는데도 영구히 무조건 사들이는 것은
    시장의 수급 조절 기능을 더욱 무력화시킵니다.

    공급과잉이 더 심해지고, 
    가격은 더 떨어질 것입니다.

    지금은 어떻게든 쌀 소비를 늘리거나
    품질 좋은 쌀을 생산하고자 노력하는 농민들이 많지만
    앞으로는 그래야 할 이유마저 사라지게 됩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현재 23만톤 수준의 초과공급량이 
    2030년에는 63만톤을 넘어서고,

    쌀값은 지금보다 더 떨어져 
    17만원 초반대에 머무를 것으로, 
    농촌경제연구원은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농업인들이 입게 됩니다.
    특히, 영세농업인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입니다.

    쌀 가격을 안정시키고, 
    농민을 보호하겠다는 명분과는 달리,
    개정안은 더더욱 우리 농업을 파탄으로 몰 것입니다.

    둘째, 미래 농업에 투자해야 할 재원이 사라지게 됩니다.

    개정안에 따른 재정부담은 연간 1조원 이상입니다.

    이 돈이면 300개의 첨단 스마트팜을 조성하고,
    청년 벤처농업인 3000명을 양성할 수 있습니다.
    농촌의 미래를 이끌 인재 5만 명을 키울 수 있습니다. 

    농업경쟁력 강화와 청년농업인 육성에 써야 할 재원을  
    남아도는 쌀 매입에 쏟아부으면
    농촌의 혁신은 더욱 멀어집니다.

    과잉생산된 쌀을 
    정부 창고에 수년간 보관하다가
    5분의 1, 1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으로 
    주정용이나 사료용으로 처분하는 것은 혈세의 낭비입니다.

    소중한 농업재원은
    농촌의 미래 주역인 청년농업인을 지원하고, 
    농업을 미래 신성장산업으로 육성하는 방향으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셋째, 진정한 식량안보 강화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식량안보는 물론 중요합니다.

    최근의 기후변화와 우크라이나전쟁 등으로
    국제 곡물 공급망이 불안해지는 상황이라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이 진정한 식량안보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이미 자급률이 높은 쌀을 더 생산하는 것은 
    합당한 결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해외 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밀·콩 같은 작물의 국내생산을 확대하는 것이 
    국가 전체와 농민을 위한 결정입니다.

    쌀만 가지고 식량안보를 따지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국민들의 먹거리 수요 변화에 맞춰, 
    농축산물·수산·가공품 등  
    다른 분야의 수급을 균형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개정안은 
    남아도는 쌀만 더 생산하게 하고
    부족한 작물의 자급률을 높이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넷째, 농산물 수급에 대한 과도한 국가 개입은 
    이미 해외에서도 실패한 정책입니다. 

    1960년대 유럽에서도 
    가격 보장제를 실시했다가
    생산량 증가와 가격 하락에 따른 농가소득 감소 부작용으로
    결국 중단했습니다.

    태국도
    2011년 가격개입정책을 펼쳤다가, 
    수급 조절의 실패와 과도한 재정부담으로 이어져 
    3년 만에 폐지했습니다.

    시장원리를 거스르는 
    '포퓰리즘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이번 개정안은
    지난 정부에서도 그런 이유로 이미 반대하였던 법안입니다.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는 식으로 
    다시 추진하는 것은
    혈세를 내는 국민들에게 도리가 아닙니다. 

    존경하는 농업인 여러분,

    지난 정부는 
    정책 실기로 쌀값 대폭락을 초래한 바 있습니다.

    쌀값 안정과 수급 균형 회복을 위한
    우리 정부의 의지는 확고합니다.

    지난해에도 
    역대 수확기 최대물량인 45만톤의 시장격리 대책을 통해 
    쌀값을 빠르게 안정시킨 바 있습니다.

    오늘 정부와 당은 
    농업 미래 발전과 쌀 수급 안정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였습니다. 

    우리 정부는 
    시장을 왜곡하는 정책이 아니라, 
    진정으로 농업을 살리는 다양한 지원정책을 통해 
    식량 생산의 수급 균형을 맞춰나가겠습니다.

    쌀 소비 수요를 최대한 확대하고, 
    고품질 쌀 생산체계를 강화하는 등, 
    쌀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집중하겠습니다. 

    더이상 쌀만 생산해서는 안 됩니다.

    밀이나 콩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는 농민들에게도 
    직불금을 지원하겠습니다. 
    수입 밀을 대체할 수 있는 가루쌀산업도 활성화시키겠습니다. 

    미래 농업‧농촌의 발전을 위해 
    과감히 투자하고 지원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 
    그리고, 농업, 농촌, 농민의 삶과 직결된 일로
    정치적 이익을 추구해서는 안됩니다. 

    개정안은 
    국민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실패가 예정된 길로 
    정부는 차마 갈 수 없습니다. 

    이에 정부는 
    우리 쌀산업의 발전과 농업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양곡관리법 개정안 재의' 요구를 
    대통령께 건의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결정은
    국익과 농민을 위하고,
    올바른 길로 가기 위한 결단이라는 점을,

    국회와 농업계,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서,
    이해해 주시기를 간곡히 요청 드립니다.

    앞으로 정부는 
    생명산업인 농업과 공동체의 터전인 농촌을 
    진정 위하는 방향으로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