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부산 강서구 가덕도. 부산보다 진해에 더 가깝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부산 강서구 가덕도. 부산보다 진해에 더 가깝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5일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원내대표, 경제부총리, 행정안전부장관, 국토교통부장관 등 당·정·청 핵심 인사 20여 명과 부산을 방문하여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 전략보고’ 행사에 참석하고 부산 가덕도 신공항 예정지를 방문했다.

    문 대통령은 가덕도를 바라보며 “(신공항 예정지를 눈으로 보니) 가슴이 뛴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부정적인 의견을 표명한 국토부를 향해 "국토부가 역할에 의지를 가져야 한다"며 사업 강행을 압박했다. 국토부는 앞서 안정성, 시공성, 운영성, 경제성 등 가덕도 신공항 건설의 문제점 7가지를 지적한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김해공항 확장안이 돌연 29조원 가덕도 신공항 건설로

    ‘동남권 신공항’ 문제는 오랜 세월에 걸친 논란 끝에 해외 유명전문기관의 연구검토와 자문을 거쳐 기존 김해공항 확장안을 최종 결정한 바 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와 여당이 4월 보선과 내년 대선을 의식한 듯 특별법까지 만들며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다시 꺼내 들어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우선 '동남권 관문공항' 역할을 맡는다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는 약 29조원의 천문학적 예산이 소요된다. 그런데 공항부지나 건설계획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회가 예비타당성조사도 면제하는 특별법까지 통과시키고 대통령과 국회가 나서고 있으니, 앞으로 설계, 보상, 시공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예산을 더 퍼부어야 할지 예측할 수도 없다.

    이뿐만이 아니라 가덕도 신공항은 공항 기능의 최우선 전제조건인 안전 측면에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국토부가 대통령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반대의견을 표명한 핵심적인 이유가 바로 이 안전 문제이다. 국토부가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도 ‘가덕도 신공항처럼 안전 운항에 불리한 해상 공항은 유례가 없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내해(內海)가 아닌 외해(外海)에 건설하려는 가덕도 공항

    바다에 건설한 세계 주요 국제공항으로는 일본의 간사이·하네다·주부·고베 공항, 마카오 국제공항, 싱가포르 창이공항, 호주 브리즈번 공항, 홍콩 첵랍콕 공항 등이 있다. 이 공항들은 얕은 수심과 비교적 단단한 지반을 가진 내해지역에 건설되었다.

    반면 가덕도 신공항은 바람과 파도에 취약한 외해(外海)에 건설된다. 가덕도 신공항은 깊은 수심과 연약 지반층 때문에 엄청난 기초 토목공사가 필요하다. 인천공항의 경우 평균 수심이 1m 내외였고, 홍콩 쳅락콕 공항의 경우는 수심 10m에 연약 지반층이 20m 정도였다. 그러나 가덕도는 평균수심이 17m(최대수심 21m)이고 연약 지반층이 30~45m에 달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내해에 위치한 해외 공항들은 활주로 높이가 해수면과의 차이가 10m 미만이지만, 외해에 위치한 가덕도는 해일 위험 등을 고려해 해수면 위 40m까지 활주로 위치를 높여야 한다. 이럴 경우 가덕도는 평균 87m, 최대 106m에 달하는 지반보강과 성토(盛土)가 필요하다. 이 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활주로가 수면으로부터 높게 위치하는 경우 바람의 영향이 커지고 ‘언더슛 (undershoot)’ 등 사고의 위험이 커진다(주: ‘undershoot’이란 항공기가 활주로에 못 미친 지점에 착지하는 사고를 말하며, 활주로의 착륙구간을 지나쳐 착지하는 것은 ‘overshoot’라 한다)

    천문학적인 예산 외에도 안전성에 대한 심각한 우려로 부적합 판단을 내린 해외전문기관의 검토결과와 주무부처의 반대를 묵살하고 대통령과 국회가 특별법까지 만들어가며 공항 건설을 밀어붙이는 이유가 무엇인가? 대통령이나 여당이 4월 서울·부산 시장 보선과 내년 대선을 염두에 두고 위에 거론된 문제점들을 모두 무시하고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밀어붙인다면 이는 역사의 죄를 짓는 망동이 아닐 수 없다.

    가덕도 공항이 ‘동남권 관문공항’이 될까?

    항공사들이 국제항로를 개설하려면 관련 국가들과 쌍무항공협정 (bilateral air transport agreement)을 우선 체결해야 한다. 이 협정에는 해당 국가 항공사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해 취항도시뿐만 아니라 운항회수나 총 공급좌석 수까지 상호 합의하여 명시한다. 때문에 특정 지역에 적정수준의 수요가 없는 한 항공사의 취항이 쉽지 않다.

