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오 감독의 '오페라', 아카데미 단편 애니 부문 노미네이트 쾌거픽사 출신 실력파 애니메이터… 미디어아트 접목한 신개념 애니메이션으로 각광
  • ▲ 픽사(Pixar) 출신 애니메이션 감독 에릭오(37‧오수형). ⓒ비스츠앤네이티브스(BEASTS AND NATIVES ALIKE)
    ▲ 픽사(Pixar) 출신 애니메이션 감독 에릭오(37‧오수형). ⓒ비스츠앤네이티브스(BEASTS AND NATIVES ALIKE)
    영화 '미나리'가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Academy Awards, OSCAR)'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는 낭보가 전해진 날, 또 하나의 경사스러운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의 단편 애니메이션 '오페라(Opera)'가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 애니메이션(Best Animated Short Film)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는 겹경사가 전해진 것이다.

    '오페라'는 한국계 미국인 애니메이터 에릭오(37‧오수형)가 연출한 작품으로, 국내 제작사 '비스츠앤네이티브스(BEASTS AND NATIVES ALIKE)'가 만든 국산 애니메이션이다.

    한국계 감독이 총괄 연출한 애니메이션이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에 오른 건 2005년 호주 교포 박세종 감독이 연출한 '버스데이 보이(Birthday Boy)', 2013년 디즈니 출신 이민규 감독이 연출한 '아담과 개(Adam and Dog)' 이후 세 번째다.

    미국 작품인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If Anything Happens I Love You)', 프랑스 작품인 '지니어스 로씨(Genius Loci)' 등과 단편상 수상을 놓고 경쟁하게 된 '오페라'는 평범한 만화영화가 아닌 '미디어아트(Media Art)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다른 경쟁작들에 비해 확실한 차별성을 갖고 있다는 평이다.

    당초 벽면 등에 투사하는 설치 미디어아트 전시를 위해 기획된 이 작품은 영화제 상영을 위해 9분 길이의 상영본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페라'를 연출한 감독 에릭오는 19일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지브리나 디즈니 애니메이션처럼 단순히 영화관에서 감상하는 만화영화만이 애니메이션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었다"며 "애니메이션이 갖고 있는 다양한 면과 가능성을 보여드리기 위해 애니메이션에 미디어아트를 접목한 방식을 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오페라'는 평범한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8K 사이즈로 벽면 혹은 구조물에 투사돼 수분 길이의 작품 안에서 낮과 밤이 끝없이 반복되는 형태를 띤 영상물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캐릭터들은 각자의 내러티브를 갖고 움직이는데, 이들은 인류 역사의 계층이나 문화, 종교, 이념 간의 갈등을 표현하고 있다.

    에릭오는 "처음 작품을 구상하던 당시,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고, 한국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다"며 "제 개인적인 견해를 떠나 사회에 커다란 갈등과 혼란이 빚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와 동시에 인종차별, 테러리즘, 그리고 코로나19까지 다양한 문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면서 이러한 아픔과 슬픔을 작가로서 다루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에릭오는 픽사(Pixar)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몬스터 대학교(Monsters University)', '도리를 찾아서(Finding Dory)',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 등에 참여했고, 2018년 '피그: 더 댐키퍼 포엠즈(Pig: The Dam Keeper Poems)'로 세계 최고 애니메이션 시상식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Annecy International Animated Film Festival)'에서 TV 시리즈 부문 최고상(크리스탈)을 수상한 실력파 감독이다.

    어릴 때부터 애니메이션을 너무 좋아했던 에릭오는 디즈니랜드에 가 보는 게 일생일대 꿈인 만화키드였다. 머리가 굵어진 뒤 시각 예술에 대한 전반적인 공부를 해보고 싶어 순수미술(서양화)을 전공했으나 결국 미국으로 건너나 UCLA 대학원에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했다. 석사 과정 중 만든 '웨이 홈(Way Home)'으로 주목받은 그는 2010년 픽사 인턴 과정에 합격하면서 본격적인 애니메이터의 길을 걷게 됐다.

