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두로 정권, 지난해 1월 미국 제재 후 궁지에 몰려…유가 급락에 사정 어려운 이란과 손 잡아
  • ▲ 지난해 9월 선박위치식별장치(AIS)를 끄고 운항하다 적발돼 영국령 지브롤터 해협에 억류됐던 이란 유조선 '아드리안 다르야'호. 시리아 알 아사드 정권에게 석유를 실어 나른다는 의혹을 받았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해 9월 선박위치식별장치(AIS)를 끄고 운항하다 적발돼 영국령 지브롤터 해협에 억류됐던 이란 유조선 '아드리안 다르야'호. 시리아 알 아사드 정권에게 석유를 실어 나른다는 의혹을 받았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란 정부가 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간) 유엔 사무총장에게 미국을 비난하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고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전했다. 베네수엘라에 휘발유를 수출하는 것을 미국이 방해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란과 베네수엘라, 미국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이란 “미국의 행동은 해적질, 방해 말라”

    모하마드 자바르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지난 17일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미국이 이란의 베네수엘라 석유제품 수출을 차단하고 있다며, 이를 ‘해적질’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국제사회에 대한 괴롭힘을 멈추고, 해양법을 존중해야 한다”고 자리프 외무장관은 주장했다.

    실제 미국은 카리브해 일대에 구축함 등 전투함 4척과 P-8 포세이돈 초계기 등을 배치해 놓고 베네수엘라 해역으로 들어가는 이란 유조선들을 차단할 준비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미 해군 구축함들이 막으려는 이란 유조선은 모두 5척이다. 이란 유조선들은 호르무즈 해협 인근의 정유시설에서 휘발유를 선적한 뒤 지중해를 빠져나와 베네수엘라로 향하는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유조선들은 이르면 5월 말 베네수엘라에 도착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 유조선에는 총 15만5000톤, 약 4500만 달러(약 552억원) 상당의 휘발유가 실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병상련’ 이란과 베네수엘라

    산유국인 베네수엘라가 이란으로부터 휘발유를 수입하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다. 지난해부터 미국의 제재를 받은 뒤 석유정제설비 유지보수에 필요한 돈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1월 니콜라느 마두로 대통령에 반기를 든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지지하며, 마두로 정권의 퇴진을 요구했다. 동시에 마두로 정권의 자금줄인 국영석유회사 PDVSA를 제재했다. PDVSA는 미국의 제재를 피해보려고 러시아 소재 은행을 활용하는 등 여러 가지 시도를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오히려 러시아 기업이 미국의 제재 대상이 돼 버렸다.
  • 마두로 정권과 PDVSA를 향한 미국의 제재는 날이 갈수록 강해졌다. 지난해 12월에는 PDVSA와 관련이 있는 유조선들을 제재 대상에 올렸고, 올해 1월에는 PDVSA 소유 항공기 15대를 제재 대상에 포함시켰다.

    PDVSA와 마두로 정권의 사정은 올 들어 더욱 나빠졌다. 우한코로나가 전 세계로 확대되면서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기 어려워졌다. 또한 우한코로나로 세계 운송·물류 시장이 멈추면서 유가마저 급락했다. 석유 수출 말고는 수입이 없는 베네수엘라는 결국 미국에 읍소했다.

    마두로, 미국에 읍소 통하지 않자 이란과 손잡아

    지난 3월 12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고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우한코로나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제재를 좀 해제해 달라”고 미국에 읍소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지금이야말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재 해제를 요청할 때”라며 “베네수엘라가 감염병 확산에 맞서기 위해 필요한 것을 살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제재는 풀리지 않았다.

    이때 손을 내민 것이 이란이다. 이란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중국에 대량의 석유를 수출한 덕분에 미국의 제재를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올 들어 유가 급락과 우한코로나 문제 때문에 석유 수출량이 급감하자 베네수엘라로 눈을 돌린 것이었다.

    이란은 최근 PDVSA의 석유정제시설을 보수할 장비와 기술진을 베네수엘라에 파견했다. 또한 지금 당장 필요한 휘발유도 베네수엘라에 보냈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지난 4월에 베네수엘라가 이란에 보낸 금은 9톤, 약 5억 달러(6130억원) 상당”이라고 블룸버그 통신이 지난 5월 3일 보도했다.

    앨리엇 에이브럼스 미국 국무부 베네수엘라 담당 특사 또한 4월 말 허드슨 연구소 주최 행사에서 “베네수엘라가 지난 4월 이란에게 휘발유 대금으로 금을 줬다”며 “미국의 제재를 받는 두 나라 사이의 협력이 증대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미국은 이처럼 이란과 베네수엘라 간의 거래를 파악하고 있는 것은 물론 차단을 위해 노력 중이다. 미국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지난 17일 “우리는 이란 유조선이 (베네수엘라로 가는 것을) 차단할 방법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제재를 받는 나라들끼리의 거래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