    실제로 우리 전체인구의 약 절반이 수도권에 거주하며 인천공항을 주로 이용하고 있는데 반해 부울경 지역 전체 인구는 800만을 밑돈다. 게다가 가덕도는 국토 동남쪽 끝에 위치한 외진 섬이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런 곳에 외국항공사들이 얼마나 취항할지 의문이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가 지난 2019년 6월 한국-핀란드 정상회담 선물로 핀란드 항공에 허가한 부산-헬싱키 노선의 운항현황은 현재 어떤가? 당시 정부가 ‘부산과 영남권에서 유럽직행노선 개설’이라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실상은 직행노선이라 할 수도 없다. 영남권에서 런던, 파리, 로마 등 유럽 대도시에 가는 경우 인천공항에 가서 직행하는 대신 헬싱키로 직행한 후 거기서 비행기를 갈아타는 것이다.

    ‘하늘길과 바닷길·육지길이 만나는 세계적 물류 허브’?

    문 대통령의 ‘하늘길과 바닷길·육지길이 만나 세계적 물류 허브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감상적인 허구일 뿐이다. 가덕도 신공항과 인접한 부산 신항(新港)과 연계하는 항공화물이 늘어난다는 주장은 현실을 모르는 말이다.

    해운·항공 연계운송(sea-and-air transport)은 고가화물의 단거리 선박운송과 장거리 항공운송이 결합될 때에만 실효성이 있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생산되는 전자, 반도체 제품 등 고가 수출품들을 선박으로 인천항이나 평택항으로 운송해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미국이나 유럽 등지로 항공운송하는 경우이다. 즉 현실적으로 중국발 선박화물을 인천공항 대신 가덕도 신공항을 이용해 항공운송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중국 이외 나라에서 한국을 경유한 해운·항공 연계운송 물량이 발생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그리고 국내 수출품의 경우에도 항공운송 대상이 되는 반도체, 약품, 특수화물 등 고가물품들이 수도권 인근에서 주로 생산되기 때문에 ‘육지길’을 이용해 가덕도로 운송할 일도 별로 없을 것이다.

    가덕도 공항이 ‘24시간 하늘길’이 될 것인가?

    문 대통령이 말하는 ‘24시간 하늘길’도 현실과 동떨어진 소리다. 24시간 운영을 표방하고 있는 인천공항도 이른 새벽에 도착하는 일부 장거리 항공편과 심야에 출발하는 화물기 외에는 교통편이나 기타 서비스 시설의 이용이 불편하여 항공 수요가 많지 않아 이 시간대의 항공기 운항은 미미하다. 뿐만 아니라 항공기 소음으로 인한 주민피해 문제로 인해 심야운항 제한이 불가피하여 많은 해외 공항들도 대체로 밤 11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는 운항을 제한(curfew)하고 있다.

    이런 사유들 외에도 가덕도는 도심으로부터의 진입거리나 환경보호 측면에서도 다른 공항 후보지들보다 더 하위 평가를 받았다. 바다 매립에 따른 어업활동 피해에 대한 손실도 기회비용에 고려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공항을 잘 지어놓는다고 항공사나 승객이 몰려드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천공항보다 유리한 비즈니스 수요나 관광 수요가 없는 한 가덕도 신공항에 승객이나 화물이 몰려올 리가 없다.

    ‘가덕도 공항’을 선거의 제물로 바치려는가?

    정부와 국회가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면 이 나라가 과연 법치국가인지, 이 나라에 과연 국민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국가적 건설사업의 실행 주체인 국토부를 비롯한 행정부 관계부처들의 반대 의사에 대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가 법을 만들면 정부는 따르는 게 당연하다”는 망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행정부의 역할을 무력화하고 오로지 목전의 선거만을 위해 대통령과 국회가 합세해 불법을 자행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정부나 국민은 선거 때마다 공항 유치 업적으로 한자리 차지하려고 억지 명분으로 밀어붙여 건설한 국내공항들의 한심한 모습을 보지 못하는가? 만일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없었다면 대통령과 여당, 야당이 모두 나서서 위헌적 특별법까지 입법해가며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열을 올렸겠는가? ‘4대강 살리기 사업’에 23조원을 쓴 MB 정부를 ‘적폐’로 몰아 보(洑) 해체를 강행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그보다 더 큰 죄를 지으려는가? ‘가덕도 신공항’을 선거의 제물로 바치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