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현 KBS 시청자위원장도 시민당… KBS 기자협회 "권력 감시견이 정당 애완견 됐다" 개탄
  • 공영방송 KBS를 대표하는 부사장이 사퇴 한 달 만에 범여권 비례연합정당 비례대표 후보에 올랐다. 순번도 당선 안정권에 해당하는 8번을 받았다.

    KBS 이사 출신인 KBS 시청자위원회 위원장도 자리에서 물러난지 수일 만에 같은 당 '순위승계 예비자'가 됐다.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은 24일 당초 후보 명단에도 없던 정필모(사진) 전 KBS 부사장을 비례대표 8번으로 확정했다. 정 전 부사장은 '언론개혁' 분야 추천 인사로 발탁됐다. 이창현 전 KBS 시청자위원회 위원장은 정 전 부사장에게 밀려 승계권 예비자가 됐다.

    KBS에서 부사장과 시청자위원장을 지낸 간부들이 같은 당에서 국회의원 배지를 놓고 서로 다투는 낯뜨거운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를 두고 KBS 내부에서 비판의 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KBS 1·2·3노조 모두 "KBS의 독립성과 공정성, 신뢰도에 흠집을 내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며 "당장 후보직을 사퇴하라"는 비판성명을 냈다.

    특히 KBS기자협회는 "정치권력을 비판하던 '감시견'이 정당의 '애완견'으로 바뀐 현실에 후배들이 괴로워하고 있다"며 KBS 전직 간부의 총선 출마를 맹렬히 규탄했다. 사실상 KBS 구성원 전체가 반기를 들고 일어난 모양새다.

    "전 임직원 상대로 '자리욕심'과 '출세욕' 지적했던 사람이…"


    1노조인 KBS노동조합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영방송 KBS를 이끄는 부사장 자리에 있다가 특정 정당의 국회의원 선거 후보로 나선 것은 입이 열 개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이는 "KBS 윤리강령을 단순히 어긴 것뿐만 아니라 시한부 선고를 받은 KBS의 저널리즘을 쓰레기통에 처박은 행위"라고 규탄했다.

    KBS 윤리강령에 따르면 KBS 구성원 중 시사프로그램 진행자와 정치 관련 취재·제작담당자는 해당 직무가 끝난 후 6개월 이내에는 정치 활동을 못하도록 돼 있다. 정필모 전 KBS 부사장이 방송 진행자나 취재·제작담당자는 아니지만 공정성과 객관성이 중요시되는 공영방송의 전직 간부로서 언론윤리에 저촉될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KBS노조에 따르면 정 전 부사장은 지난해 KBS 이사회에 진실과미래위원회 활동을 보고하면서 "공정성과 독립성을 지켜야할 간부들이 앞장서서 이것을 침해했다"며 "공영방송인으로서 '직업윤리'가 탄탄해야하는 데 외부의 압력에 취약하고, 간부의 개인적 '자리욕심'과 '출세욕'이 작용했다"고 이전 임직원들을 비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KBS노조는 "정 전 부사장은 불과 몇개월 전 말을 거침없이 뒤집고 정치인으로 커밍아웃을 했다"며 "그야말로 '내로남불'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KBS노조는 "KBS 앵커 출신인 민경욱 의원이 당시 보도본부 문화부장에서 청와대 대변인으로 직행했을 때에도 대내외로 비난이 들끓었는데, 이번엔 KBS를 대표하는 부사장 출신이 뛰어들었다"며 "정 전 부사장의 선택이 KBS에 얼마나 심각한 오명을 뒤집어 씌웠는지는 삼척동자도 알 일"이라고 꼬집었다.

    KBS노조는 "정 전 부사장은 '부당한 겸직 및 외부 강의'로 KBS 규칙을 위반해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받고도 재심 기간에 부사장에 임명되는 특혜를 받은 인물"이라며 "그렇게 부사장 자리에 오른 뒤 적폐청산을 한답시고 직원들을 마구잡이 조사·징계하더니 이번엔 뒤에서 '총선 호박씨'를 까 KBS 구성원들의 뒤통수를 쳤다"고 지적했다.

    KBS노조는 "이러한 정 전 부사장의 행보를 보면 '그에게 공영방송 KBS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며 "결국 공영방송 KBS는 정 전 부사장 선거캠프의 '숙주'로 이용당하고 말았다"고 개탄했다.

    "KBS는 '정치적 거래' 밑천 다지고 경력 쌓는 놀이터"


    KBS노조는 더불어시민당 순위승계 예비자가 된 이창현 전 시청자위원회 위원장에 대해서도 비판의 날을 세웠다.

