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 직격②‘안지쳤냐’며 조롱하는 캐리 람, 시민들은 시위로 응수
  • ▲ 24일 쿤통 (觀塘) 시위에서 화염병 공격을 받은 경찰ⓒ허동혁
    ▲ 24일 쿤통 (觀塘) 시위에서 화염병 공격을 받은 경찰ⓒ허동혁
    일명 ‘중국압송악법’이라 불리는 홍콩 ‘도주범 조례’ 파동 관련 지난 주말 시위대와 경찰 간 무력충돌이 다시 벌어졌다. 이는 ‘중국의 무력시위에 굴복해 평화 시위를 진행했다’는 일부 외신의 평가를 무색케 했다. 경찰이 과잉진압을 자제할 정도로 폭우가 내렸던 18일과는 달리 25일에도 비가 내렸지만 폭우는 아니었다.

    ‘중국 때문에 폭력시위를 자제했다’는 외신 평가 뒤집은 홍콩 시민들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것은 세계경제 쇼크다.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자인 카르멘 라인하르트 교수는 지난 23일 블룸버그 방송에 출연해 최근의 홍콩사태가 국제경제 퇴조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라인하르트 교수는 방송에서 “홍콩사태가 원인이 된 경제침체 분위기가 미중무역전쟁과 중국경제에 이미 영향을 끼치고 있다. 향후 (세계 최고인) 홍콩 부동산 가격의 거품이 꺼지는 형태로 홍콩발 경제 쇼크가 올 수 있으며 이는 단기와 장기, 어느 쪽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이 쇼크는 (홍콩의 경제위상 상) 주변 국가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파급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신한투자금융은 23일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의 대홍콩 수출액 460억 달러(전체 수출의 7.6%) 가운데 중국 재수출 비중이 90%에 달하는데, 홍콩사태가 장기화되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 ▲ 한글벽보: 시위대가 제작한 한글전단ⓒ허동혁
    ▲ 한글벽보: 시위대가 제작한 한글전단ⓒ허동혁
    홍콩 현지에서는 어려운 경제 상황을 이미 피부로 느끼고 있다. 요즘 홍콩에서는 2개월간 지속된 시위로 인해 소매상인들이 어려워 한다는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호텔 예약률도 최근 평년 대비 50~60%로 하락해, 4성급 호텔 1박에 235홍콩달러(약 3만6000원)인 상품도 등장했다.

    시위로 인해 1박 약 3만 6천원 받는 4성급 호텔 등장

    한편 캐리 람 행정장관은 24일 페이스북을 통해 “모두들 지치지 않았느냐”며 대화를 통해 해결방법을 찾자고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그러나 호소문에는 반대파를 포용하는 문구를 찾아볼 수 없었다. 민주파 페르난도 청(張超雄) 의원은 필자에게 “람 장관의 ‘안 지쳤냐’는 말은 심리전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시위대를 수백 명이나 구속하면서 시민을 폭행한 폭력배는 단 두 명만 구속하고, 얼굴을 향해 빈백건 (Bean bag gun)을 발사해 실명시키는 당국의 처사로 인해 홍콩에서 람 장관을 신뢰하는 시민은 찾아보기 힘들다.

    ‘중국이 무서워서 18일 시위에 (홍콩시위 역대 2위인) 170만 명밖에 안 나왔다’는 평가는 일부 외신의 주장일 뿐이다. 시위에 꾸준히 참가해 온 30대 초반 여성은 필자에게 “우리는 중국 인민해방군이 두렵지 않다. 18일 시위는 경찰과 폭력배가 거리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시민들의 인민해방군 개입설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올테면 와라’ 혹은 ‘(국제 정세 상) 어차피 안 올 것’ 두 가지로 나뉜다.
  • ▲ 25일 츈완시위에 처음 등장한 물대포차. 메르세데스 벤츠 제작, 대당 약 25억 8천만원ⓒ허동혁
    ▲ 25일 츈완시위에 처음 등장한 물대포차. 메르세데스 벤츠 제작, 대당 약 25억 8천만원ⓒ허동혁
    경찰이 경고사격 했지만, 총성은 거의 안 들려

    18일 주말 ‘무력시위 휴식기’를 가진 시위대는 24, 25일 시위에서 한층 강화된 방어력을 보였다. 시위대는 예전에는 경찰이 나타나 최루탄을 쏘면 바로 도망쳤지만, 지난주에는 경찰이 최루탄과 비살상 총탄을 발사해도 도주하지 않고 2시간 이상 대치했다. 필자가 관찰한 바로는 시위대 대부분이 고성능의 보호 장구를 갖췄다. 또한 새총과 화염병을 대량으로 준비했으며, 거리에 비치된 소화기와 소화전도 무기로 사용했다.

    한편 경찰은 25일 츈완(荃灣) 시위에서 사상 처음으로 메르세데스 벤츠에서 제작한, 대당 212만 달러(약 25억8000만 원)하는 물대포차 2대를 등장시켰다. 경찰이 ‘사람이 맞아도 쓰러지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이 물대포는 50미터 거리에 분당 1200리터의 물을 분사할 수 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츈완 시위에서 물대포는 위협용이었을 뿐 실제 사용되지는 않았다.

    물대포 등장 후 시위대는 곳곳으로 흩어져 시위를 계속했으며, 일부는 카우룬 지역 훙홈(紅磡)까지 가서 홍콩 아일랜드 지역 코즈웨이베이(銅鑼灣)를 잇는 크로스 하버 터널을 봉쇄했다. 츈완에 남은 시위대 일부는 폭력배가 운영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 식당과 마작방을 파괴했다. 그러나 재물 약탈은 없었다. 츈완은 8월 들어 복건성 폭력배가 출몰하기 시작, 시위대와 자주 충돌했으며, 칼부림이 벌어진 적도 있다.

    시위대가 식당과 마작방을 파괴한 직후 100여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경찰이 권총으로 경고사격을 했다. 식당 측으로부터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무장 경찰 2명이 시위대에게 포위당하자 하늘을 향해 권총 1발을 발사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파괴된 마작방 앞에 있던 필자는 총소리를 듣지 못했고, 영상을 봐도 총소리가 작아 실탄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 ▲ 친중파 택시ⓒEduardo Martins 제공
    ▲ 친중파 택시ⓒEduardo Martins 제공
    새로운 시위 주도 세력 ‘용무파’(勇武派), 강화된 방어력 선보여

    시위대의 최전선에는 용무파(勇武派)로 알려진 선봉대가 항상 위치한다. 이들은 그간의 경험과 강화된 장비 그리고 구호대와 일부 기자들의 간접 지원에 힘입어 시위방식을 점점 진화시키고 있다. 24일 쿤통(觀塘) 지역에서 열린 시위에서는 전기 절단기로 안면인식 카메라가 달린 스마트 가로등 20개를 절단했으며, 경찰의 추격을 방해하기 위해 실내 바닥에 다량의 소화액과 구슬을 뿌려놓기도 한다.

    오는 31일 토요일에는 수백만 명의 동원능력을 갖춘 민간인권진선(민진)의 중련판(中聯辦, 중국정부 홍콩출장기관) 행진이 계획돼 있다. 그러나 홍콩경찰 간부는 경고사격에 대해 “자연반응”이라고 둘러대고, 시위 지역의 지하철 운행을 중지시키는 등 시위가 12주째 계속되는데도 강경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누렸던 자유를 잃지 않으려는 시민들에게 람 행정장관이 말한 지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계속)