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6:3 비율, 사실상 7:2로 깨져… "기울어진 운동장, 더 기울어졌다" 지적
  • ▲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신임 이사장에 선출된 권태선 이사. ⓒ뉴시스
    ▲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신임 이사장에 선출된 권태선 이사. ⓒ뉴시스
    지난 11일 방송통신위원회가 의결한 12기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 9명 가운데 당초 '야당 몫'으로 선임된 것으로 알려졌던 이사가 여권 친화적 행보를 보인 '여당 성향'이라는 지적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방문진 이사는 통상 여·야 6대 3 비율로 구성돼 왔는데, 이번 방통위 결정으로 '여권 친화적' 이사가 사실상 7명으로 늘어남에 따라, 향후 MBC 내 여당의 '입김'이 더 세질 것이라는 우려가 야권 안팎에서 흘러 나오고 있다.

    방문진은 공영방송 MBC의 대주주이자 관리감독기구로, 방통위가 공모를 거쳐 선임한 인물들로 이사진이 꾸려진다.

    "B씨 선임으로 기울어진 운동장, 더 기울어져"

    방문진 사정에 밝은 A씨는 23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연임에 실패한 '야당 몫' 최기화 이사 자리에 B씨가 새로 선임됐는데, B씨는 2012년 MBC 총파업 때 참여를 독려하는 연판장을 돌리고 2017년 당시 김장겸 MBC 사장 퇴진 운동에도 동참했던 인물"이라며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말들이 나오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방문진 이사를 선임하는 방통위 상임위원 5명이 여·야 3대 2 비율로 구성된다는 점을 전제한 A씨는 "만약 야당 추천 방통위 상임위원들이 B씨의 과거 행적을 알았더라면 이분을 뽑지 않았을 것"이라며 "아마도 MBC 사정을 잘 모르는 상임위원들이 본인을 '보수'라고 칭하면서 공정방송을 위해 박성제 MBC 사장을 견제하겠다는 B씨의 말만 믿고, 덜컥 야당 몫으로 선임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A씨는 "듣자하니 B씨가 방통위 면접을 볼 때 김장겸 전 사장을 따르는 사람들로는 다수의 목소리를 내기 힘드니 자기 같은 사람도 뽑아서 스펙트럼을 넓히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원래 B씨가 친언론노조 성향으로 사장직에도 입후보했던 사람인데, 최승호 사장 부임 이후 개인적 사유로 징계를 받아 저쪽 진영과 틀어졌다는 소문도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최승호 전 MBC 사장이나 박성제 사장과 사이가 틀어졌다는 정도로 B씨가 전향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방문진 이사직에 지원한 개인적인 동기는 따로 있을지 모르나, 과거 행적을 보면 확실히 저쪽 성향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A씨는 "이번 방문진 이사 선임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더 기울어졌다"며 "야권이 수적으로 불리해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A씨는 또 "이번 일이 발생하기 전에 이미 전조가 있었다"며 지난해 있었던 KBS 보궐이사 선임 건을 예로 들었다.

    A씨는 "지난해 천영식 KBS 이사가 총선 출마를 이유로 사퇴하면서 당시 자유한국당이 이동욱 전 월간조선 기자를 추천했으나 방통위가 비토를 놨고, 두 번째로 추천한 차기환 변호사도 퇴짜를 놨다"며 "세 번째로 추천한 서정욱 변호사가 겨우 임명됐는데, 결국 '정치적 후견주의를 배제해야 한다'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워 자기들이 보기에 거부감을 주는 인사는 무조건 반대하는 다수의 횡포를 부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고향 방통위 상임위원이 '야당 몫' 이사로 B씨 추천설"

    앞서 부적격 후보가 '야당 몫' 방문진 이사로 선임됐다며 B씨의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던 MBC노동조합 측은 "1987년 이후 철칙처럼 지켜왔던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선임 비율이 하루 아침에 깨졌다"며 "지배구조를 바꾸자는 방송법 개정안이 아직 조율도 되지 않은 상황에 이럴 수는 없다"고 분개했다.

    노조 관계자 C씨는 "저쪽 진영에서는 '여야 6대 3 불문법이 어디 있느냐' '정치적 후견주의를 배제해야 한다'며 애당초 '여당 몫' '야당 몫'이라는 말 자체가 터무니 없는 이야기라고 말하고 있으나, 지금껏 여야 6대 3 관행을 잘 지켜오다가 이제 7대 2로 여당에 더 유리한 구도가 되자 말을 싹 바꾼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권이 사실상 지금의 7대 2 구도를 정당화 시키기 위해 정치적 후견주의를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강조한 C씨는 "애당초 차기환·함윤근 변호사처럼 파이팅 넘치고 방송 정상화에 대한 의지가 분명한 후보들이 야당 몫 이사로 거론됐으나 저쪽에서 다 비토를 놨다"며 "결국 저쪽과 타협하는 과정에서 B씨 같은 사람이 선임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C씨는 "야당 추천 방통위 상임위원 중 한 분은 신문 출신이고 나머지 한 분은 방송 출신"이라며 "항간에는 B씨와 동향인 방송 출신 위원이 B씨를 야당 몫으로 추천했고, 신문 출신 위원이 '방송은 당신이 잘 아니 그렇게 하라'고 합의했다는 말이 나온다"고 주장했다.

