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대부' 장기표-'주사파 핵심' 민경우… 사회에 기생하는 '운동권 지식인' 비판"서구 공산주의 무너졌지만, 북한 사회주의는 다르다" 낭만적 지식인들 막연한 환상"리영희, 80년대 운동권에 막강한 영향… '공산주의는 잘못' 인정했지만 묻히고 말아"
  • "사회주의가 붕괴했음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이를 추종하는 세력이 있다. 여기에 막강한 영향을 끼친 것이 리영희 선생이다."

    '운동권 대부' 장기표 선생은 1990년대 사회주의가 붕괴했음에도 아직 이를 추종하는 '변종세력'이 있다며 이처럼 주장했다. 

    장 선생은 1960년대 중반 노동운동부터 1980년대 민주화운동까지 운동권의 상징으로 통한다. '재야 정치인'이기도 한 그는 민주화운동단체들이 모여 결성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의 핵심인물로도 꼽힌다. 노동운동·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수차례 투옥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변종' 운동권의 민낯을 비판하고 나섰다. 주체사상과 사회주의 등을 지향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고, '북한 추종세력'이 여전하다는 이유에서다. 문재인정권 출범 후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각 분야에서 주요 역할을 맡은 점도 주효했다.

    장 선생과 대담은 '운동권 출신' 민경우 수학연구소장이 맡았다. 민 소장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에서 활동한 '주사파' 핵심 출신. 그러나 이후 사회주의 붕괴 및 연평도 포격 등을 목도하고 북한정권의 문제를 인식, 이들 운동권의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우리나라 운동권의 맥을 꿰뚫는 두 논객이 우리 사회에 잔재한 사회주의 추종세력, 그 세력의 문제와 대안 등을 허심탄회하게 말하기 위해 만났다. 

    본지는 지난 3월25일부터 수차례 진행된 이들 간의 대담을 기사와 영상으로 전할 예정이다. 첫 순서는 '1970년대 운동권의 사상적 경향과 운동권에 미친 리영희 선생의 영향'이다. 민 소장이 묻고, 장 선생은 답했다. 

    -민경우: 1970년대 운동권의 일반적인 사상적 경향은 어땠나.

    "1970년대까지의 운동권은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적 정서가 상당한 기반이 됐다. 운동권에서는 북한을 두고 비판적 인식보다 긍정적으로 보는 인식이 강했다. 지금은 사회주의·공산주의가 반인간적 이념으로 확인됐지만, 해방 후 많은 지식인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성격을 보였다. 1970년대 초·중반까지는 북한이 남한보다 경제적으로 오히려 상황이 나은 측면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을 향한 긍정적 평가가 있었다.

    특히 반공교육이 강했던 한국 땅에서 운동권이 사회주의 지향적인 성격을 강하게 가진 이유로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 굉장한 영향을 미쳤다. 마르크스-레닌주의로서의 사회주의가 우리 사회, 특히 운동권에 범람한 것은 1980년대 초반이었고, 주체사상이 노골적으로 운동권을 상당히 지배하다시피 한 것은 1985년 중반부터였다. 즉, 1970년대까지는 북한을 향한 긍정적 평가가 있었지만,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주창하거나 주체사상에 경도된 일은 없었던 것이다."

    -문재인정권의 주요 리더들이 리영희 선생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970년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측에서는 북한을 향한 긍정적 인식이 있었으나 공공연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8억인과의 대화> 등의 책이 나왔다. 그러면서 상당한 확신과 역사적 근거를 갖고 사회주의·공산주의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북한을 칭송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리 선생을 비판하는 사람 중 윤평중 한신대 교수가 있다. 그 윤 교수조차 1990년대 초반 리 선생을 비판하면서도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이라고 했다. 비판하는 사람들조차 리 선생의 세례를 받았음을 인정한 것이다.

    리 선생은 세 가지 문제에 관해 운동권에 확고한 인식이 자리하는 데 역할을 했다. 첫째, <전환시대의 논리> 등 책을 통해 '공산주의가 옳다'는 생각을 사실적 근거를 첨부해 확인해 주는 기능을 했다. 그 다음, 리 선생은 (1966년부터 10년간 진행된)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공산주의를 건설하려면 인간개조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그래서 문화대혁명은 공산주의 사회를 완성하기 위한 인간개조운동이다' 이렇게 평가했다. 

