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체제 개편'서 영재·과학고 제외… "교육부 전관예우로 개편 대상서 빠졌을 것"
  • ▲ 교육부는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발표한 고교서열화 해소방안에서 영재학교와 과학고를 고교 체제 개편 대상에 포함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뉴데일리DB
    ▲ 교육부는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발표한 고교서열화 해소방안에서 영재학교와 과학고를 고교 체제 개편 대상에 포함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뉴데일리DB
    자사고와 외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이 확정된 가운데, 전환 대상에서 제외된 영재학교와 과학고를 향한 특권층의 '쏠림 현상'이 가시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고교 서열화의 ‘정점’에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사교육 끝판왕’으로 불리는 영재학교와 과학고가 유지된다면 고교 서열화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교육부는 7일 자사고와 외고·국제고의 2025년 일반고 전면 전환을 골자로 하는 '고교 서열화 해소 방안'을 발표하면서 영재학교와 과학고는 고교 체계 개편 대상에서 뺐다. 다만 영재학교의 지필평가(문제풀이식 시험)를 폐지하는 등 선발 방식을 개선해 나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영재학교와 과학고가 이번 개편 대상에서 빠진 것은 이들 학교 학생의 90%가량이 이공계로 진학하는 등 설립 취지에 맞게 운영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사교육 끝판왕'인데… 유은혜 "영재학교 설립 취지 맞게 운영"

    실제로 유은혜 교육부장관은 지난달 21일 국회 교육위원회의 교육부 등 종합감사에서 '영재학교와 과학고도 대학 입학을 위한 학원이 되지 않았느냐는 의혹이 있다'는 여영국 정의당 의원의 질문에 "영재학교와 과학고는 학교 설립 취지를 운영 평가했을 때 이공계 진학률이 90% 이상이었다"며 "고교 체계 개편 논의는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고 답했다.

    유 장관은 이날도 "전체 고교의 약 4%를 차지하는 외고·자사고 등에서 우수 학생을 선점하고, 비싼 교육비가 소요되다 보니 고등학교가 사실상 ‘일류, 이류’로 서열화됐다"며 "고교 진학경쟁이 심화돼 사교육비 부담이 커지고 학교·학생 간에 위화감이 조성되는 등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영재학교와 과학고는 개편 대상이 아니라는 뜻을 거듭 밝힌 셈이다.

    하지만 교육계에선 '고교 체계 개편'에서 영재학교와 과학고가 빠진 것을 두고 특권층의 명문고 수요가 이들 학교로 쏠릴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교과과정을 벗어난 이들 학교의 교육수준을 볼 때 사교육비 양극화와 고교 서열화를 더욱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가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전국 8개 영재학교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들 영재학교의 2019학년도 입학 수학시험 전체 문항(239문항) 중 절반 이상인 132문항(55.2%)이 중학교 교육과정을 위반한 문항으로 확인됐다.

    위반 문항에는 올림피아드나 경시대회에 단골로 출제되는 문제는 물론, 중학교 정규 교육과정과 무관한 대학 수학과 전공 과정의 정수론·조합론·기하학과 이산수학·대수학 등과 관련된 문제도 있었다.

    영재학교 사교육 인프라에 따른 지역격차도 심각했다. 전국 8곳의 영재학교 합격생을 살펴보니 2019학년도 영재학교 입학생 834명 중 585명(70.1%)이 서울·경기 등 수도권 출신이었다. 입학생들의 출신 학교가 위치한 시·구를 분석해보면 학원가가 밀집한 지역의 쏠림 현상이 두드러졌다.

    특히 서울과학고의 경우 올해 입학생의 절반 정도가 서울 강남 대치동의 특정 학원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영재학교가 사실상 '수도권 사교육 인재'를 위한 학교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올해 영재학교 입학생 70% 이상 서울 등 수도권 출신

    입시 컨설턴트 A씨는 "'사교육 끝판왕'이라고 불리는 영재학교는 고교 서열화 해소라는 교육정책의 무풍지대"라며 "진학경쟁 완화와 사교육비 양극화 해소 등을 위한 교육정책은 일관성을 지켜야 한다는 점에서 자사고와 외고를 없앤다면 영재학교와 과학고도 전환 논의에 포함해야 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과 같은 정부의 사립고 죽이기 정책은 결국 공교육 정상화로 연결되지 않고 영재학교·과학고 쏠림 현상이라는 풍선효과만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신경민 의원은 "진정한 영재성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현행 중학교 교육과정과 학교 학습을 바탕으로 영재성을 평가해야 한다"며 "단순히 높은 수준의 문제를 푸는 것은 사교육 영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교육부와 교육청은 단 한 번도 영재학교를 들여다보지 않은 것을 반성하고, 실태조사를 통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계는 영재학교와 과학고가 이번 개편 대상에서 배제된 배경에 교육부 출신의 전관예우도 이유 중 하나로 작용했을 것으로 봤다.

    최수일 사걱세 수학사교육포럼 대표는 "교육부가 이번 개편 방안에서 영재학교와 과학고를 제외한 이유는 그들만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최 대표는 "교육부에는 영재학교와 과학고 출신이 많고, 전관예우를 이유로 교육부 출신이 국·공립인 영재학교로 많이 이동한다"며 "이 때문에 교육당국이 사립고는 다 죽이고 영재학교에는 관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검찰개혁 못지않게 영재학교 개혁도 이뤄져야 한다"며 "특권층의 전유물이 된 영재학교는 장기적으로 폐지하고, 다른 기관들에 위탁운영하는 방식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