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김치 기원-명칭 왜곡 '문화 동북공정' 박차… 문체부가 '김치공정' 단초 제공한 셈
  • ▲ 중국의 유명 유튜버가 김장하는 동영상을 올리고는 '중국 음식'으로 소개해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유튜버 리쯔치(李子柒) 동영상 캡처. ⓒ뉴시스
    ▲ 중국의 유명 유튜버가 김장하는 동영상을 올리고는 '중국 음식'으로 소개해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유튜버 리쯔치(李子柒) 동영상 캡처. ⓒ뉴시스
    우리나라에서 '파스타(Pasta)'를 '국수'로 표기하지는 않는다. 국수와 파스타가 엄연히 다른 요리이기도 하지만, 이들이 각 나라 음식문화를 대표하는 '고유명사'이기 때문이다. '햄버거'나 '피자', '바게트' 등 다른 음식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발효음식 '김치'도 발음 그대로 '김치(Kimchi)'라는 이름으로 통용된다.

    그런데 최근 중국 포털사이트에서 김치를 중국식 절임채소인 '파오차이(泡菜)'로 바꿔 부르며 "김치의 기원이 중국"이라는 왜곡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파오차이는 양배추나 고추 등을 염장한 중국 쓰촨(四川) 지역의 절임식품으로, 김치보다 서양의 '피클'에 가까운 음식이다.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VANK)'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포털사이트 바이두(百度) 백과사전은 김치를 파오차이로 소개하면서 "한국의 김치가 중국에서 유래됐다"는 잘못된 정보를 올렸다.

    이에 반크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 등이 항의하자, 바이두는 지난해 말 "'한국 파오차이'는 여러 차례 중요한 단계를 거쳤고, 삼국시대(고구려·백제·신라)에 중국으로부터 전해졌다"고 수정했다.

    "김치가 중국에서 기원했다"는 기존 문구에 '삼국시대'라는 특정 시기를 추가해 김치의 '원조'가 중국이라는 종전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바이두는 현재 이 정보를 네티즌들이 수정할 수 없도록 막아놨다.

    중국이 '파오차이'로 부른다고 우리도 인정?


    황당한 것은 바이두에 앞서 이미 문화체육관광부가 "중국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음식명의 관용적인 표기는 그대로 인정한다"며 '김치찌개'를 '泡菜湯(파오차이탕)'이라고 불러도 된다고 허용했다는 사실이다.

    문체부는 지난해 7월 15일 제정한 '공공 용어의 외국어 번역 및 표기 지침'에서 "영어권에서 이미 널리 쓰이고 있는 음식명의 관용적인 표기는 그대로 인정한다"며 '김치(Kimchi)' '불고기(Bulgogi)' '비빔밥(Bibimbap)' 등의 예를 들면서도 "중국의 경우엔 '泡菜汤(김치찌개)'와 '大酱汤(된장찌개)'를 인정한다"고 규정했다.

    이른바 중국발 '김치공정(工程)'의 단초를 우리 정부가 제공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논란이 커지자 문체부는 13일 "문체부 훈령 제4조 제2항 제3호 나목에서는 '유사한 개념이 있지만 우리나라의 전통성과 고유성을 드러내야 할 경우에 순우리말로 음역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김치를 '신치(辛奇)' 등으로 표기할 수 있고, 동시에 제4조 제2항 제5호에서는 '중국에서 널리 사용되는 번역 및 표기는 관용으로 인정해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해 김치를 '파오차이(泡菜)'로도 표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근거로 '신치'와 '파오차이', 두 단어가 혼용되고 있음을 밝힌 문체부는 "향후 김치의 중국어 번역에 대한 국민 정서 등을 고려해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계부처와 전문가 협의를 거쳐 훈령을 정비해나갈 계획"이라고 부연했다.

    문체부는 국립국어원 등과 확인·검토 절차를 거쳐 오는 3월까지 훈령 개정을 완료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욕심쟁이 중국, 아리랑·동요·한복까지‥ "다 내 거"


    김치의 기원과 명칭을 왜곡한 바이두의 행보는 동아시아 문화를 자국 문화로 편입하려는 중국의 '문화 동북공정(文化 東北工程)'이 본격화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002년부터 중국의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는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한 중국은 고조선·고구려·발해 등을 고대 중국 동북지방에 속한 '지방정권'으로 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역사뿐만이 아니다. 중국은 우리나라의 '동요'와 '한복'까지 자국의 문화라고 우기는 중이다. 심지어 2011년엔 '아리랑'을 국가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중국 베이징TV의 경연 프로그램 '과계가왕(跨界歌王)'에서 한 출연자가 한국 동요 '반달'을 부르자 제작진은 "중국의 조선족 민요"라고 소개했다.

    같은 달 중국 게임 제작사 페이퍼게임즈는 '샤이닝니키(Shining Nikki)'의 한국판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한복 아이템'을 이용자들에게 지급했다. 그러자 "한복은 한국의 고유 의상이 아니다" "명나라 전통의상 '한푸(漢服)'가 원조다"라는 중국 네티즌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네티즌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페이퍼게임즈는 "우리는 '하나의 중국'에 속한 기업으로, 조국의 입장과 항상 일치한다. 국가 이익에 반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한다"고 밝힌 뒤 론칭 7일 만에 한국 서비스를 종료했다.

    中 관영언론 "중국 김치가 한국 요식업계 지배"


    동요와 한복 등에 대한 중국의 시비가 단발성에 그쳤다면, 김치를 자국 문화로 흡수하려는 중국의 움직임은 지난해부터 관영언론 등을 중심으로 꾸준히 전개되고 있다.

