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성격 고려하면 적극적이 아닌 한 허위사실 공표로 처벌 못해" 판단… "거짓말 기회만 줬다" 반발
  •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 12명이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 상고심에서 선고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 12명이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 상고심에서 선고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친형 강제입원'과 관련한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허위사실공표 혐의를 무죄 취지 파기환송한 대법원의 판단을 두고 논란이 이어진다. 

    대법원은 선거운동에 포함되는 TV 토론회의 성격을 고려하면 적극적으로 허위사실을 표명한 것이 아닌 한 허위사실공표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선거운동 과정의 일부인 만큼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폭 넓게 허용돼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를 두고 대법원이 향후 선거 토론회 등에서 후보자들이 거짓말을 할 명분을 만들어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적극적 허위사실공표'에서 '적극적'이라는 표현 역시 상대적일 수 있기 때문에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6일 이 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상고심 선고기일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후보자 등이 토론회의 주제나 맥락과 관련 없이 일방적으로 허위의 사실을 드러내 알리려는 의도에서 적극적으로 허위사실을 표명한 것이 아니라면 허위사실공표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재명 상고심, 대법관 '7 대 5'로 의견 갈려

    이 지사는 2018년 12월 △'친형 강제입원'과 관련해 성남시장 권한을 남용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와 △2018년 지방선거 과정에서 이를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 △검사를 사칭해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 △대장동 개발 업적과 관련해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날 쟁점이 된 것은 2심에서 유죄 판결이 내려진 친형 강제입원 관련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다. 

    이 지사는 2018년 6월 선거 과정에서 이뤄진 TV 토론회에서 상대 후보자가 "친형을 강제입원시킨 적이 있느냐"고 묻자 "그런 적 없다"고 답해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를 받았다. 

    대법원은 이 지사의 발언을 허위사실공표로 처벌할 수 없다는 의견(다수의견)과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한다는 의견(소수의견)이 7 대 5로 갈렸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대법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다는 말이다. 

    대법관 중 변호사 출신인 김선수 대법관은 과거 이 지사 관련 사건의 변호를 맡은 적이 있어 심리를 회피했다. 다수의견을 낸 7명의 대법관은 이 지사의 발언이 상대 후보자의 의혹 제기에 "전반적으로 부인하는 취지로 대답한 것"이므로 적극적 허위사실공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적극적 허위사실공표가 아닌 한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따라 허용돼야 한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반면 소수의견에서는 "이 지사가 친형 정신병원 입원 절차에 관여한 사실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취지로 말했다"고 봤다. 

    소수의견을 낸 박상옥 대법관은 "이 지사는 상대 후보자의 질문에 대해 단순히 부인하는 답변만을 한 것이 아니다"라며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은 숨기고, 유리한 사실만 덧붙여 전체적으로 '피고인이 이재선의 정신병원 입원 절차에 관여한 사실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취지로 발언했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대법원의 판단이 '사법부의 주류'가 좌파성향 대법관들로 교체된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판결이 됐다는 평가를 내놨다. 

    최진녕 법무법인 이경 변호사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임명된 대법관들이 다수의견에 섰고, 이전 보수정권에서 임명된 대법관들이 소수의견을 낸 것으로 보인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노동자의 세상'이 됐다고 말했듯, 진보적 색채를 띤 대법관들로 사법부의 주류세력이 교체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거짓말해도 무방?… "정치인들 거짓말 자유만 넓혀줬다"

    대법원이 허위사실공표죄의 성립을 이전보다 좁게 해석함으로써 사실상 정치인들의 표현의 자유만 넓혀준 꼴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정치인들의 선거운동 과정에서 사실과 다른 과장을 하거나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준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날 대법관들의 소수의견 중에서도 '공표'의 범위를 제한하는 해석이 자칫 선거의 공정과 정치적 표현의 자유 사이의 균형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공직선거법에서의 허위사실과 일반명예훼손에 대한 허위사실은 좀 다르게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후보자들의 토론회 과정 발언을 이처럼 좁게 판단한다면 공직선거 후보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 않겠나"라고 지적했다. 

    최 변호사는 "향후 방송 토론회가 국민의 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운영될 것인지 의문"이라면서 "이번 판결이 정치인들의 거짓말할 자유는 보장되는 반면 국민의 건전한 여론의 장을 형성하는 올바른 정치적 의사는 축소시킨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선거법상 허위사실도 적극적 허위사실과 소극적 허위사실이 있다는 것을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처음 알았다"며 "적극적 허위사실만 처벌되고 소극적 허위사실은 처벌되지 않는다는 괴이한 논리도 처음 봤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