    본래 마르크스는 사회혁명을 완성하려면 정치혁명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고, 권력을 장악해 경제구조를 바꾸고, 그 다음에 정신을 혁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 선생은)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정신혁명의 하나'라고 주장했다. 중국 공산주의를 긍정적으로 보게 만든 것이고, 이러한 과정에서 리 선생은 (사람들이) 북한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을 넘어 결과적으로 숭상하게 만들었다. 또 리 선생은 미국의 여러 가지 문제를 아주 자세하게 많이 지적했다. 반미사상을 갖게 하는 데 굉장한 역할을 했다."

    -요약하자면 1970년대에는 사회주의에 우호적인 생각이 있었지만 막연했다. 그러나 데이터나 자료에 입각한 리 선생의 엄밀하고 치밀한 자세가 (사회주의를 우호적으로 여기게 하는 데)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조금 확인해야 할 것은, 리 선생의 1970년대 후반 저작은 중국과 베트남 이야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그가 북한을 숭상했다는 것은 조금 (아니지 않느냐).

    "그 안에 베트남과 중국 관련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환시대의 논리> 안에는 북미관계 등 여러 이야기가 들어있다." 
  • 장기표(좌) 선생과 민경우(우) 소장. ⓒ정상윤 기자
    ▲ 장기표(좌) 선생과 민경우(우) 소장. ⓒ정상윤 기자
    -리 선생의 데이터에 기초한 중국과 베트남 사회주의 미화가 있었고, 이는 1980년대 학생들이 북한 문제에 관해 주체사상으로 접근해가는 징검다리 역할도 한 것 같다.

    "징검다리 정도가 아니라 그런 확신을 갖도록 만들었다."

    -(웃음) 엄청난 주장인데 감당 가능한가.

    "그런데 이런 점은 있었다. 마르크스주의가 범람하기 전, 1985년 주체사상이 범람하기 전까지는 사회주의를 확신해도 겉으로 공공연하게 말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1981~82년도부터는 노골적으로 사회주의를 주장한 거다. 그 차이는 있었다."

    -(1990년대 초반) 사회주의권 붕괴가 강력한 충격이었다. 그때 리 선생의 행보를 소개해 달라.

    "1989~1990년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이 붕괴했다. 그러면서 세계적으로 공산주의는 전혀 인간해방 사상이 될 수 없다고, 인간에게 이로운 사상이 될 수 없다고 규정됐다. 세계 사상조류가 '유토피아니즘은 인류에게 도움 안 된다', 나아가 '이상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이상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주장은 오히려 해악이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리 선생도 (이때) '공산주의는 옳지 않다' '문화대혁명은 권력투쟁이었을 뿐이며, 문화대혁명이 인간개조운동이라고 말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북한을 긍정적으로 말해온 것은 잘못이다' 이런 말을 했었다. 그래서 '아, 역시 리영희 선생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자기 잘못을 시인하니까. 그런데 이후 리 선생(의 그런 발언)이 들어갔다. 왜 들어갔나 보니 한겨레신문을 중심으로 한 주사파들이 '선생님,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공산주의가 나쁘다고 증명된 것이 있습니까'라고 했다.(그래서 리 선생의 반성이 쑥 들어간 것이다)"

    -(운동권 중에는) 마르크스주의가 역할을 제대로 안 했기 때문에 공산주의가 무너진 것이지만, (북한식) '인민대중 중심의 사회주의는 그렇지 않다' 이런 식의 변종이 많이 있다.

