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보 전담기관 두지 않겠다는 것은 안보 포기하는 것… 이런 나라 없어""보안 절실한 시기에 약화… 국제공조 불가능, 스파이에게 대문 열어주는 것"
  • ▲ 염돈재 전 성균관대 국가전략정보원 원장. 노무현 정부에서 국정원 제1차장을 지냈다. ⓒ박성원 기자
    ▲ 염돈재 전 성균관대 국가전략정보원 원장. 노무현 정부에서 국정원 제1차장을 지냈다. ⓒ박성원 기자
    청와대가 4일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에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안보 실세'로 불리던 박선원(57) 현 국정원장외교안보특보를 내정했다고 밝혔다. 

    신임 박 실장은 386 운동권 출신(연세대 82학번)으로 반미 학생운동 조직인 '삼민투'에 몸담았고, 1985년 미국문화원 점거 사건으로 수감생활을 했다. 노무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을 지내며 서훈 당시 국정원 3차장(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과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을 물밑에서 추진했다. 

    국정원 신임 2차장에는 박정현(58) 국정원장비서실장, 3차장에는 여성인 김선희(51) 국정원 정보교육원장이 각각 내정됐다. 

    국정원 조직개편으로 해외·대북업무를 동시에 관장하게 된 국정원 1차장(차관급)은 김상균(58) 전 2차장이 맡는다. 김 차장은 2018년 3월과 9월 서훈 당시 국정원장 등과 함께 대북 특사단으로 평양에 다녀오는 등 문재인 정부의 대북관계에서 한 축을 맡아왔다. 

    당·정·청이 권력기관 개혁과 관련한 협의회를 열고 국가정보원 개편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것은 지난달 30일이다. 이날 박지원 국정원장은 "국정원 개혁의 골자는 국내정치 개입 차단과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 국회에 의한 민주적 통제 강화"라고 말했다. 

    국정원 출신인 김병기 민주당 의원이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나선 상황이었다.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로 시작된 우리나라 최고 정보기관이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현재 나와 있는 국정원 개편안은 크게 5가지 줄기다.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명칭 변경 ▲국내정보 수집기능 폐지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 ▲국회 정보위원회와 감사원의 통제 강화 ▲국정원 감찰실 직책 대외개방 등이다. '권력기관 개혁'이라는 명분이지만, 하나같이 국가안보를 무력화하는 내용으로 일관됐다는 지적이다.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 국정원 제1차장을 맡았던 염돈재 전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은 "사실상 안보전담기구를 폐지하겠다는 것"이라며 국정원 개편안을 강하게 비판했다. 

    염 전 원장에 따르면, 역대 좌파정권이 모두 출범 전에는 '국정원을 개혁하겠다'며 큰소리를 냈지만, 실제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위상을 크게 훼손하는 시도는 거의 하지 못했다. 비공식적인 권한이나 일부 잘못된 관행을 고쳤을 뿐이다. 

    "어느 정권이든 집권 후에는 국정원의 역할 없이는 국정운영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최고 정보기관을 약화하는 것은 정치적으로도 큰 부담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뉴데일리는 3일 염 전 원장을 만나 이번 개편안을 하나하나 뜯어봤다. 염 전 원장은 "이번 정부에서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일을 추진하는지 모르겠다"며 "완전히 국가를 파탄내겠다는 의도가 아니라면 이런 개편안은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것"이라며 개탄했다. 다음은 염 전 원장과 일문일답이다.

    - 국가정보원 명칭을 바꾼다고 한다. 

    "어느 나라든 자국 최고 정보기관의 명칭에는 '국가'(National) 또는 '중앙'(Central)이라는 단어를 붙인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라는 것이 이름에 드러나게 해야 조직의 성격이 분명해지고, 외국 정보기관과 협조할 때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개편안은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명칭을 바꾸겠다는 건데, 그 이름에서 각 부처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최고 정보기관이라는 것을 알기 어렵다. 이름만 봐도 최고 정보기관을 사실상 없애겠다는 의도가 아닌가 의심을 갖게 한다."

    -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국정원을 개혁하겠다고 했다. 차이점은?

    "그때는 말만 무성했을 뿐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국가안전기획부'를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을 바꾸기는 했지만, 공식적인 기능과 역할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원 보고서를 중시했고, 해외 순방할 때마다 다른 기관은 제쳐두고 국정원 보고서를 꼬박꼬박 챙겨보셨다. 물론 김대중 정부 때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막겠다며 직원 600명을 쫓아내 '대공요원 학살'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죄' 수사에서는 국정원이 손을 떼라고 했는데, 찬양고무죄 수사는 대공수사의 출발점과 같은 것이라 그때부터 대공수사에 어려움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모두 국가안보를 지킨다는 국정원의 역할을 본질적으로 흔들 만한 것은 아니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대북 공작이 전보다 활발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이상하다. 개편안대로 된다면 국정원은 그냥 폐지하는 것과 다름없게 된다. 게다가 조직의 수장인 신임 원장이 앞장서서 이런 일을 하고 있다. 이제까지 여러 정권을 거쳤지만, 신임 원장이 부임 첫날부터 당·청과 구체적 개혁내용을 논의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정치 9단'이 좀 잘못 생각하신 것 같다."