    KBS노조는 "이 전 위원장은 2018년 29기 시청자위원회가 출범할 당시 '지난 시기 KBS가 정치와 자본 권력을 비판하고 견제하며 사회 각계각층이 소외됨 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론의 장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고 밝혔지만, 정작 본인은 정치판에 뛰어들었다"고 지적했다.

    KBS노조는 "KBS 임직원과 외부 진행자조차 정치와 철저히 거리를 두려 하는데, 공영방송 KBS가 공적책무를 하도록 이끌어야 할 시청자위원회 위원장이 총선에 뛰어들다니 개탄스럽다"며 "예비 정치인, 이창현 전 KBS 시청자위원장이 특정 정치세력의 이해와 KBS의 이익 중 어느 것을 중시하며 시청자위원장 활동을 했을지 생각해보면 사태가 무척 심각하다"고 비판했다.

    특히 "시청자위원장으로서 취득할 수 있는 KBS의 정보와 약점이 외부 특정 정치세력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지는 않았을까하는 우려도 나온다"며 "전직 시청자위원장이자 전직 KBS 이사에게 KBS는 정치적 거래 밑천을 다지고 경력을 쌓으며, 임직원에게 큰소리를 칠 수 있는 놀이터가 아니었을까 의심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KBS의 공정성과 신뢰도에 또다시 깊은 상처"


    민주노총 산하 단체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2노조)도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2노조는 "KBS인들에게는 언론인의 정치 참여와 관련해 수 차례의 아픈 기억이 남아있다"며 "특정 개인이 본인의 영달을 얻기 위해 KBS의 이름을 사용하는 일들이 생길 때마다 KBS의 공정성은 훼손됐고, 묵묵히 제자리에서 현업을 지키는 모든 구성원들은 상처를 받아왔다"고 지적했다.

    2노조는 "정 전 부사장 역시 이런 상황을 넉넉히 짐작했겠지만 그는 언론 현업단체들의 추천을 고사하지도 않았고, 구성원들에게 최소한의 입장을 표명하지도 않았다"며 "언론을 통해서야 뒤늦게 이런 사실을 접한 대부분 KBS 구성원들이 더 큰 배신감을 느끼는 이유"라고 비판했다.

    이어 "정 전 부사장과 함께 이창현 KBS 시청자위원장이 순위승계 예비자로 여당의 비례대표 명단에 이름을 올린 점도 뼈아프다"고 지적한 2노조는 "이번 두 사례를 통해 공영방송 KBS의 공정성과 신뢰도에는 또다시 상처가 남게 됐고, 그 상처는 남아있는 모든 구성원들이 앞으로 감당해야 할 숙제가 됐다"고 씁쓸함을 토로했다.

    "당신들에게 공영방송은 권력으로 가는 디딤돌이었나?"

    3노조인 KBS공영노동조합은 "정필모 전 KBS 부사장이 범여권 비례연합정당에 입당해 당선이 유력한 순위를 얻은 것은 '진실과미래위원회'를 이끌며 '보복의 몽둥이'를 앞장서 휘두른 데 대한 보답"이라고 비꼬았다.

    공영노조는 "문제의 정당은 정필모 씨를 '언론개혁을 대표하는 후보자'로 뽑았다고 하는데, 참으로 앙천대소할 일"이라며 "부사장이었던 정필모 씨는 그동안 인민위원회나 다름없는 불법 적폐청산기구를 이끌었고 KBS를 정권 홍보매체로 전락시킨 책임을 져야할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KBS 역사에서 보직에서 내려오자마자 알량한 국회의원 뱃지 하나 달려고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는 집권 여당의 품 안으로 달려간 사례가 있었던가"라고 지적한 공영노조는 "정필모 씨의 정치권 투신은 그가 부사장이 되기 이전부터 특정 정당, 특정 대선 캠프에 선을 대고 한 몸으로 유착해 왔다는 세간의 입소문을 다시 소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공영노조는 "이창현 전 시청자위원장의 여당행도 도긴개긴"이라며 "비례 8번에 올랐다가 승계예비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이창현 씨의 정치권 돌진 또한 KBS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로 이들의 권력 탐닉은 누가 보기에도 개탄스런 일"이라고 비판했다.

    정필모 "후배들 비판 충분히 이해… 다 안고 가겠다"

    이처럼 자신의 총선 출마를 두고 '비난 여론'이 들끓는 것에 대해 정 전 부사장은 "후배들이 걱정하고 비판하는 것을 다 받아들이고,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며 "내가 안고 가야 할 짐이자 책임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24일 오후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이같이 밝힌 정 전 부사장은 "미디어 제도와 관련법이 20년 전 체제에 머물러 있는데, 달라진 환경에 맞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언론개혁이라는 소명을 달성할 수 있도록 책임감을 갖고 노력할 것"이라고 출마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