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인 서울대 교수 "7·4 공동성명이 햇볕정책 원천… 우월감 갖고 北에 공존 제안""청평, 춘천, 의암, 화천댐 건설해 한강 관리… 진흙땅 강남에 아파트 들어서게 해""부지런한 국민 만들어 대한민국 경제 바꿔…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결정적 순간"
  • ▲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정치문화플랫폼 하우스에서 열린 전직 대통령 평가 강연회에서 '박정희와 대한민국 압축·복합 근대화 혁명'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시사포커스TV 유튜브 캡쳐
    ▲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정치문화플랫폼 하우스에서 열린 전직 대통령 평가 강연회에서 '박정희와 대한민국 압축·복합 근대화 혁명'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시사포커스TV 유튜브 캡쳐

    "박정희 대통령은 대한민국 근대화 혁명의 총괄계획가다."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의 박정희 전 대통령에 관한 총평이다. 14일 저녁 서울 여의도 하우스 카페에서 정치인·학자·시민 등 3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열린 강연에서 전 교수는 이렇게 평가했다.

    이날 강연은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과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 등이 '2022 대선 특별기획'으로 마련한 자리로, 매주 전직 대통령 7명의 공과를 평가한다.

    전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누구냐'라고 하면 대한민국 압축·복합 근대화 혁명을 주도한 분"이라며 "근대화의 물결은 장강의 물결처럼 인류 현대사에 있어 최근 몇 세기 동안 지배하고 있는 큰 흐름"이라고 짚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전·현직 대통령 국민적 호감도 조사에서 거의 1위에 오른다"고 전한 전 교수는 박 전 대통령이 "경상북도 구미 빈농 출신의 전형적인 흙수저"였다고 소개했다.

    전 교수는 "박정희 대통령은 가난에 대한 분노가 컸던 분"이라면서 "아마 일평생 가난과의 전쟁을 벌이셨던 분이다. 일제시대에 태어나 부국강병에 대한 열망을 어릴 때부터 갖고 있지 않았을까"라고 분석했다.

    "교사·군인 박정희, 전문적 지식 갖춰"

    전 교수는 또 박 전 대통령을 "어떻든 교사, 어떻든 군인"이라고 소개했다. 교사·군인이라는 직업을 가지면서 전문적인 지식을 갖췄고, 대통령이 됐을 때도 그런 전문적 지식을 갖추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만주국 경험이 훗날의 통치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고 진단한 전 교수는 "만주국은 미국의 서부 같은 곳인데, 나중에 우리나라가 했던 경제개발5개년계획과 똑같은 산업개발5개년계획, 도시계획, 식량증산계획을 다 실험해봤다"고 설명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은 늘 전략적이고 미래지향적"이었으며 "종합적 안목과 전문성을 가졌다"고도 평가했다. 전 교수는 박 대통령의 '10대 근대화 혁명'으로 △경제성장 △세계화 △체제 우위 입증 △정부혁신 △공간계획 △주거혁명 △농촌혁명 △의식개혁 △과학·기술혁명 △녹색혁명 등을 꼽았다.

  • ▲ 전상인 서울대 교수. ⓒ시사포커스TV 유튜브 캡쳐
    ▲ 전상인 서울대 교수. ⓒ시사포커스TV 유튜브 캡쳐

    "5·16 당일은 쿠데타였지만 이후 18년 전체를 보면 혁명이었다"고 분석한 전 교수는 "박정희는 나라에 돈이 없어서 외국 차관을 들여오거나 대일청구권자금, 노동자 파독, 월남 파병 등으로 초기에 경제개발의 마중물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실 오늘날 햇볕정책의 원천은 7·4 남북공동성명"이라며 "우리가 먼저 북한에 공존하자는 화해의 몸짓을 보냈다. 그럴 정도로 체제에 대한 자신감, 우월함을 입증했던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건설물 가치 1위 경부고속도로… 한강 관리로 강남 개발"

    그러면서 "대국민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경제를 바꾼 가장 결정적 순간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이라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비싼 인공 건설물이 경부고속도로라고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1960년대 말, 1970년대 초에 청평댐·춘천댐·의암댐·화천댐을 짓고 나서 한강 관리가 시작되니까 비로소 강남 쪽에 아파트가 들어섰다"며 "그전에 강남땅은 진흙땅이었는데 강북 쪽에 댐을 설치함으로써 한강물을 차단하니까 건조한 토양을 생산해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한국사람이 부지런하게 된 것은 자본주의 체제가 들어와서 '일하니까 나한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며 "똑같은 한민족인 북한사람은 게으르지 않으냐. 박 대통령이 새마을운동에 근면·자조·협동이라는 경쟁심을 붙인 것은 정책적 아이디어가 뛰어났다"고 말했다.

    "새마을운동으로 근면·성실 국민성 생겨"

    전 교수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박 대통령의 '독재와 친일'을 과오로 거론했다. 다만 그는 "'박정희는 독재자'라고 비판할 그 이후의 대통령이 있을까? 그럼 제왕적 대통령은 뭘까?라는 고민도 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시 만약에 장기집권할 수 있는 제도적 틀, 내각책임제가 있었다면 독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외국에도 장기집권한 정상이 많고 미국은 대공황기 특수하게 루스벨트에 4선을 허용했는데, 그때 한국은 제도와 리더십 사이에 어긋남이 있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박정희는 친일만 한 것이 아니다"라며 "일본식 정신보다 방법을 많이 도입한 사람이고, 다른 조선시대나 지금 지도자의 친중·사대 노선도 균형감 있게 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 전상인 교수, 김도연 시대전환 상임대표당원 등이 강연에 이어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시사포커스TV 유튜브 캡쳐
    ▲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 전상인 교수, 김도연 시대전환 상임대표당원 등이 강연에 이어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시사포커스TV 유튜브 캡쳐

    "독재자라는 오명도 감수한 박정희"

    이날 강연이 끝나고 이어진 토론회에서 김도연 시대전환 상임대표당원은 "박정희 한 사람이 너무 오랫동안 집권하면서 국민들이 4·19 이후 새롭게 혁명을 시도할 기회가 없었던 것 아닌가"라며 "체제를 만드는 주체는 결국 누구인가, 혁명은 누가 완성하는가"라고 비판적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전 교수는 "박 대통령이 권력자로서 야망, 당연히 있었겠죠"라며 "그렇게 따지면 모든 지도자에 대해서도 '너 없으면 못한 줄 아느냐, 국민이 한 것 아니냐'는 가정적 잣대를 들이댈 수 있다"고 답했다.

    이어 "그때는 그런 리더십이 통했다는 것이지, '다시 박 대통령을 위대한 영도자로 모시자'는 뜻은 아니다"라며 "그 당시 헌법적 질서로서는 박 대통령이 '독재자'라는 오명을 감수한 것 아닐까"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생애를 마감하기 9일 전인 1979년 10월17일, 유신 7주년 만찬에서 부산 소요사태를 보고받은 후 관저로 돌아와 자신의 마지막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7년 전을 회고하니 감회가 깊으나 지나간 7년간은 우리나라 역사에 기록될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였다. 일부 반체제 인사들은 현 체제에 대하여 집요하게 반발을 하지만, 모든 것은 후세에 사가들이 공정히 평가하기를 바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