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한양 중심부서 세종시대 천문시계 등 다양한 금속유물 동반 출토
  • ▲ 서울 공평구역 제15⋅16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 내 유적(나 지역)에서 발굴된 한글 금속활자. ⓒ문화재청
    ▲ 서울 공평구역 제15⋅16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 내 유적(나 지역)에서 발굴된 한글 금속활자. ⓒ문화재청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훈민정음 창제 당시 표기가 반영된 가장 이른 시기의 한글 금속활자 1600여점이 발견됐다.

    29일 문화재청은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수도문물연구원이 발굴조사 중인 '인사동 79번지 공평구역 제15⋅16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 내 유적(나 지역)'에서 항아리에 담긴 ▲조선 전기에 제작된 금속활자 1600여점과 ▲세종~중종 때 제작된 물시계의 주전(籌箭)을 비롯해 ▲세종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1점 ▲중종~선조 때 만들어진 총통(銃筒)류 8점, 동종(銅鐘) 1점 등의 금속 유물이 한꺼번에 같이 묻혀있는 형태로 발굴됐다고 발표했다.

    유물이 나온 장소는 종로2가 사거리의 북서쪽으로, 탑골공원 서쪽 방향에 위치해 있다. 종로 뒤편에 있는 피맛골과 인접한 곳이다.

    이 곳은 조선 전기까지 한성부 중부(中部) 견평방(도성 내 경제문화중심지)에 속했다. 주변에 관청인 의금부(義禁府)와 전의감(典醫監: 의료행정과 의학교육을 관장하던 관청)을 비롯해 왕실의 궁가인 순화궁(順和宮: 순화공주를 위해 지어졌다고 하는 궁), 죽동궁(竹洞宮: 명온공주를 위해 지어졌다고 하는 궁) 등이 위치해 있었다.
  • ▲ 한글 금속활자 등 조선시대 금속 유물이 대거 출토된 지역. ⓒ문화재청
    ▲ 한글 금속활자 등 조선시대 금속 유물이 대거 출토된 지역. ⓒ문화재청
    동국정운식 표기 금속활자, 최초 실물 확인

    출토된 유물들은 현재 1차 정리만 마친 상태로,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관해 보관 중이다.

    이번 유물 발굴은 조선 전기 다종다양한 금속활자가 한 곳에서 출토된 첫 사례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훈민정음 창제 시기인 15세기에 한정돼 사용되던 동국정운식 표기법을 쓴 금속활자가 실물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한글 금속활자를 구성하는 대자(大字), 중자(中字), 주석(註釋) 등에 사용된 소자(小字), 특소자가 모두 출토된 것도 최초의 사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동국정운은 세종의 명으로 신숙주, 박팽년 등이 조선한자음을 바로잡기 위해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표준음에 관한 운서(韻書)로, 중국의 한자음을 표기하기 위해 사용된 ㅭ, ㆆ, ㅸ 등이 기록됐다.
  • ▲ 공평구역 제15⋅16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 내 유적(나 지역)에서 출토된 연주활자. ⓒ문화재청
    ▲ 공평구역 제15⋅16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 내 유적(나 지역)에서 출토된 연주활자. ⓒ문화재청
    '을해자'보다 20년 앞선 '갑인자' 추정 활자 출토

    이번 발굴에서는 전해지는 예가 극히 드문, 두 글자를 하나의 활자에 표기해 연결하는 어조사의 역할을 한 '연주활자(連鑄活字)'도 10여점 출토됐다. 연주활자는 한문 사이에 자주 쓰는 한글토씨('이며' '이고' 등)를 인쇄 편의상 한 번에 주조한 활자를 가리킨다.

    현재까지 전해진 가장 이른 조선 금속활자인 세조 '을해자(1455년)(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보다 20년 이른 세종 '갑인자(1434년)'로 추정되는 활자가 다량으로 확인된 것은 유례없는 성과라는 게 문화재청의 설명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현재 금속활자들의 종류가 다양해 조선 전기 인쇄본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던 여러 활자들의 실물이 추가로 확인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한글 창제의 실제 여파와 더불어 활발하게 이루어진 당시의 인쇄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 ▲ 자동 물시계의 주전으로 추정되는 동제품. ⓒ문화재청
    ▲ 자동 물시계의 주전으로 추정되는 동제품. ⓒ문화재청
    자동 물시계 '주전' 추정 동제품 출토

    도기 항아리에서는 금속활자와 함께 세종~중종 때 제작된 자동 물시계의 '주전'으로 보이는 동제품들이 잘게 잘려진 상태로 출토됐다. 동제품은 동판(銅板)과 구슬 방출 기구로 구분된다.

    동판에는 여러 개의 원형 구멍과 '일전(一箭)'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구슬 방출 기구는 원통형 동제품의 양쪽에 각각 걸쇠와 은행잎 형태의 갈고리가 결합돼 있다.

