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36년전 대통령 암살기도 현장… 45분 지각한 文, 당시 상황 들으며 고개만 '끄덕'
  •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4일 미얀마 양곤 아웅산 묘역에 건립된 '대한민국 순국사절 추모비'를 방문하여 아웅산 테러로 순국한 외교사절을 추모하고 있다. ⓒ뉴시스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4일 미얀마 양곤 아웅산 묘역에 건립된 '대한민국 순국사절 추모비'를 방문하여 아웅산 테러로 순국한 외교사절을 추모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은 4일 미얀마 옛 수도 양곤의 아웅산 묘역에 건립된 '대한민국 순국사절 추모비'를 찾아 참배했다. 그러나 36년 전 이곳에서 테러를 일으킨 북한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었다.

    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는 이날 오후 4시 25분(현지시간) 아웅산 순교자 묘역에 도착했다. 현장을 취재하게 된 기자는 이곳이 1983년 10월 전두환 전 대통령 암살을 목적으로 한 북한 공작원의 테러가 발생했던 '역사의 현장'이라는 점을 유념하며 대통령 수행단을 기다렸다.

    비가 내리는 날씨였다. 행사장엔 적막이 감돌았다. 미리 도착한 청와대 경호원 및 미얀마 경비원들은 경호에 만전을 기하는 모습이었다. 묘역 사방엔 미얀마 측이 준비한 전파교란장치(JAMMER)가 있었다. 이 장치는 테러리스트가 사제폭탄을 터뜨릴 수 없도록 사전에 저지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문 대통령은 당초 예정시간보다 45분 늦게 도착했다. 우천 및 교통체증 때문이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테러 당시 참배 예정시간이었던 10시보다 30분 정도 늦게 도착한 것과 비슷한 우연의 일치였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36년 전 북한의 폭탄 테러로 대통령 순방 외교사절과 기자 등 수십명이 사망했던 끔찍한 참사는 되풀이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김 여사와 함께 우산을 쓰고 아웅산 순교자 묘역에 헌화했다. 이어 묵념을 한 뒤 차량을 타고 순국사절 추모비로 이동해 참배했다. 문 대통령은 집례관으로부터 추모비와 폭탄 테러 당시 상황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했던 메시지 발표는 들을 수 없었다.

    2012년 방문 MB "다신 없어야 할 역사"

    반면 2012년 5월 아웅산 묘역을 참배한 이명박 전 대통령은 "17명의 고위 관료들이 희생된 20세기 역사에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던 곳"이라며 "이런 역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들어 '적폐청산' 수사로 구속됐다가 현재는 사실상 가택연금 수준의 보석 상태에 있다.

    대한민국 순국사절 추모비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에 건립됐다. 가로 9m, 높이 1.5m, 두께 1m 크기이며 제주의 무덤 형식인 '산담'에서 착안해 'ㅁ'자로 만들어졌다. 벽 한 쪽에 있는 틈으로 100m 정도 떨어진 테러 발생 현장이 보이도록 설계됐다. 순국사절 추모비를 방문한 것은 문 대통령이 우리나라 대통령으로 처음이다.

    청와대 측은 추모비에 대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이루기 위한 대한민국 국민의 염원을 담아 세워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평화·통일을 좋아하는 현 정부의 입장이 반영된 설명이다. 하지만 북한 김정은은 최근까지도 잇따른 단거리 탄도미사일 도발을 벌이면서 한반도 평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아웅산 묘소 테러를 기획한 김정일의 아들다운 모습이다.

    북한의 테러 현장을 찾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입에서, 더이상 규탄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됐다. 이날 미얀마에서 내린 비가 36년 전 비명횡사한 순국사절들의 눈물처럼 느껴진 하루였다.

  • ▲ 미얀마 양곤에 위치한 아웅산 순교자 묘역. 4일 이곳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헌화와 묵념을 했다. ⓒ이상무 기자
    ▲ 미얀마 양곤에 위치한 아웅산 순교자 묘역. 4일 이곳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헌화와 묵념을 했다. ⓒ이상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