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야 어찌 되든 정권만 유지하면 된다는 한심한 작태" 27년 전 칼럼서 맹비난
  • 1992년 3월 13일 한겨레신문에 게재된 문재인 변호사의 칼럼.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1992년 3월 13일 한겨레신문에 게재된 문재인 변호사의 칼럼.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선거는 정권과 정당과 국회의원 또는 후보자 개인에 대한 심판이다. 그러한 심판이 정기적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선거를 하지 않을 때에도 항상 민의에 귀 기울이도록 하는 것, 이것이 대의제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선거의 의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992년 변호사 시절 14대 총선을 앞두고 쓴 신문 칼럼의 한 구절이다. 당시 문 대통령은 김영삼 민주자유당 총재의 최측근인 서석재 후보가 위법행위로 여당을 탈당해 무소속 꼬리표를 달고도 부산에서 'YS바람'을 전폭적으로 받는 것에 대해 "오만방자의 극치"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26년이 흐른 지난해 4월, 울산시장에 출마한 송철호 후보는 문 대통령의 30년 친구라는 '문심'(文心) 효과를 받는다는 명분하에 단수공천을 받아 논란이 됐다. 이 과정에 청와대가 문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여러 개입을 했다는 의혹이 커져간다. 

    문 대통령이 과거 정치권을 신랄하게 비판한 칼럼이 권력자가 된 현재의 자신을 향한다는 지적이다. 

    본지는 1992년 3월13일자 한겨레신문에 문재인 변호사가 "부산 'YS바람'의 허와 실"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것을 확인했다. 이 매체가 국회의원선거를 11일 앞두고 전국 각 지역 교수·변호사·작가 등 전문 필진을 동원해 현장을 진단하는 글이었다. 

    글에서 문 변호사는 "특정인에 의한 지역감정 바람이 선거를 좌지우지한다면 특정인을 추종하면 그만일 뿐 민의를 두려워할 필요도, 심판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게 되니 선거는 요식절차로 전락하고 만다"며 "이때 독재와 부패정치가 유권자들에게 보답하게 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고 지적했다. 부산지역 맹주였던 여당 김영삼 총재 측근들의 '줄서기식'  정치풍토에 비판적 견해를 보인 것이다. 

    당시 문 변호사는 자신이 사는 사하구에 출마한 서석재 후보를 겨냥해 "사하구는 민자당이 겉으로 내세운 후보 따로, 속으로 진짜 미는 후보 따로이다. 진짜 미는 후보는 김영삼 씨의 측근 중의 측근으로 과거 통일민주당 시절의 후보 매수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탈당하였기 때문에 사정상 무소속으로 출마할 수밖에 없었으나 사실상 민자당 후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서석재 후보는 결과적으로 'YS바람'에 힘입어 44%의 지지를 받아 당선됐다. 민자당 후보로 나온 이재국 씨는 서 후보의 보좌관이었으며, 서 후보를 밀어주기 위해 선거운동을 일절 하지 않았다. 득표율은 4.8%에 불과했다.

    문 변호사는 "현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지역감정은 특정지역의 정치상황을 특정 정치인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엄청난 오만을 낳는다"며 "우리는 그런 오만을 공천 과정에서부터 신물나게 겪고 있다. 나눠먹기 공천, 낙하산 공천, 연고와 무관하게 장기말 옮기듯이 이리저리 옮기는 공천 등 선거구민의 의사를 아예 무시해 겉치레 인사조차 하지 않는 것이었다"고 언급했다.

    송철호에 출마 요청→ 당내 경쟁자 교통정리 의혹

    문 대통령이 당시 선거의 공정성을 강조하며 비판의 예로 든 '낙하산 공천'은 현재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모습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지난해 6·13지방선거 전 김기현 전 울산시장 비위 의혹 첩보를 경찰에 전달, '하명수사'를 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또 문 대통령이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임종석 비서실장을 통해 송철호 시장에게 울산시장 출마를 요청했고, 이 직후 청와대가 송 시장의 당내 경쟁자를 정리하려 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검찰은 송병기 울산시 부시장의 업무일지에서 이러한 내용이 담긴 메모를 확보했다.

    임동호 전 민주당 울산시당 최고위원과 심규명 변호사는 지난해 2월 울산시장선거 예비후보로 나섰다. 하지만 4월 중앙당에선 송철호 캠프가 만든 선거전략 문건대로 송 후보를 단수공천했다. 면접심사 직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송 예비후보의 경쟁력이 현격하게 높게 집계됐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다. 

