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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마르크시즘을 '지식인의 아편'으로 규정한 레이몽 아롱

'참여하는 방관자' 레이몽 아롱의 자유지성 대담집 출간
1980년 제기된 프랑스 포퓰리즘, 2021년 한국서 되풀이
한국 586세대의 40년 후진성을 보여주는 거울 같은 명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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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07-28 13:58 | 수정 2021-07-28 14:20
“정직한 좌파는 머리가 나쁘고, 머리가 좋은 좌파는 정직하지 않다. 모순투성이인 사회주의의 본질을 모른다면 머리가 나쁜 것이고, 알고도 추종한다면 거짓말쟁이다.” (『지식인의 아편』에서)

좌파의 본질을 이처럼 명쾌하게 꿰뚫은 말이 다시 있을까. 마르크스주의를 ‘지식인의 아편’이라고 일축한 레이몽 아롱이 무려 1955년에 한 말이다.

길거리 대신 책상에서, 깃발 대신 펜으로

평생 강단에서는 철학자·역사가·사회학자로서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사상을 정교화하고, 밖에서는 언론인으로서 전체주의에 대항하며 필봉을 휘두른 레이몽 아롱(Raymond Aron, 1905~83)은 ‘참여하는 방관자(Le spectateur engagé)’를 자처했다. 지식인으로서 빗나간 현실에 눈감지 않되, 그 참여의 방식은 깃발이나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가는 방식과는 달라야 한다는 그의 실천은 해방정국, 4·19, 6·10, 그리고 최근에는 ‘촛불’을 목도한 우리에게도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프랑스 ‘앙텐 2TV’ 방송은 1980년 12월, 75세의 레이몽 아롱과 ‘68세대’인 30대 초반의 두 학자 장루이 미시카(경제학·언론학), 도미니크 볼통(사회학자)과의 1 대 2 대담을 3부작으로 방영한다. 8개월 동안 준비하고 실행한 대담을 책에 걸맞게 다듬어 이듬해 『참여하는 방관자』로 출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2년 『20세기의 증언』(박정자 옮김)으로 소개됐던 것을 개정판 『자유주의자 레이몽 아롱』(박정자 옮김, 기파랑, 2021)으로 새로이 내놓는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면 우정을 간직하기 어려운 시대

1905년생, 장폴 사르트르와 동갑내기로 파리 고등사범학교 동기동창인 레이몽 아롱은 20세기 전체주의의 위협의 산 증인이다. 유대계 프랑스인으로 태어나 10대에 1차대전을 겪고, 히틀러가 떠오르던 시기 청년으로서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했으며, 2차대전으로 프랑스가 점령당하자 런던의 드골 망명정부의 <자유 프랑스>지에 투신하면서 언론인의 길에 들어섰다. 전후 프랑스의 혼란, 소련·중공의 위협과 6·25전쟁, 베트남과 알제리의 탈식민 전쟁, 1968년 5월, 미·소 양강의 냉전 등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목도하며 반(反)전체주의 투사가 됐다. 6·25 전쟁에 대한 입장 차이로 친구인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 알튀세 등으로부터 결별당했다.

“요즘 세상은 정치적 선택이 다르면 우정을 간직하기 어려운 시대인 것 같습니다. 정치란 아마도 너무나 심각하고 비극적인 것이어서 우정이 그 압력을 감당하기 어려운가 봅니다. 나와 사르트르의 관계에서 그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186~187쪽)

아롱과 사르트르는 만년인 1979년에 베트남의 ‘보트피플’ 인권 문제로 손을 잡으며 극적으로 화해하지만, 사르트르가 1980년, 아롱이 1983년 타계함으로써 소련과 동구권의 몰락을 보지 못한다.

프랑스의 단결과 자유세계의 미래

이 책은 레이몽 아롱이 그 ‘68 세대’ 두 젊은 학자 장루이 미시카, 도미니크 볼통과 1980년 말에 가진 TV 3부작용 1 대 2 대담을 책에 걸맞게 손질해 출간한 것이다. 원제 『참여하는 방관자』, 우리나라에는 1982년 『20세기의 증언』(박정자 옮김)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소개되었던 것을 40년 만에 『자유주의자 레이몽 아롱』이라는 제목으로 개정 출판한다.

대담 당시 레이몽 아롱은 75세, 두 학자는 30대였다. 젊은 학자들의 대담 준비와 질문은 가차없고, 레이몽 아롱도 때로 격하게 반응한다.

