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창업자' 정주영 20주기에 되돌아보는 '인간 정주영'과 '현대' 이야기
  • 박정희 시대 ‘한강의 기적’은 정주영(1915~2001)과 현대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조선소도 배 만든 경험도 없이 500원짜리 지폐 속 거북선을 흔들며 따낸 조선(造船)사업, 단군 이래 최대의 역사(役事) 경부고속도로, 사상 최대의 외화벌이 사우디 주베일 항만 공사 수주 등, 정주영과 현대의 역사는 ‘박정희 연출, 정주영 주연’의 한강의 기적의 역사이고 대한민국 경제발전사였다. 현대는 1940년 자동차수리업으로 출발해 자동차·건설·중공업 등으로 확장하며 3대를 이어 한국경제의 버팀목이자 외화수입원(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올해는 고 정주영(1915~2001) 명예회장이 타계한 지 20년이 된 해다. 경제부 기자로 출발해 언론사 CEO가 되기까지 40년 동안 정 명예회장을 밀착취재한 저자가 정주영의 간추린 평전을 소설체로 소개한 책이 나와 눈길을 끈다.

    '현대 오디세이아(도서출판 기파랑 刊)'는 정주영 사업력(歷)의 인상적인 장면들을 엄선한 ‘정주영, 일곱 개의 신화’, 현대를 창업하고 위기를 극복하며 키워간 과정을 되짚는 ‘정주영과 현대’, 기업 외 활동과 사적인 면모를 스케치한 ‘현대사의 거목’ 3부로 구성됐다.

    "된다 90%, 되게 한다 10%"


    정 명예회장 생전의 두 저서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2009)'와 '이 땅에 태어나서(2015)' 등으로 익히 알려진 그의 기업 마인드를 한마디로 간추리면, "성공한다는 확신 90퍼센트, 성공해 내겠다는 노력 10퍼센트"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좌절과 실패인들 없었을까. 제1부가 현대의 성공신화를 △조선사업 진출 △국민차 포니 △중동 건설 진출 △불도저 같은 추진력 △소양강 사력(砂礫)댐 △‘정주영 공법’으로 완성한 서산간척지 등으로 요약 소개했다면, 제2부 ‘정주영과 현대’는 미미한 시작과 이어지는 시련들 위주로 구성했다.

    가출한 시골 청년이 잡역부와 쌀가게 배달원으로 시작해 쌀가게 주인, 자동차수리업과 토건(土建)으로 사업영역을 넓혀 나가고, 경제성장기에 건설로 굴지 대기업으로 성장하고, 10·26과 5공 이후 시련을 겪는 과정을 시간순으로 살펴나간다. 현대양행(현대중공업 전신)을 빼앗기고, 현대전자(SK하이닉스 전신)를 매각하고, ‘왕자의 난’으로 그룹이 공중분해될 뻔하는 등 현대호(號)의 위기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전개된다.

    재계 쌍두마차이면서 ‘출신이 달라도 너무 다른’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와의 38년 전 대담(제18장)을 다시 읽노라면 시장경제·자유경쟁의 가장 큰 적(敵)은 그때나 지금이나 ‘규제와 간섭’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인간 정주영’의 여린 구석들

    제3부 ‘현대사의 거목’은 정 명예회장이 기업 외 영역에서 일군 성과들을 조명한다.

    개인 주식을 출연해 공익재단 ‘아산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한 일, 88서울올림픽 유치(민간)위원장으로서 일궈낸 올림픽 유치의 감격, 억지춘향으로 일해재단 이사장을 맡았으나 아웅산 유가족 지원이라는 당초 설립 취지가 변질돼 가는 것을 보며 겪는 마음고생, 정당을 창당하고 총선에서 바람을 일으켰으나 대통령에 출마해 쓴잔을 들이켠 일 등이 소개된다. 정 명예회장에 내내 존경 어린 마음을 품고 있는 저자이지만, 유일하게 ‘정치인 정주영’에 대해서만은 회의적인 평가를 숨기지 않는다.

    대통령 선거 낙선 후 황혼기에 접어든 정 명예회장이 다시금 가장 빛난 순간은 단연 1998년 두 차례에 걸친 ‘소떼몰이 방북’이다. 앞서 1989년, 분단 후 처음으로 고향인 북한을 방문해 금강산 개발을 논의한 지 9년 만이었고, 연이은 방북 성과는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으로 결실을 맺는다. 소떼몰이 방북을 외신은 “고향을 찾아가는 오디세우스의 모험과도 같다”고 놀라워했고, 이 발언은 그대로 이 책 제목 '현대 오디세이아'가 됐다.

    정주영 그도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안고 살아야 하는 여린 구석이 역설적으로 거목에 생기를 더한다. 그중 가장 아픈(그러나 없어진) 손가락은 단연 독일 유학중 31세 젊은 나이에 먼저 세상을 떠난 넷째동생 정신영일 터. 신영의 이른 죽음은 그가 타계 때까지 기자를 겸했고 언론인 모임 관훈클럽의 창립 멤버였다는 데서 관훈클럽 정신영기금이라는 선한 영향력으로 결실을 맺었다. 정신영이 독일 체류 시절 송고한 기사 중, 동독 탈출 음악인(지휘자 호르스트 슈타인)을 인터뷰한 기사를 책에 전재했다.

    20주기에 들려온 낭보들


    현대가(家)는 정 명예회장 말년에 현대·현대차·현대중공업그룹으로 분할되며 2세 경영 체제를 완성했고, 3세 이양이 순조롭게 진행중이다. 건설로 성장한 현대이지만 그 모태는 1940년 설립한 자동차수리공장 ‘아도서비스’다. ‘나라의 얼굴, 달리는 국기(國旗)’ 자동차에 매진한 현대는 정주영 창업자 20주기인 2021년, 2세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미국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경사를 맞았다.

    헌액식이 열린 7월 23일은 마침 2020 도쿄올림픽 개막일이었고, 아버지를 대신해 헌액식에 참석한 3세 정의선 그룹회장은 귀로에 도쿄의 올림픽 양궁 경기장으로 직행했다. 한국 양궁팀이 최초의 혼성전 금메달을 포함, 5개 금메달 중 4개를 싹쓸이했고, 정몽구-정의선 2대에 걸친 아낌없는 양궁 후원이 현대차의 경영방침과 오버랩되며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책은 현대 3세 정의선 회장과의 서면 인터뷰로 마무리한다.

    ■ 저자 소개


    저자 백인호는 매일경제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해 매일경제 편집국장, MBN 대표이사, YTN 사장, 광주일보 사장 등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YTN 1300일 드라마', 장편소설 '삼성 오디세이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