    이에 임 전 최고위원과 심 변호사는 "수차례 탈당한 이력이 있는 송철호 예비후보를 단수추천한 건 당헌에 위배된다"며 반발했으나, 이내 승복하고 예비후보직에서 물러났다.

    청와대가 선거(당내 경선)에서 특정 후보가 되게 하고, 특정 후보는 안 되게 하는 시도를 했다면 공무원의 당내 경선 관여를 금지한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것이 된다. 단수공천의 최종 책임자인 추미애 당시 민주당 대표는 지방선거 유세전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가끔씩 송철호 후보의 안부를 묻곤 한다 '인권변호사 친구, 동지 송철호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게 문 대통령의 마음, 문심일 것"이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한겨레신문은 "임 전 최고위원이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이 울산시장 경선 불출마를 권유하면서 고베 총영사 등 '다른 자리'를 권유했다'고 말했다"고 19일 보도했다. 임 전 최고위원이 "오사카 총영사로 가고 싶다"고 하자, 한 수석이 '고베 총영사' 자리를 역제안했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그에게 당내 경선 불출마를 조건으로 특정 자리를 주려는 움직임을 보였다는 뜻이다.

  • 지난 2014년 재보궐 선거에서 송철호 후보를 돕는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 지난 2014년 재보궐 선거에서 송철호 후보를 돕는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다음은 1992년 3월13일 한겨레신문에 게재된 문재인 변호사의 칼럼 전문이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인용>


    3·24총선 심판의 길목에서 - 부산 'YS바람'의 허와 실

    언론에서 부산의 선거상황을 보도할 때면 으레 'YS바람'이란 말이 덧붙는다. 이 바람이 부산의 선거판도를 결정하는 대세라는 투다.

    그래서 독재정권에 빌붙어 김영삼 씨와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던 자도, 군사 쿠데타의 주역도, 법원으로부터 유죄판결을 받은 범법자도 'YS' 깃발만 내걸면 일단 당선이 유력한 것으로 분석되고 그렇지 않은 이는 아무리 양심적인 삶을 살아왔고, 의정활동이 빛나도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분석된다.

    과연 그런가?

    부산 사람들은 바람에 휩쓸려서 6공 정부의 실정에 대한 분노도, 후보자 개인에 대한 인물평가도 모조리 잊어버리고 있는가?

    주변을 둘러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후보등록이 끝나고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한 지금까지 유권자는 대단히 차분하고 냉정하다. 정당과 후보들이 애써 일으키려는 오도된 바람이나 혼탁·과열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을 만큼 유권자들의 정치의식은 성숙되어 있다. 바람은 바람을 바라는 자들의 머릿속에나 있을 뿐이다.

    지금 부산경제의 피폐와 위기는 6공 경제 실정의 두드러진 결과이다. 제2도시라는 이름이 부끄러울 정도의 경제적 낙후가 이른바 'TK'(대구·경북) 지역패권주의자들에 의한 차별과 홀대의 누적된 결과임을 모르는 부산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부산사람들은 6공의 악정, 특히 경제 실정과 대구·경북 지역패권주의자들의 횡포에 어느 지역 사람들보다 깊이 분노하고 있다. 부산에 불고 있는 바람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반 TK바람'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반 TK-YS 지지서 갈등

    부산사람들 가운데 '반 TK'의 대안을 김영삼 씨에게서 찾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다른 현실적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김씨 개인에 대한 추종은 결코 아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은 '반 TK' 정서와 김영삼 씨에 대한 지지 사이에서 갈등하거나 김씨가 '반TK'의 대안이 되기를 포기하여버린 것에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언론이 어째서 실체가 없는 'YS바람'을 자꾸 들먹이고 있는지 그 의도를 알 만하다. 언론의 이런 거듭된 보도는 'YS바람'이 대세인 양 믿게 함으로써 사람들을 체념하게 하고 판단을 마비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선거를 하나마나 결과가 뻔하다는 허무주의와 무력감을 심어주어 소극적인 유권자들로 하여금 선거를 외면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결국 선거 때마다 교묘하게 여당을 돕는 '회색언론의 장난'이라고 보아도 좋을 성싶다.