    - 국내정보 수집 기능을 없애겠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말 그대로 대한민국에는 안보를 담당하는 국내 정보기관이 사라지는 셈이다. 세계에서 제대로 된 나라 중 국내안보 전담 정보기관을 두지 않는 나라가 없다. 우리 안보는 북한의 군사위협 못지않게 남조선혁명전략으로 인해 커다란 위협을 받고 있다. 지금 국가보안법마저 무력화돼 광화문 한복판에서 김정은을 대놓고 찬양하는데도 손을 쓰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정보 전담기관을 두지 않겠다는 것은 안보를 포기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옮긴다는데.

    "현재 국내정보와 안보정보의 통합이 세계적 추세이자 과제다. 미국도 CIA와 FBI 정보가 통합되지 않아 9·11테러를 당한 것으로 보고 두 업무 통합을 위해 국가정보국(DNI)을 신설했다. 북한 간첩은 90%가 제3국을 통해 침투해, 국내정보와 해외정보가 분리될 경우 간첩 색출이 불가능해진다. 

    더욱이 경찰은 법 집행기관이므로 외국에서 범죄정보 수집이나 수사활동을 할 수 없다. 주권침해로 큰 외교적 문제가 된다. 또 경찰이 외국에서 수집한 정보나 물증은 불법 수집이어서 증거능력을 인정받기 어렵다. 대공수사에는 인간정보·기술정보 수집 수단이 함께 활용돼야 하는데, 경찰은 그런 능력이 없고 북한의 대남전략과 주체사상에 능통한 수사요원도 적다. 남북교류 강화를 위해서는 북한 간첩이나 국가위해세력을 견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정부는 국내보안 능력이 가장 필요한 시기에 이를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 

    - 국정원 '흑역사' 청산을 위한 개혁이라고 한다.

    "이근안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부천서 성고문 사건, 그리고 최근 벌어진 탈북여성 성폭행 사건을 보라. 이런 일은 국정원 조직에서는 상상조차 못하는 일이다. 정말 '찬란한 흑역사'를 가진 경찰에 대공수사권을 넘긴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인가."
  • ▲ 염돈재 전 성균관대 국가전략정보원 원장. 노무현 정부에서 국정원 제1차장을 지냈다. ⓒ박성원 기자
    ▲ 염돈재 전 성균관대 국가전략정보원 원장. 노무현 정부에서 국정원 제1차장을 지냈다. ⓒ박성원 기자
    - 박지원 원장은 국정원과 경찰이 협조하면 된다고 했는데.

    "탁상공론이다. 간첩 수사는 간단한 징후정보로 수사에 착수하고, 수사 과정에서 입수된 정보로 추가적인 정보를 수집해 수사를 완성한다. 대공수사가 경찰로 넘어가면 이런 협조가 이루어질 수 없다. 자기 업무 챙기기에도 바쁜 국정원 해외정보관이 경찰을 위해 헌신하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또 국정원이 60년간 축적한 정보·파일·심문기법을 활용할 수 없다. 정보기관의 생명인 보안 때문이다. 

    경찰은 국정원에 비해 대공수사능력이 훨씬 떨어진다. 2015년 경찰 부실수사 6만3300건 중에서 검찰 재수사로 유·무죄가 바뀐 것이 4만6800건(74%)에 달한다. 이런 경찰에 중요한 안보수사를 맡길 수 있겠는가."

    - 국회와 감사원의 국정원 통제를 강화하겠다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권력의 분산과 민주적 통제를 강조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국정원이 권력기관이라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노무현 정부 이후 국정원은 더이상 권력기관이 아니다. 국회 전문위원이면 상당히 권한이 센 편인데, 정보위원회 전문위원 자리는 인기가 없다. 정부기관이나 일반인에게 행사할 권한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의회에 정보위원회를 두고 강력한 통제를 하는 나라는 소수에 불과하다. 미국과 독일은 있지만 영국과 프랑스에는 없다. 정치인과 정보공유 자체가 보안에 큰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정보업무는 비정형적 업무, 성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업무가 많다. 규정과 성과를 중시하는 국회·감사원이 정보기관을 강하게 통제하면 정보기관은 일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

    - 국정원 감찰실 직책을 외부에 개방한다고 한다.

    "국정원 감찰실은 국정원의 속살을 가장 잘 아는 조직이다. 예방감찰을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직책을 맡아, 외부인이 한시적으로 근무하고 떠난다고 생각해보자. 모든 정보가 다 새나가게 되고, 그렇게 되면 공작원·협조자는 물론 외국 정보기관도 우리와 협조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과거 남재준 원장이 잠깐 시도한 적이 있는데, 내부에서 많은 비판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 그런데도 이런 개편을 추진하는 의도는 뭐라고 보는지.

    "모를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합당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개편안이 가져올 결과다. 북한 간첩에게 고속도로를 깔아주고, 친북·종북세력의 활동공간을 대폭 넓혀주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을 사실상 폐지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몇 마디 말로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두려울 뿐이다." 

    * 염돈재 전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은 1968년 정보부 공채시험에 수석합격하고 정규과정 1년 교육과정도 수석으로 졸업한 이후 30여 년간 주로 해외분야에서 근무했다. 노태우 청와대에서 북방정책 담당 비서관으로 근무하면서 막후교섭을 통해 1990년 6월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한·소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노무현 정부에서 국정원 제1차장으로 근무했고, 퇴임 후 2015년까지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