“당신의 흥분과 열정은 여하튼 매우 상대적이군요. 흥분이라고 해 봤자 그것은 절반의 흥분 아닌가요?” (볼통)

“웃음이 나오네. 들어 보시오, 나를 막 몰아붙여서 격하게 만드는군요.” “내가 혐오하는 줄 뻔히 알면서 나의 글쓰기 습관을 빌미로 나를 비난하는 당신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군요.” “진심으로 하는 얘깁니까? 지금 내 얘기를 다 들었고, 그리고 책을 다 읽고서도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습니까?” (아롱)

“내 말씀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화부터 내시다니요.” (장루이)

열띤 논쟁의 결과는 그러나 ‘상호 재발견’이다. 미시카와 볼통은 책 서문에서 “우리의 마음을 새삼 움직인 것은 레이몽 아롱의 따뜻한 인간미였다. 이 대화에서 우리는 진행중인 역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진실을 밝히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진 한 민감한 사람을 만났다”(24쪽)고 고백한다. 레이몽 아롱도 손수 쓴 결론에서 “두 명의 친구를 새로 얻었다는 말로 대화를 끝냈으면 한다. 나는 두 친구를 설득하지는 못했으나, 그들에게 풍요로운 회의(懷疑)의 정신은 불어넣어 줬다고 자부한다”(482쪽)고 화답한다.

한국의 586, 그 40년의 지체

대담 이듬해인 1981년은 프랑스 대통령 선거의 해이기도 했다. 선거에서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이 당선되자 레이몽 아롱은 선거 후 시점에서 젊은 두 학자와의 가상 문답을 새로 집필해 책의 결론으로 삼았다. 놀라운 것은, 당시 아롱이 우려하던 현상들이 정확히 40년 지난 지금 한국에서 판박이처럼 벌어지고 있다는 것.

“가난한 사람들을 부유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부자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습니다. 가장 엄중한 세제도 끝내 인플레를 막지 못했습니다.”

“공무원 20만 명을 늘리는 데는 지금 당장은 별로 비싼 값이 들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 국고 부담은 해가 갈수록 점점 무거워질 겁니다. 공무원은 일의 필요도에 따라서 늘려야지, 실업 퇴치를 위해 공무원 수를 늘려서는 안 됩니다. 일은 적게 하면서 돈은 더 많이 벌게 하는 방법은 있을 수 없습니다.”

“국가는 불의의 사고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사람들만을 보호해 주고, 자신을 지킬 수단을 갖고 있는 그 외의 다른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 기업을 통한 사회보장 자금 지출은 언젠가 한계에 이를 테니까요.”

“오늘날 새로운 권력자들은 과거의 체제를 전제적 체제로 몰아붙입니다. 그들은 이번의 미테랑 선거를 1944년(한국의 경우 1945년)의 해방에라도 비교하고 싶을 겁니다. 새로운 권력자들도 과거의 지배자들이 했던 것과 같은 권력 남용을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상 471~477쪽)

히틀러의 극우든 스탈린·마오쩌둥의 극좌든, 전체주의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거나 지리멸렬한 오늘, 『자유주의자 레이몽 아롱』은 역사를 통찰하는 혜안과 ‘우리 안의 전체주의’에 대한 경계와 더불어, 우리 사회 586의 ‘40년의 지체’를 비춰 주는 거울로 다시금 빛난다.


■ 저자 소개
저자 레이몽 아롱(Raymond Aron, 1905~1983)은 프랑스의 언론인이자 사회학자·역사가·철학자이고, 20세기를 대표하는 자유주의 우파 지식인이다. 파리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동갑내기 장폴 사르트르와 동기동창으로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했다. 히틀러 집권 직전 독일에 유학했고, 귀국 후 고교 교사와 툴루즈 대학 교수로 있던 중 2차대전에 참전했다.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런던으로 탈출, 드골이 이끄는 자유프랑스위원회의 기관지 <자유 프랑스>에 합류함으로써 언론인의 길에 들어섰다. 종전 후 1947년부터 30년간 <피가로>지 논설위원으로 있으면서 동시에 국립행정학교(ENA), 소르본 대학교 등의 교수를 겸임했다. 젊은 시절 잠깐 좌파 운동에 참여한 것을 제외하고는 평생 전체주의와 좌파 이념에 맞서 필봉을 휘둘렀다. 『지식인의 아편』에서 서구사회 내 마르크시스트들을 비판하여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등과 결별했다. 『산업사회에 관한 18개의 강의』, 『민주주의와 전체주의』, 『환상적 마르크시즘』 등의 저서가 있다.

대담자 장루이 미시카(Jean-Louis Missika, 1951~ )는 알제리 태생의 프랑스 정치학자, 미디어사회학자이며 후에 파리 부시장을 지냈다. 대담자 도미니크 볼통(Dominique Wolton, 1947~ )은 카메룬 태생의 프랑스 사회학자이며, 후에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소장을 지냈다.

옮긴이 박정자는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이 대학에서 사르트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상명대학교 명예교수이다. 『시선은 권력이다』, 『이것은 정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빵을 먹을 수 있는 건 빵집 주인의 이기심 덕분이다』, 『로빈슨 크루소의 사치 다시 읽기』 등 다수의 저서와 페이스북, 출판사업을 통해 따끈따끈한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을 인문학적으로 조명, 재해석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바로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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