    "인턴으로 시작했습니다. 제 작품들을 2분 정도로 편집해서 제출했는데 바로 합격 통보를 받았어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세계적인 아티스트들과 함께 훌륭한 작업을 할 수 있어서 너무 영광스럽고 좋았죠. 실력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다른 아티스트들과 방향을 함께 모색하며 협력하고 소통하는 법을 가장 많이 배운 것 같습니다."

    픽사 재직 당시 참여한 단편 애니메이션 '댐 키퍼(The Dam Keeper)'가 2015년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에 오르고, 직접 그린 문어 캐릭터 '행크(Hank)'가 대중적 인기를 얻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그는 2016년 '도리를 찾아서' 참여를 끝으로 픽사를 나와 독립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 제작사 비스츠앤네이티브스 소속으로 힙합가수들과 협업하고, 설치미술에도 뛰어드는 등 다방면에 걸쳐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그는 차기작으로 한국 색채가 짙은 VR 작품을 기획 중이다.

    "작품의 제목은 '나무(NAMOO)'에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떠나보내면서 생각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매우 개인적인 작품입니다. 처음엔 '트리'로 할까 '나무'로 할까 고민이 많았는데, 페이스북 측에서 나무가 더 좋다고 하더라고요."

    지난 아카데미 1차 후보 발표 때 포함됐던 '레드슈즈(Redshoes and the Seven Dwarfs)' 같은 한국 애니메이션이 최종 후보에 들지 못한 게 몹시 아쉽다는 그는 "실력있는 한국 아티스트들이 국내외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고, 한국 문화와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커지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한국 애니메이션이 훨씬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나 기회들이 곧 찾아올 것"이라며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래를 밝게 전망했다.

    "영화와 음악(K-POP)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하는데요. 한국 문화와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지금 당장은 힘들 수도 있지만, 한국 애니메이션이 훨씬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와 기회들이 곧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까지 저 역시 제가 서 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계획입니다."
  • ▲ 단편 애니메이션 '오페라(Opera)' 스틸 컷. ⓒ비스츠앤네이티브스(BEASTS AND NATIVES ALIKE)
    ▲ 단편 애니메이션 '오페라(Opera)' 스틸 컷. ⓒ비스츠앤네이티브스(BEASTS AND NATIVES ALIKE)
    다음은 에릭오와의 일문일답.

    - 일단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후보에 오르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노미네이트 되신 소감 먼저 부탁드릴게요.

    ▲진심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작품 제작에 힘써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더욱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 1차 후보에 들었을 때 최종 후보에 뽑힐 것이라는 예상도 하셨나요?

    ▲솔직히 반반이었습니다. 현지에서, 그리고 업계에서의 반응은 사실 무척 좋았습니다. '버라이어티'나 '헐리우드리포터' 같은 외신들이 다룬 예상 후보 리스트에 들어가기도 했었기 때문에 긍정적이었지만, 픽사나 넷플릭스를 비롯한 큰 제작사에서 든든한 지원으로 만들어진 작품들과의 경쟁이었기 때문에, 마냥 확신하기는 어려웠습니다.

    - '오페라'는 어떤 내용의 애니메이션인가요?

    ▲우리의 사회와 역사를 담은 작품입니다. 정치 상황, 계층 간의 갈등, 종교, 인종문제, 테러리즘, 자연파괴 및 재해 등에 이르는 우리 삶의 다양한 면들을 반영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낮과 밤이 반복돼 처음과 끝이 없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작품이기 때문에 전시 형식으로도 감상할 수 있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 흔히 아는 만화영화가 아니라 벽에 투사하는 미디어아트라는 점이 매우 특이합니다. 이렇게 극장에서 볼 수 없는 장르도 애니메이션에 포함되는 건가요? 또 한국에서도 이런 장르로 활동하는 작가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작품을 제작하게 된 의도 자체가 애니메이션이 갖고 있는 다양한 면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영화관에서 감상하는 지브리,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나, TV에서 볼 수 있는 만화영화만이 애니메이션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이처럼 애니메이션과 미디어아트를 완전히 접목한 경우가 흔하지는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도 장르와 미디어 사이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작가분들이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노력들이 끊임없이 필요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 인류의 여러가지 갈등 양상을 표현한 작품으로 들었는데요. 이렇게 무겁고 어렵고 추상적인 주제를 선정한 이유가 있으시다면? 당시 한국과 미국의 정치적 상황에도 영향을 받으셨는지.