    이러한 형태는 '세종실록'에서 작은 구슬을 저장했다 방출해 자동물시계의 시보(時報)장치를 작동시키는 장치인 주전의 기록과 일치한다.

    주전은 1438년(세종 20년)에 제작된 흠경각 옥루이거나 1536년(중종 31년) 창덕궁의 새로 설치한 보루각의 자격루로 추정된다. 기록으로만 전해져오던 조선시대 자동 물시계 주전의 실체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 주·야간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 ⓒ문화재청
    ▲ 주·야간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 ⓒ문화재청
    주·야간 천문시계 '일성정시의' 출토

    활자가 담겼던 항아리 옆에서는 주·야간의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가 출토됐다.

    일성정시의는 낮에는 해시계로 사용됐고, 밤에는 해를 이용할 수 없는 단점을 보완해 별자리를 이용해 시간을 가늠하는 용도로 쓰였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1437년(세종 19년) 세종은 4개의 일성정시의를 만든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번에 출토된 유물은 일성정시의 중 주천도분환(周天度分環), 일구백각환(日晷百刻環), 성구백각환(星晷百刻環) 등 일성정시의의 주요 부품들로, 시계 바퀴 윗면의 세 고리로 보인다.
  • ▲ 인사동 79번지 공평구역 제15⋅16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 내 유적(나 지역)에서 발굴된 승자총통. ⓒ문화재청
    ▲ 인사동 79번지 공평구역 제15⋅16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 내 유적(나 지역)에서 발굴된 승자총통. ⓒ문화재청
    고의적으로 '총통' 절단, 폐기한 것으로 추정

    소형화기인 '총통(총구에 화약과 철환을 장전하고 손으로 불씨를 점화해 발사하는 무기)'은 승자총통 1점, 소승자총통 7점으로 총 8점이다. 조사 결과, 최상부에서 확인됐고, 완형의 총통을 고의적으로 절단한 후 묻은 것으로 보인다. 복원된 크기는 대략 50~60cm 크기다.

    총통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계미(癸未)년 승자총통(1583년)과 만력(萬曆) 무자(戊子)년 소승자총통(1588년)으로 추정됐다.

    총통에는 장인 희손(希孫)과 말동(末叱同)이 제작자로 기록돼 있다. 이 가운데 장인 희손은 현재 보물로 지정된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 '차승자총통'의 명문에서도 확인되는 이름이다. 만력 무자년이 새겨진 승자총통들은 명량 해역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 ▲ 일성정시의와 동종의 출토 당시 모습. ⓒ문화재청
    ▲ 일성정시의와 동종의 출토 당시 모습. ⓒ문화재청
    15세기 제작 왕실발원 '동종' 양식 계승

    '동종'은 일성정시의의 아랫부분에서 여러 점의 작은 파편으로 나누어 출토됐다. 포탄을 엎어놓은 종형의 형태로, 두 마리 용 형상을 한 용뉴(龍鈕: 용 모양의 손잡이)도 있다,

    귀꽃 무늬와 연꽃 봉우리, 잔물결 장식 등 15세기에 제작된 왕실발원 동종의 양식을 계승했다.

    종신의 상단에 '嘉靖十四年乙未四月日(가정십사년을미사월일)'이라는 예서체 명문이 새겨져 있어 1535년(중종 30년) 4월에 제작됐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왕실발원의 동종에는 주로 해서체가 사용되므로, 왕실발원의 동종과는 차이점을 보이기도 한다. 1469년 추정 '전 유점사 동종(국립춘천박물관 소장)', 1491년 '해인사 동종(보물)' 등의 유물과도 비슷한 양식이다.
  • ▲ 조선시대 금속 유물이 출토된 위치. ⓒ문화재청
    ▲ 조선시대 금속 유물이 출토된 위치. ⓒ문화재청
    1588년 이후 한꺼번에 폐기… 잘게 잘라 항아리 안팎에 묻어

    조사 결과, 발굴지에서 조선 전기부터 근대까지 총 6개의 문화층(2~7층)이 확인됐다. 금속활자 등이 출토된 층위는 현재 지표면으로부터 3m 아래인 6층(16세기 중심)에 해당되며, 각종 건물지 유구를 비롯해 조선 전기로 추정되는 자기 조각과 기와 조각 등도 같이 확인됐다.

    이번에 공개된 유물들은 금속활자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잘게 잘라 파편으로 만들어 도기 항아리 안과 옆에 묻어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활자들은 대체로 온전했지만 불에 녹아 서로 엉겨 붙은 것들도 일부 확인됐다.

    유물 중 만력(萬曆) 무자(戊子)년에 제작된 소승자총이 있어 1588년 이후에 묻혔다가 다시 활용되지 못하고 오늘날까지 보존된 것으로 추정된다.
  • ▲ 항아리 내부에서 발굴된 금속활자. ⓒ문화재청
    ▲ 항아리 내부에서 발굴된 금속활자. ⓒ문화재청
    [사진 및 자료 제공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