    C씨는 방통위 상임위원이나 방문진 이사 모두 개인적으로 뭘 잘해서 그 자리에 임명된 게 아니라며 "이렇게 자기 연줄로 누구를 끌어주고 선임하는 구조는 올바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한 C씨는 "방통위 상임위원들은 B씨가 그런 인물인 줄 몰랐다고 해명했으나, 후보가 수백명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이름만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그동안 뭘 했는지 모르겠다"며 "B씨의 과거 행적에 대한 검토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해당 위원들에 대한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수의 권리 인정하지 않아 담합 자초… '인사 참사' 발생"

    강규형 전 KBS 이사는 "직접 당사자는 아니지만 옆에서 봐도 B씨는 언론노조의 MBC 장악에 기여한 '가해자'"라며 "이번 인사는 언론노조와 싸우면서 고생하고 피눈물 흘린 사람들의 얼굴에 흙더미를 던지는 짓"이라고 비난했다.

    강 전 이사는 "B씨가 방문진 이사로 선임된 날, 김장겸 전 MBC 사장은 잠을 못 이뤘다고 하시더라"며 "나도 분통이 터지는데 MBC 사람이라면 정말 피가 거꾸로 솟을 일"이라고 말했다.

    강 전 이사는 "항간에는 야당 측 방통위 상임위원 두 사람의 반란이라는 말도 나오는데, 내가 보기엔 담합이라고 표현하는 게 낫다"며 "담합을 했어도 문제가 없는 사람을 뽑았다면 그냥 넘어갈 일인데, 도저히 뽑아서는 안 되는 사람을 방문진 이사로 뽑았다는 게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 전 이사는 "언론노조의 방송 장악 시도에 저항하면서 잘리고 인생 버린 사람 많다"며 "그런데 당시 언론노조 편에 섰던 사람을 아무런 검증도 없이 방문진 이사로 선임했으니 얼이 빠져도 한참 빠진 것"이라고 개탄했다.

    강 전 이사는 "주위분들에게 물어보니 B씨가 논공행상 중 박성제 MBC 사장과 사이가 안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줄곧 언론노조 편에 있다가 막판에 박 사장과 사이가 안 좋아졌다고 '야당 몫' 이사 자리를 안겨주는 게 말이 되나.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그냥 자기가 살아온 대로 살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강 전 이사는 "이번에 방통위에서 여권이 싫어하는 사람을 뺐다고 하는데, 오히려 여권이 싫어하는 사람을 야당 측 이사로 뽑아야 하는 것"이라며 "전투력도 없는 사람들을 백날 앉혀 놓으면 뭐하나? 여당만 유리해진다. 방통위 상임위도 그렇고, KBS 현 이사진도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강 전 이사는 "다수의 폭력으로 자기들은 마음대로 이사를 뽑아놓고, 야권 추천 인사들은 안 된다고 하는 건 공평하지 못한 처사"라며 "이건 관습법이다. 당연히 야권의 몫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전 이사는 "결론적으로 소수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아 이런 담합의 여지가 생겨났고, 문제 있는 사람을 담합으로 뽑아 더 큰 사단이 난 것"이라며 "이러다 이달 안으로 선임될 KBS 이사도 야권의 주장이 철저히 묵살돼 여권이 싫어하는 후보들이 죄다 밀려날까 우려된다"고 걱정했다.

    "'정치적 후견주의 배제'는 야권 퇴출 위한 꼼수"

    박한명 미디어연대 정책위원장은 "KBS와 EBS 이사, MBC 방문진 이사 선임과 관련, 언론노조와 친여단체들이 정치적 후견주의를 끊어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기들이 방송권력을 독점하려는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박 위원장은 "공영방송 사장이나 이사 선임에 정치적 후견주의를 배제해야 한다는 얘기는 우파세력이 공영방송 근처에도 못 오도록 다리를 끊어놓겠다는 말과 동일하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여권이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한다며 추진하는 국민추천위원회 방식은 사기성이 농후한 방식"이라며 "마치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회 이사를 국민이 직접 제 손으로 뽑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대단히 독립적이고 마치 국민 모두의 뜻이 반영될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그야말로 착각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장은 "언론노조나 민언련 등 외곽의 친여세력은 연대세력이니만큼 큰 틀에서는 사실상 민주당과 '한 편'"이라며 "국민추천위원회 방식은 민주당 몫이 외곽세력에게 더 많이 돌아간다는 차이가 있을 뿐, 보수정당의 영향을 배제한다는 말과 같다"고 분석했다.

    MBC노조 관계자는 "지난 20일 방문진 새 이사장으로 호선된 권태선 이사는 직무수행계획에 방문진의 MBC 사장 선출규정을 바꾸겠다고 공언한 인물"이라며 "앞으로 방송법 개정에 대한 여야 합의 없이 MBC 사장 선임과정에 시민사회단체가 주축이 된 국민대표단이 개입하는 방문진 규정 개정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우려했다.

    앞서 방통위는 지난 11일 후보자 22명 가운데 △강중묵 전 부산MBC 사장 △권태선 전 한겨레 편집인 △김기중 법무법인 동서양재 변호사 △김도인 현 방문진 이사(연임) △김석환 전 한국인터넷진흥원장 △박선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윤능호 전 MBC 기자 △임정환 전 MBC 보도본부 센터장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9명을 12기 방문진 이사로 선임했다. 감사에는 박신서 전 MBC 편성국장이 임명됐다. 이들의 임기는 3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