    ▲저는 무겁거나 추상적이라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너무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매일 경험하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작품을 구상하던 당시, 미국에서는 도날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됐고, 한국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습니다. 제 개인적인 정치적 입장을 떠나서, 결과적으로 사회에 커다란 갈등과 혼란이 빚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 사회문제, 인종차별, 테러리즘, 자연재해 그리고 코로나19 까지 발생하면서, 우리들이 매일 겪는 이런 아픔과 슬픔을 작가로서 다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국내 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하셨나요? 어떤 계기로 애니메이터가 되기로 결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애니메이션을 너무 좋아했습니다. 디즈니에 가는 게 늘 꿈일 정도로. 이후 그림과 시각 예술에 대한 전반적인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순수미술을 전공하게 됐습니다. 대학 초반에는 유화를 중심으로 회화작업에 몰두하다가, 대학교 3학년 무렵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를 애니메이션으로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애니메이션을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어보게 됐고, 그 일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게 됐습니다.

    - 픽사에 들어가게 된 과정과 활동 당시 내용도 듣고 싶습니다. 그곳에서 많은 경험과 추억을 쌓으셨을 것 같습니다.

    ▲인턴으로 시작했습니다. 세계적인 아티스트들과 함께 훌륭한 작업을 할 수 있어서 너무 영광스럽고 좋았습니다. 실력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다른 아티스트들과 방향을 함께 모색하며 협력하고 소통하는 법을 가장 많이 배운 것 같습니다. 그때의 경험을 발판으로, 지금까지 많은 도전들을 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 독립 후 픽사 출신 동료들이 설립한 제작사와도 협업하신 걸로 아는데요. 현재 감독님과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같이 협업하는 지인들을 좀 소개해주세요.

    ▲다이스 츠츠미(Dice Tsutsumi), 로버트 콘도(Robert Kondo) 두분입니다. 일본계 미국인들인데 2015년 오스카 후보로 올랐던 '댐 키퍼(The Dam Keeper)'라는 작품을 함께 만들면서 소중한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이후, 두분이 '톤코하우스(Tonko House)'라는 스튜디오를 설립하게 됐고, 저도 약 1년 후 픽사를 나와 합류해 지금까지 함께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지난 1차 후보 발표 때 한국 작품들도 포함됐었는데 아쉽게도 최종 후보에는 들지 못했습니다. 아직까지 한국 작품들이 넘어야 할 진입장벽이 크다고 생각하시나요? 또한 현재 한국 제작진과 작품의 기술 수준, 그리고 작품의 완성도 등은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보시는 지도 궁금합니다. 소위 애니메이션 선진국에서 바라보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수준과 전망, 평가도 듣고 싶어요.

    ▲아직 시장적으로, 또한 예산적으로도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는 있지만, 저는 그래도 한국 애니메이션을 희망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국내외에서 실력 있는 아티스트와 감독분들이 다양하게 활동하고 계시고, 그런 것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좀더 나은 방향으로 서서히 움직여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해외에서 바라봤을 때 전반적인 한국 문화와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영화와 케이팝(K-POP) 같은 음악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하는데요. 지금 당장은 힘들 수도 있지만, 한국 애니메이션이 훨씬 발전할 수 있는 계기와 기회들이 곧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까지 저 역시도 제가 서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 차기작 '나무'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세요. 제작은 완료하신 건가요? 어떤 콘셉트와 내용인가요?

    ▲'오페라' 완성 직후 제작에 들어가 올해 초 완성했고요. 선댄스 영화제(Sundance Film Festival)에서 첫 시사회를 가졌습니다. 제 첫 VR작품인 이 애니메이션의 제목은 '나무(NAMOO)'입니다. 한글 그대로 표기했고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떠나보내면서 생각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매우 개인적인 작품입니다. '나무' 역시 천천히 관객분들께 보여드릴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 앞으로의 활동 계획과 목표는?

    ▲'오페라' 전시와 상영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분들께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 중입니다. 앞으로도 더 다양한 작품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