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500년 시간 응축…국립국악원, 16~21일 송년공연
  • ▲ '임인진연' 프레스 리허설이 15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렸다.ⓒ국립국악원
    ▲ '임인진연' 프레스 리허설이 15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렸다.ⓒ국립국악원
    대한제국의 마지막 궁중잔치 '임인진연'이 120년 만에 부활한다.

    국립국악원(원장 김영운)은 송년공연 '임인진연(壬寅進宴)'을 16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에 올린다.

    1902년 12월 3일(양력) 경운궁(덕수궁) 관명전에서 거행된 '임인진연'은 고종의 즉위 40주년과 나이 60을 바라보는 망륙(望六)인 51세를 기념하기 위한 잔치로, 황태자(후일 순종황제)가 다섯 차례에 걸쳐 간청한 끝에 성사됐다.

    진연은 단순한 잔치가 아니었다. 정치적으로 혼란스런 국내외 정세 속에서 황실의 위엄을 세우고 자주국가 대한제국을 알리기 위해 열렸다. 당시 고종은 황태자에게 "백성들이 우선이니 모든 의식절차를 간소하게 하여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 ▲ '임인진연도' 중 '내진연'.ⓒ아모레퍼시픽미술관
    ▲ '임인진연도' 중 '내진연'.ⓒ아모레퍼시픽미술관
    김영운 국립국악원장은 "120년 전 우리나라는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국력이 쇠잔해가던 무렵이었다. 고종은 진연을 통해 독립국으로서 위상을 세계 만방에 알리고자 했다"며 "궁중의례의 진면목, 시대적 상황과 고종의 절절한 심정을 함께 느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진연(궁중에서 베푸는 잔치)은 크게 남성 신하들과 함께 공식적인 행사를 올린 '외진연'과 황태자와 황태자비, 군부인, 좌·우명부, 종친 등과 함께한 '내진연'으로 나눠 행해졌다. 이번 공연에서는 예술적인 측면이 강한 '내진연'을 처음 재현한다.

    국립국악원은 '의궤'와 '도병(圖屏, 그림 병풍)' 등 당대의 기록 유산에 근거해 진연을 되살린다. 무대는 관객이 황제의 시선에서 진연을 마주할 수 있게 객석을 황제의 어좌로 설정했으며, 긴 의례와 음식을 올리는 절차 등은 생략하고 규모를 6분 1 정도 축소했다. 연출과 무대 디자인은 박동우 홍익대학교 교수가 맡았다.

    김영운 국립국악원장은 "충실하게 기록물을 따랐다. 공연 물품과 의상은 덕수궁 화재로 소실됐지만 진연 관련 내용이 상세하게 남아있다. 의궤에는 잔치에 소요되는 재원, 춤을 누가 췄고 행사가 끝난 후 어떤 포상이 주어졌는지 생생히 기록돼 있다"고 설명했다.
  • ▲ '임인진연' 프레스 리허설이 15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렸다.ⓒ국립국악원
    ▲ '임인진연' 프레스 리허설이 15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렸다.ⓒ국립국악원
    박동우 연출은 "두 갑자가 지난 임인년을 맞아 재창작보다는 재현에 중점을 두고 1년 이상 준비했다"며 "오전 9시부터 시작한 내진연은 300여 명의 진행요원과 277명의 정재여령(여자무용수)이 참여한 큰 잔치였다. 극장 안에서 최대한 그때의 분위기와 정서를 살리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국립국악원 정악단과 무용단은 황제에게 일곱 차례 술잔을 올린 예법에 맞춰 공연을 선보인다. 궁중무용은 29가지 중 5개 '봉래의·헌선도·몽금척·향령무·선유락'과 궁중음악 '보허자·낙양춘·해령·본령·수제천·헌천수' 등을 감상할 수 있다.

    1894년 갑오왜란과 1895년 을미사변을 겪은 고종은 각국 공사관에 둘러싸인 경운궁으로 조정을 옮기고 1897년 10월 4일 대한제국을 선포했다. 대한제국은 일본 도쿄보다 3년 먼저 전신·전화·전등·전차 4대 근대시설을 갖춘 국가였다.

    김 원장은 "민족 최고의 정제된 예술 작품을 국민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이라며 "자주국가를 염원했던 대한제국의 찬란한 궁중문화를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소중한 문화유산의 가치와 문화를 통한 화합의 정신이 널리 전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