    '김치공정'의 직접적인 발단이 된 건, 중국 환구시보(環球時報)의 보도다.

    환구시보는 지난해 11월 29일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중국의 절임채소인 파오차이를 국제표준으로 정했다"며 "한국 김치도 파오차이에 해당하므로 이젠 중국이 김치산업의 세계 표준"이라는 글을 환구시보 바이두 계정에 올렸다.

    그러면서 "이 표준 제정에 한국의 김치전문가는 참여하지도 않았다"며 '김치 종주국의 굴욕'이라는 자극적인 타이틀을 달았다.

    그러나 이 글은 사실과 달랐다. ​ISO가 "국제표준으로 인가한 것은 중국 쓰촨성의 파오차이로, 해당 식품 규격은 '김치'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구시보는 정정보도는커녕 관련 내용을 삭제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환구시보의 영문판인 글로벌타임스는 지난해 12월 30일 "한국에서 수입되는 김치의 80%가 중국의 한 마을에서 생산됐다"는 기사로 공세 수위를 높였다.

    글로벌타임스는 "한국이 수입하는 김치의 90%가량은 중국산인데, 이 중 산둥(山東)성 핑두(平度)시 런자오(仁兆)현의 작은 마을이 수출의 80%를 책임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곳을 '중국 최고의 김치 마을'로 추켜세운 글로벌타임스는 지난 10월 한국의 배추 가격이 폭등한 것을 거론하며 "한국 내 김치 부족 사태가 자신에게 훌륭한 사업 기회가 될 것 같다"는 한 농부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중국 김치가 고품질과 합리적인 가격으로 한국의 요식업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굴욕적인 분석을 곁들였다.

    유명 유튜버에 UN 주재 中 대사까지 '김치戰' 가세


    이처럼 중국 관영언론이 불붙인 '김치 원조' 논쟁에 유명 유튜버까지 뛰어들면서 논란이 커지는 양상이다.

    1400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인기 유튜버 리쯔치(李子柒)는 지난 9일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빨간 양념까지 묻히는 김장을 시연해 보였다.

    약 20분 분량의 영상을 올리면서 리쯔치는 '중국요리(#ChineseCuisine)' '중국음식(#ChineseFood)'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누가봐도 한국식 김치를 담그는 장면이었지만 가타부타 '중국음식'이라는 태그를 달아, 구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이에 수많은 한·중 네티즌들이 해당 동영상으로 몰려가, 리쯔치를 비난하거나 옹호하는 갑론을박을 벌였다.

    이 같은 양국 네티즌의 '충돌'에 글로벌타임스는 "불필요한 논쟁"이라며 "서로가 상대 문화를 열린 자세로 바라봐야 한다"는 무책임한 논평을 달기도 했다.

    리쯔치의 영상이 논란을 빚으면서 앞서 김치를 홍보하는 게시물을 SNS에 올린 장쥔(張軍) 유엔(UN) 주재 중국 대사에게도 관심이 집중됐다.

    장쥔 대사는 지난 3일 트위터에 직접 담근 김장 사진을 올린 뒤 "겨울 생활도 다채롭고 즐거울 수 있다. 그 방법 중 하나는 직접 만든 김치를 먹어보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어렵지 않다"며 "동료들도 아주 맛있다고 했다"는 말로 마치 '김치 홍보 대사'를 방불케하는 소감을 남겼다.

    다만 장쥔 대사는 리쯔치처럼 김치가 '중국 전통음식'이라는 식의 사족은 달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 정부 공식 계정인 그의 트위터에, 중국의 치적을 알리는 게시물 대신 '김치 홍보물'이 올라왔다는 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반크 "빨갛다고 다 중국의 것 아냐‥ '中 문화패권주의' 막아야"


    지난 11일 "김치를 파오차이로 번역한 문화체육관광부 훈령 제427호를 바로 잡아달라"며 중국의 '김치공정'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를 주문한 반크는 최근 글로벌 청원사이트 '체인지닷오알지(www.change.org)'에 올린 글에서 "빨갛다고 다 중국의 것이 아니다. 중국의 문화패권주의를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반크는 "한국의 한복과 아리랑을 중국문화라고 왜곡한 중국이 이제 한국의 전통음식인 김치까지 중국음식이라고 왜곡하고 있다"며 "중국에서 영향력이 큰 언론사와 포털사이트가 김치의 기원이 중국이라고 왜곡하고, 이를 시정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은 중국이 김치를 자국 문화로 홍보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반크는 "따라서 바이두 백과사전과 중국 유명 언론사인 환구시보의 김치 왜곡은 한국의 고구려를 중국의 역사로 왜곡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추진한 '동북공정'처럼 한국의 음식문화를 중국의 문화로 만들기 위한 이른바 '김치공정'이라 추측한다"고 주장했다.

    반크는 "한국인들에게 김치는 국제사회에 한국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음식문화의 상징"이라며 "이런 의미에서 김치를 자국 문화로 흡수하려는 중국의 '김치공정'은 중국의 국수주의와 문화 패권을 드러내는 것이고, 이를 방치할 경우 한국과 중국 두 나라 국민들 사이에 큰 분열이 생기는 것은 물론 동북아시아 평화에도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 민간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가 환구시보와 바이두 백과사전을 상대로
    ▲ 민간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가 환구시보와 바이두 백과사전을 상대로 "한국 전통음식 김치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바로 잡을 것"을 요구하는 글을 글로벌 청원 사이트 '체인지닷오알지(change.org)'에 올려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 제공 = www.chang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