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북한 인권에 침묵하는가? 민주화의 탈을 쓴 위선과 기만을 멈추라"
  • 인터넷과 기술의 발달로 방대한 정보가 빠르게 오가는 현대사회는 크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현상을 보이게 되었다. ▲ 무감각 ▲ 모호함 ▲ 이기(利己)

    신체와 정신에 자극이 지속되면 사람은 저항할 힘을 잃는다. 바야흐로 자극의 시대에 살고 있다. 시신경 앞을 번쩍이는 영상들이 눈을 빼앗는다. 오래 전부터 눈은 마음의 창이라 하였다.
    잠을 자지 못하면 가장 먼저 흐려지는 것은 안광이다. 눈을 크게 뜰 수가 없다. 자의든 타의든 지속적인 자극에 눈을 빼앗긴 현대인들은 잠을 자도 못 잔 것처럼 힘이 날 수가 없다.
    영상은 1초에 무수한 프레임이 담긴다. 자연 상태라면 1초는 1초만큼만 보이는 것이다. 1초에 10초 100초만큼 정보를 보면 과부하가 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이것을 매일 허용하고 있다.
    이 외에도 오염된 공기, 미각을 찌르고 서서히 마비시키는 음식, 도심을 걷다보면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기계음 섞인 음악, 사람이 만들어 사람을 위협하는 바이러스.....

    오감의 자극만으로도 이러한데 뉴스에서 나오는 소식들은 갈수록 흉흉하다. 새 소식이라고 나오는 이야기들이 기쁜 소식이 없다. 암울하다. 현대인들이 범람하는 사회적 자극에 자의로, 타의로, 에너지를 빼앗기고 있다는 것이 긴 서론의 요지다.

    신체적 정신적 자극이 지속되면 사람은 저항할 힘을 잃는다고 앞서 적었다. 감각이 둔해지는 것이다. 무감각에 가까워진다. 무감각해진 사람은 생존에만 에너지를 쓰기에도 벅차다. 점차 진실과 거짓,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데 쓰는 에너지를 쓰기 어렵게 된다. 분별하고자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것도 또 다른 에너지 소모가 된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잘못된 것에 대한 정의가 구현되지 못하고 뒤로 미뤄진다. 사회에 모호함이 팽배해진다. 모호함이 팽배한 사회는 최소한의 것을 지키게 된다. 따라서 사람들은 점차 이기에 골몰한다. '나'를, '나의 영역'을 건드리지 않으면 그게 공산주의 주체사상이든 자유민주주의든 상관이 없어지는 것이다.

    완벽한 타의에 의해 에너지뿐 아니라 최소한의 권리까지 강탈당한 사람들이 있다. 분노, 충격, 참담, 공포... 그들의 이야기를 도저히 또 다시 접하고 싶지 않았다. 실제 보지도 않은 현장들이 눈앞에 그려져 고문이 따로 없었다. 가히 접해 보지 않은 충격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역겨운 것은 피해자들에게 강제된 김일성 찬양이었다. 바로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이야기다.
    북한의 인권말살. 이 단어가 주는 자극이 참 무뎌졌다. 그러나 다른 표현이 없다. 실상은 그야말로 말살이다. 어떻게 날을 세워 저 미친 정권의 숨통을 조이고 끊어낼 수 있을까.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수감자 수는 30만 명으로 추산된다. 여의도 거주 인구에 버금간다. 이 많은 사람들을 가둬놓고 사람 이하의 취급을 하고 있다. 수용소라면 범죄자 아닌가? 범죄자는 당연히 수감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이 수감되었는가 보자. 

    지주, 친일파, 종교인, 해방전쟁(6.25사변, 북한은 6.25를 해방전쟁이라 부른다) 당시 치안대에 가담한 사람, 김일성 유일체제를 구축해가는 과정과 김정일 세습체제에서 숙청된 이른바 반당종파, 해외로 도주하려던 자, 체제를 비판한 자, 외국에 나갔다가 들어와 보고 들은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전파한 자, 귀국자(북송교포), 의거자(월북자). 북한은 이들 당사자와 가족을 사회와 완전히 격리시킨다. 
     
  • ▲ 북한 정치범수용소 위치, 관리 및 운영 현황. ⓒ 2020년 북한인권백서(통일부)
    ▲ 북한 정치범수용소 위치, 관리 및 운영 현황. ⓒ 2020년 북한인권백서(통일부)
    상식을 가지고 보자. 이들이 수감될 만큼의 죄를 가지고 있는가? 이들 가족은 무슨 죄인가? 체제가 이들의 죄를 규정한다. 무고한 사람의 재산과 자유를 앗아가는 낙인이다. 이 기준대로라면 대한민국 사람은 모두 숙청 대상이다.

    대한민국에 고한다. '인권' 변호사 출신 문재인 대통령에게 고한다. 과거 남한 민주화에 열을 올려 정권을 잡은 사람들은 왜 북한 인권에 침묵하는가? 당장 '나'에게 피해도 없고 이득도 없는 '북한 민주화'는 투쟁의 대상이 될 수 없는가? 언제부터 평화와 정의가 거래 대상이 되었는가? 정녕 순수한 의도로 이 땅의 정의를 위해 싸웠고 민주화를 이뤘다면, 이들의 무비판과 침묵은 강력히 질타 받아 마땅할 위선이요 기만이다.
    지구상 가장 악독한 독재와 인권 찬탈의 대상과 평화라니. 북한 정권이 유지된 평화와 통일은 의미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성립 불가능한 개념조차 분별 않는 무지를 이 나라의 위정자만큼은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기의 감옥에서 탈출해야 한다. 이기심의 괴물과 싸워야한다. '내'가 없으면 '국가'도 없고 '국가'가 없으면 '나'도 없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언제까지 강제로 박탈당한 이들이 스스로 압제를 뚫고 일어나길 바랄 것인가. 자의로 잃던 에너지를 이제는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권한조차 강제되고 말살되는 곳에 기울일 때다.
    나라를 잃어보았던 선대의 피로 얻어 누리는 자유다. 이 자유를 '나'의 충족만을 위해 쓰는 결과는 무감각, 모호함, 이기의 감옥뿐이다. 각성하라. 지금 이 안일함은 다시 나라를 잃게 할 수 있다.

    정순복 (1985년생)
    리박스쿨 청년 회원
    ※ 리박스쿨은 이승만-박정희 스쿨의 약자로 이승만 건국대통령의 근대화와 한강의 기적을 만든 박정희 부국대통령의 산업화를 연구하는 아카데미 모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