    회색언론서 바람 부추겨

    선거 때마다 크건 작건 바람이 있다. 바람은 바로 유권자들의 바람(願·원)이다. 12대 총선에서 일어난 직선제 바람은 4·13 호헌 조처의 반동과 6월항쟁으로 이어져 6·29선언을 낳았다. 13대 총선에서 인 민주화 바람은 여소야대 국회를 탄생시켜 3당 합당의 반동으로 무너질 때까지 짧은 기간이나마 청문회와 악법 개폐를 위한 의원입법을 하는 등 재미있는 정치의 맛을 보여주었다. 6공 들어 불완전하게나마 이룩된 민주화의 진전은 모두 그때 얻어진 것이었다. 이는 우리에게도 선거혁명이 가능함을 믿게 하고 역사 발전에 믿음을 갖게 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와 같이 바람은 시대의 상황에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는 것이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잘못된 체제나 질서를 변화시키려는 유권자들의 바람(願)이 한 방향으로 모여 거스를 수 없는 대세를 이룰 때 이것이 바로 진정한 바람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른바 부산·경남의 'YS바람', 충청도의 'JP바람', 대구·경북의 'TK바람' 등 민자당이 특정지역에 그 지역 출신 정치인을 앞세워 일으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바람이란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유권자들의 바람(願)과는 무관한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저열한 바람일 뿐이다. 특정지역의 의석을 싹쓸이함으로써 집권 연장의 토대를 구축하기 위하여 지역감정을 증폭시키는 비열한 음모이다. 그야말로 나라야 어찌 되건 정권만 유지하면 된다는 한심한 작태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한 지역에서 촉발된 지역감정은 필연적으로 다른 지역의 감정을 부추겨서 전국이 지역감정으로 쪼개지고, 심지어 울산의 '정주영바람' 등 지역감정의 단위가 세분화되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만약에 유권자들이 그와 같이 오도된 지역감정에 묻혀버린다면 선거의 의미는 실종되고 만다. 선거는 정권과 정당과 국회의원 또는 후보자 개인에 대한 심판이다. 그러한 심판이 정기적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선거를 하지 않을 때에도 항상 민의에 귀 기울이도록 하는 것, 이것이 대의제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선거의 의미이다.

    그런데 특정인에 의한 지역감정바람이 선거를 좌지우지한다면 특정인을 추종하면 그만일 뿐 민의를 두려워할 필요도, 심판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게 되니 선거는 요식절차로 전락하고 만다. 이때 독재와 부패정치가 유권자들에게 보답하게 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현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지역감정은 특정지역의 정치상황을 특정 정치인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엄청난 오만을 낳는다. 우리는 그런 오만을 공천 과정에서부터 신물나게 겪고 있다. 나눠먹기 공천, 낙하산 공천, 연고와 무관하게 장기말 옮기듯이 이리저리 옮기는 공천 등 선거구민의 의사를 아예 무시해 겉치레 인사조차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오만방자의 극치를 보여주는 예가 내가 살고 있는 사하구가 아닌가 싶다. 사하구는 민자당이 겉으로 내세운 후보 따로, 속으로 진짜 미는 후보 따로이다. 진짜 미는 후보는 김영삼 씨의 측근 중의 측근으로 과거 통일민주당 시절의 후보매수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탈당하였기 때문에 사정상 무소속으로 출마할 수밖에 없었으나 사실상 민자당 후보나 다름없다.

    사하구 들러리 공천 문제

    그래서 그 무소속 후보는 자신이 마치 민자당의 후보인 양 '김영삼 대표' 대권 창출의 주역이 되겠다고 외치고 있는데, 더욱 가관인 것은 그의 보좌관인 민자당의 '위장후보' 역시 그에 발맞추어 선거운동을 일절 하지 않음은 물론, 그래도 혹시 표가 분산될까봐 '나에게 표를 찍지 말라'고 호소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부산 시민들은 그와 같은 민자당의 정치행태를 따끔하게 심판하여야 할 것이다. 선거의 의미를 몰각시키는 지역감정바람 역시 단호하게 배격하여야 함은 물론이다.

    김영삼 씨의 대권 창출은 그다음의 문제이다. 지역감정에 사로잡혀 6공의 실정과 민자당의 오만방자함을 덮어준다면 설사 김영삼 씨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6공 정부를 답습하는 데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