    "그렇다. '선생, 어떻게 공산주의 자체가 나쁘다고 말씀하십니까' 이렇게 비판하자 리 선생이 쑥 들어갔다. 이 점이 정말 비난받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참 뒤 윤평중 교수가 지식인으로서는 제대로 리 선생을 비판했다. 리 선생 때문에 북한맹(신)·사회주의맹(신)이 지금도 있지 않나. (윤 교수가)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비판했다. 이미 사회주의가 옳지 않다, 동유럽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 붕괴를 통해서 확인되고도 몇 년 후 윤평중 교수가 비판했는데, 그때도 몇몇 교수들은 '윤 교수, 당신 뭐 알고 비판하느냐' 이런 말을 했다. 지식인사회, 자칭 진보 지식인들은 지금까지 그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세력이 한겨레신문이다. 이 신문이 지식역량을 확보하고 많은 필진도 확보했다. 이런 사람들이 리 선생의 주장을 깔아뭉갰다. 깔아뭉갰어도 리 선생은 자기 말을 했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덮었다. (리 선생은) 운동권에 있다가 돌아가실 때까지 운동권에 얹혀 살았고, 지금도 그 사람들 속에서 영웅으로 취급받는다."

    -요약하자면, 소련 사회주의권 붕괴는 의심할 여지 없는 객관적으로 인정해야 할 팩트라는 것이다. 그런데 운동권 두 분파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는 주사파다. 주사파는 북한식 사회주의가 틀리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두 번째는 PD(민중민주) 계열이다. 이들은 사회주의가 여전히 옳다고 주장한다. 유시민 작가가 쓴 <거꾸로 읽은 세계사>에도 '사회주의는 망했지만 제대로 된 사회주의가 틀린 것은 아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문재인정권의 사회주의적, 낭만주의적 성향의 기원이 여기에 있다.

    "(정의당 공동대표였던) 김세균 씨 같은 사람도 얼마 전까지 당을 만든다고 했다. 백기완 선생도 김세균 씨와 굉장히 가깝고. 이런 사람들이 계속해서 본래 사회주의·마르크스-레닌주의는 틀리지 않았다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스탈린 같은 사람이 잘못해서 그렇게 됐다는 식으로 말했다. 지금 다른 나라에는 공산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졌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있다. 있는 정도가 아니라 많다. 

    예를 들면 정의당이 통합진보당으로부터 왜 갈라져 나왔나. 통진당은 주사파와 민주노동당 등 노회찬 그룹, 유시민 그룹 등 세 그룹이 통합해 만들어졌다. 이 세 그룹이 합해 통진당이 만들어졌는데, '주사파' 이석기 세력의 '경기동부연합'이 여기 들어가 전횡을 했다. 심지어 부정투표까지 저질렀다. 그래서 (통진당에서) 정의당이 갈라져 나오게 된 것이다. '종북주의자들과 같이 못하겠다'면서. 그런데 정의당 당원들이 실제로 마르크스-레닌에 대한 책을 읽어봤겠나, 무엇을 알겠나? 그런데도 '사회주의가 옳다'면서 노동자계급의 이기심에 불을 붙였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에서 그런 성향, 옛날의 잔재를 많이 찾게 된다.

    "이렇게 운동권이 사회주의 지향성... 여기에 주체사상까지 들어왔으니. 옛날에는 'PD 계열'이 오히려 주체사상파보다 막강했었다."

    -사회주의가 붕괴했음에도 변종인 채 살아남았고, 거기에 한겨레신문의 역할도 있고. 지금 현 사회에서도 '정의당' '박원순'이 살아 있다.

    "이렇게 된 데는 주된 원인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관성, 계속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사회주의가)이 틀리다고 하면 그 이전에 틀렸다고 주장했던 자유주의 세력에 투항하는 것이 된다. 그러니까 참 묘한 거다. 이 사람들(자유주의 세력들)이 없다면 '아, 우리가 잘못했다' 하고 돌아서면 되는데, 지금에 와서 잘못했다고 하면 이제까지 자기네들 반대하던 세력의 주장이 맞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또 하나는 북한의 존재다. 20여 년 전에도 주사파가 약화할 것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그 당시에도 나는 약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왜냐. 북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 나라, 아무리 못살더라도 북한이라는 한 나라가 (주사파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리영희 선생과 신영복 선생을 존경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했다. 그래야만 이런 정서에 파묻힌 사람들로부터 '역시 문 대통령은 우리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 때문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